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순간을 돌아보다

담채淡彩 2025. 2. 4. 08:34

순간을 돌아보다/담채

 

 

일 년에도 몇 번씩 집을 나서, 바닷가로 산속으로 모래 들판으로 유목민처럼 떠도는 나를 언제나

자유롭게 보내주고 맞아주는 詩에게 감사했다

은빛 머리카락 날리며 자전거를 타고 이름 모를 저수지 둑을 건너가던 소년에게도 감사한다

 

“순간을 돌아보는 일”

얼마나 아프고 그리운 일인가...

老年에 이르러 이제야 할 수 있는 일이다.

 

2015년 한국농어촌문학상 시상식을 끝내고 다과를 겸한 점심시간 중 바로 내 옆에 반칠환

한국예총 회장 님이 계셨는데 첫마디가 어떻게 시를 그렇게 잘 쓰느냐고 물었다.

어디에서 창작공부를 했느냐고도 물었다.

반찰환 회장께서 이 상을 받게 되면 바로 한국예총회원자격을 얻게 되는 데 예총회원이 되어

많은 활동을 해주시기 바란다는 말을 건넸다.

그러나 나는 어느 모임에도 소속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이 셍각은 그동안에도 지금도 변한이 없었으므로 혼자서 독서를 하고 간간히 글도 쓰며 노년을 보낸다.

 

안면도에서 나는 35년이 넘도록 어머니와 단 둘이 살면서 가족과 떨어져 지냈다.

대다수의 글들이 이때 낙서처럼 써진 것들이다.

 

아래는 100평이 넘는 마당에 나무를 심어 가꾸는 취미로 살면서 그때 쓴 졸시 한 편이다.

 

밤이 길어/ 담채

 

밤이 길어

밤이 길어

수리부엉이 울음으로 밤이 길어

 

삼경에 둥그는 달과

삼경에 길 떠난 철새와

바람의 울음으로 밤이 길어

 

멀리 있는 식구가 보고싶 다

별빛 가루가루 부서져 내리며 이 밤 끝없이 떠내려가는데

 

적막도 거룩한 침실에

흰 달빛

무엇하러 드는가

 

1998.12 졸시 중에서 - 주말부부 10년 차에 쓰다

 

나는 이 긴 여정 내내 영혼의 마른 땅을 돌고 돌았다.

그때 나는 많은 글을 쓴 것 같다.

돌아보면 힘들고 긴 여정이었다.

산 것도 같고 안 산 것도 같은 아내와의 주말부부 35년.

일찍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공부를 마친 남매는 장성하여 이미 슬하를 떠났다.

그토록 긴 여정 중의 득과 실을 따지기보다 그저 다 지나간 일일뿐 지난 뒤에 보이는

세월은 누구에게나 아픔이며 그리움이다.

이제 글을 쓰는 일에도 많이 게을러졌다.

더 낮은 곳에 들어서더라도

그동안 동행했던 것들과 오래 함께 하고 싶은 것이 오늘의 마음이다.

 

멀리도 왔다. 

생계의 단호한 턱을 넘어 비바람 눈보라 사이를 숨차게 헤쳐

바위처럼 금간 상처 들여다보며 몇 십 년을 그렇게 달려왔다.

나는 이제 꼼짝없이 노년에 접어들었다.

나의 노년은 그리움으로 분주할 것이다... 

 

 

2015.05 농어촌문학상 시상식 전

 

오프닝 연주회(비발디 사계)

 

바지락을 캐다/담채

                   
바다의 한 막이 벗겨지고 있다
종일 불어오는 서풍을 거슬러
썰물 빠져나간 자리
물결이 지날 때마다 수없이 덧대어진 모래들이
층층이 등고선을 이루며 천의 목숨들의
집이 되어있다
저 고요의 지충에서 꿈을 짓 조개들이
모래의 무늬를 입는 시간
나는 망망한 갯벌 위에 쪼그리고 앉아 바지락을 캔다
같은 자리를 열 번 넘게 파헤쳐야
비로소 민낯을 드러내는 바지락조개들
셀 수 없는 물이랑을 넘어와 나를 향해 흘러든다
발도 지느러미도없이 모래 속을 지나온 간절한 생명들
더러는 혼자서 더러는 쑥대처럼 서로 엉켜
모래 속을 지나왔을 것이다
언젠가는 저것들이
하염없이 모래를 삼켜온 저젓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올 것이다
소금기를 몰고 온 갯바람이 온몸에 
빗금을 긋고 뭍으로 가는 시간
석양이 머리 위에 마지막 빛깔을 쏟아 붓는다  
몇 시간 째 꺾인 무릎
침묵이 깊다


 * 2015 한국농어촌문학상 수상작 

 

 

한국인문학회 선정 시인 발표회 2009.05.21 서울역사박물관

-사회 : kbs아나운서 진양희

-낭 송자 : 2009년 당시 안병만 교과부장관. 이종걸 국회문공분과위원장, 한국정신문화원장 외 선정詩人5인.

(우에서 두 번째 본인)

 

 

2009년 5월 한국인문학회가 선장한 내 졸시가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 전시가 되다

서울시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시화전시 허가를 내준 작품들이다

부족한 내 졸품과 함께 전시가 됐던 박목월 님 정현종 님께 존경을 표한다  

 

 

아버지의 등/담채

 

자정 넘어
아버지 검은 등이
형광등 아래 쓰러져 있다
수백 년 노송의 몸피 같이 굳어있다
조용한 목마름이
저 등을 타고 흘렀을 것이다
지친 등이 힘을 모아 웅크리고 나귀처럼 잠든 밤
철부지 육 남매 포개 업고
동트는 새벽 들판
달리는 소리 들린다

 

광화문 게시 글 중(외 1편 게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