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운명運命
담채淡彩
2025. 1. 31. 10:46
운명運命
나는 40년 가까이 병명도 모르는
복통腹痛을 달고 산다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내가 네 운명이다'하면
그때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운명을 바라보지 않으리라
눈물을 흘리게 될지
한없이 마음이 고요해져서
이제는 더 이상 운명 따위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
운명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하고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다 알 것이다
나는 눈먼 걸인처럼 당신을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도 했을 것이다
일생에 단 한번 우는 새도 있고
울대가 없어 울지 못하는 새도 있다고 한다
누가 운명을 거절할 수 있으랴
나는 지금
피지 않아도 좋은 대꽃이거나
이미 잎이 진 한 그루 나무
이렇게 한 계절 흘러가도 좋다
다시
견디기 힘든
해가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