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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by 담채淡彩 2024. 1. 9.

구멍/담채

 

오래된 콘크리트 마당 그늘진 마당귀
바늘구멍만 한 구멍에서 풀 한 가닥
올라오고 있다
저 가늘고 여린 것이 신음 한 번 내지 않고

제 몸을 들어 올렸다
어느 익명의 바람이 데려와

캄캄한 구멍 속에 주저앉힌 풀씨 하나

오래 오래 길을 물어 어둠을 열었을 것이다        
언젠가는 저 아득한 생도

한 철을 태워 흰 꽃대를 세우고
처음으로 돌아가 길을 접게 되리라
모든 生이 출발하고 다시 돌아가 마지막이
눕는 구멍
누군가는 내 안에 들어와 싹이 트도록
고요하고 따뜻한 구멍 하나 비워두리라
빛도 바람도 지상의 소리도 들지 않는

구멍 하나 비워두리라 

 

 

note

 

신화와 소문의 산실,

비밀스러운 구멍은

누군가에겐 집이 되고 누군가에겐 함정이 된다.

반생반사半生半死의 씨앗에게는 제 길을 틀어 가는 긴 통로였을 것이다.  

한 세상 깊이 둥글게 통찰하며 처음도 끝도 일원一圓인 우주관에 도달한

하나의 생명은 비록 그것이 작고 초라한 것이라 해도 경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