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作詩

멸치 - 파도의 맛

담채淡彩 2025. 2. 24. 07:50

멸치 - 파도의 맛/담채

 

하늘을 보는 순간 숨이 끊어진 멸치들이

끓는 소금물을 뒤집어쓴 채 조용히 마르고 있다

시월의 건기가 지나가는 이곳은 바람의 귀착지

물로 빚어진 몸에서

비늘이 말라 떨어지고 있다

 

이곳의 바람은

살아생전 아프게 품었던 것부터 먼저 말린다

먼 바다를 헤엄쳐온 기억도

지느러미에 얽힌 물빛도

풀씨 같은 눈알도

포식자를 피해다닌 마른 지느러미엔 갈라진 파도의

지문이 찍혀있다

 

얼마나 마르면 설움도 저렇게 빛나는가

미라처럼 하얗게 마른 멸치들이 서로 얽혀 뒤척이며

바다 쪽으로 귀를 던져 놓고 있다

은하의 가장 빛나는 한 부분을 옮겨 온 것만 같은

빛무리에 해변이 환하다

 

고여 흐르지 못하는 것들은

마지막에 가장 분명한 것만을 남긴다

제 몸의 물기를 다 쏟아내고서야

노랗게 흰 뼈를 우려내는 멸치들

바람 소리 묻어두고 갈 데까지 가보자는 듯

멸치들의 뜬눈 속에서 물의 소용돌이가 인다

잘 마른 몸에서

파도의 맛을 우려내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