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필부일기 6 - 병원 이야기

담채淡彩 2023. 12. 18. 07:27

필부일기 6 - 병원 이야기/담채

 

(“아, 내 목 좀 따줘!” 라는 제목의 책을 읽었다

제목도 섬뜩한 이 책은 말기암 환자들을 돌보아 오던

천주교 사도 호스피스들이 겪은 이야기들이다)

얼마나 생이 아프면 그토록 절규했을까......

 

지난 11월 심한 복통으로 내과병동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4인 병실, 투명한 창 쪽으로 내 병상이 있었고 바로 옆 병상엔

밤새 코를 고는 환자가 있었다

얼마나 열심히 코를 고는지 뜬눈으로 밤 지새우고

죽이 나오는 아침을 물리고 나서

그와 인사를 나눴는데 당뇨가 매우 깊은 중년 환자였다

그는 정기적으로 투석을 받고 있었으며 양 발가락이 전부 짓물러있었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중 회진 의사가 들어와 발가락을 절단하자는

얘기를 하고 갔다

잠시 후 그는 당뇨치료를 받고 있던 내과 병동에서

정형외과 병동으로 짐을 옮기고자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열 개의 발가락 중 아홉 개의 발가락을 절단하러 간다는

그의 표정이 놀랍도록 차분했다

도대체 이 차분함은 무엇일까

절망인가 체념인가

무섭도록 차분한 그 모습이 참 긴 소리를 냈다

 

아홉 개의 발가락이 사라질 그의 두 발은

날마다 기도를 드리듯이 깊고 넓어진 삶의 강을 건너게 될 것이다

슬픈 직립의 순간들이 못이 되어 날아와 박힐 것이다

 

누군가 놓고 간 꽃병이

슬픔을 나눠 먹는

하얀 병실 안

삶은 질긴 것이고, 오늘은 또 가장 긴 밤이 될 것이다

 

 

2023.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