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길 위에서 12 - 가족*
담채淡彩
2022. 7. 23. 17:17
1989년 봄, 서울로 이주한 가족의 나들이(어느 사진이나 내 자리는 비어있다)
길 위에서 12 - 가족/담채
우리의 시간은
‘살아내는’ 능동과 ‘살아지는’ 수동이 얼마간 뒤섞여
흘러가는 것이다.
나는 30대 후반에 초등학생 아들과 중학생인 딸과
젊은 아내를 서울에 올려놓고 혼자가 되었다.
적막한 곳에서 보내는 밤이 길었다.
혼자서 잠이 안 오는 밤이면
가족을 향한 묵상을 한 후
그리움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를 들었다.
밤이 길어/담채
밤이 길어
밤이 길어
수리부엉이 울음으로 밤이 길어
삼경에 둥그는 달과
삼경에 길 떠난 철새와
바람의 울음으로 밤이 길어
멀리 있는 식구가 보고싶다
별빛 가루가루 부서져 내리며 이 밤 끝없이 떠내려가는데
적막도 거룩한 침실에
흰 달빛
무엇하러 드는가
2000년 12월 安眠島에서
note
사람은 혼자일 때 더 깊어지고 더 먼 곳으로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