담채淡彩 2022. 4. 18. 17:39

 

국수 / 박은숙

 

 

허리가 굽은 노인이

식당 구석진 자리에 앉아

국수 한그릇을 시킨다

네명의 자리에 세명을 비워두는 식사

아마도 매 끼니를 빈자리들과의

합석이었을 것 같다

 

잘 뭉쳐져야 여러 가닥으로 나뉠 수 있는 국수, 수백번의 겹이

한뭉치 속에 모이는 일, 뜨겁게 끓인 다음에 다시 찬물에 식혀야

질겨지는 음식, 그 부피를 많이 불리는 음식은 힘이 없다지만,

그래서 여럿이 먹어도 한가지 소리를 내는 국수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는 저 노인의 슬하는

이남 삼녀의 망종(亡種)

꽃 핀 곳 없는 행색이지만

한때는 다복했었을 것이다.

 

잇몸으로 끊어도 잘 끊어지는 빗줄기 같은 국수,

똬리를 튼 국수를 젓가락으로 쿡 찔러 풀어 헤친다

 

치아도 없는 노인이 먹는데

후루룩, 비 내리는 소리가 난다

비 오는 날 마루에서 들리던 엄마의 청승같이

뚝뚝 끊던 빗소리,

맑은 물에 헹군 국수발 같은 주름이

입안에 가득 고인 빗소리에

바람이 흩날리며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