西海에서...
쓸쓸함은 아직도 신비롭다*
담채淡彩
2021. 7. 10. 08:00
쓸쓸함은 아직도 신비롭다
환상과 자폐에서 깨어날 때마다 아파트만 무수히 태어났다
사람들은 무성한 아파트를 반성했지만 반성뿐인 결론에 도달하곤 했다
어떤 결론은 보기에도 민망했고 입 속에서도 서걱거렸다
저녁이 되어 사람의 그림자가 발등에 수북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쓸쓸함을 꺼내 천천히 쓰다듬기 시작했다
어떤 청춘들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떠돌았고 어떤 사람들은 골짜기의
그림자처럼 두꺼워졌다
그런 쓸쓸함이 아직도 신비로웠다
바람은 언제 어디서나 나타났지만 주위를 환기시키지 못했고
풀잎들을 일으켜 세우지도 못했다
뱀처럼 차가운 달이 뜰 때면, 어떤 이는 단순하게 흙으로 돌아갔다
또 다른 이는 삶과 죽음이 하나인 세계로 들어갔지만 남은 자들은
소수자에 불과했다
도시 외곽을 에둘러 흐르는 냇물이 움직였다
그 물 꼬리를 바라보면 천천히 소름이 돋았다
한숨을 토해낼 때마다 허공에 다리가 놓인다
격자무늬 그물 사이로 굵은 바람만 빠져나갈 뿐
바람이 지나간 길은 축축하다
길 위에서 뚜렷하게 생을 뒤척이는 영혼들
시인들은 검은 모자를 눌러쓰듯 자꾸 눌러썼지만
세상의 절반은 영혼의 범람을 알지 못하거나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물기 빠져나간 바람의 흰 깃털이 저녁 숲에 흩날린다
깊은 숨을 몰아쉬는 당신이 달력 속에 굵은 빗금을 천천히 긋고 있다
지나가고 있다
겨울 지나고 봄이 지나고 계절만의 속력으로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