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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과 評論38

시조 총평 시조 총평 이 봉 수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이제 현대시조는 자유시의 흉내 내기와 고시조 개념의 두꺼운 탈을 벗고 정격시조의 시대를 열어 가고 있다. 2012년 주요 일간지의 신춘문예 시조는 3가지 면에서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첫째, 고시조개념의 시조 범주에 속해 있던 사설시조나 엇시조는 신춘문예 광장에서 멀리 퇴장하고 평시조만 현대시조로서의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평시조 정형으로 한국형 현대정형시를 만들고 굳혀 나갈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둘째, 2수 이상의 연시조가 신춘문예의 주를 이루며 표현의 범위를 넓히고 대다수 연시조는 수의 구별이 뚜렷하고 3장 6구가 반듯하다. 아직도 자유시를 흉내 내어 수의 구별을 없애고 심한 파형을 한 경우가 없지 않으나 매년 조금씩 개선되어 정격으로 가고.. 2022. 11. 2.
2016년 신춘문예 시조 총평* 2016년 신춘문예 시조 총평 이 봉 수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많은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및 학자들은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시인 시조는 세계적인 자랑거리라고 한다. 시조가 자랑거리라는 것은 일본의 하이쿠(俳句), 중국의 한시(漢詩), 서양의 소네트(sonnet) 등과 같은 수준의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정형시’이기 때문이다. 이들 세계적인 정형시는 독특하고 엄격한 시형을 생명으로 한다. 정형을 갖추지 못하면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 오늘날 한국의 시조는 창사(唱詞)였던 고시조의 탈을 벗고 20C초 순수문학인 정형시(定型詩)로 다시 태어났지만, 정형을 굳히기도 전에 고시조의 많은 형을 여과 없이 답습하고 범람하는 자유시의 흉내 내기에 급급하여, 한 올의 예외도 허용하지 않는 세계적인 정형시의 반열에 오.. 2022. 8. 9.
정밀하게 관찰하고 건조하게 묘사하기 정밀하게 관찰하고 건조하게 묘사하기김남호 (시인. 평론가) 눈에 보이는 대상의 재현을 본질로 삼는 그림은 대상에 집중해야 한다. 대상의 관찰에 소홀하면 그 자리에는 관념이 고인다. 관념은 실감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무수한 변화를 놓친다. 변화에 민감한 것은 감각이고 그 감각으로 작품을 살려내기 위해서는 대상을 세심하게 관찰해야만 한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대상에서 피가 나도록 보라”고 하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이어서 “대상을 철저하게 관찰하되 그것에 얽매이지는 말라”고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제대로 살펴보라는 건 무엇이고 거기서 벗어나라는 건 또 무엇인가? 좋은 그림은 대상을 재현하지만 그것의 모방에 그치지 않는다. 거기서 또 다른 세계를 읽어내고 그것을 해석하고 자기만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2022. 8. 8.
경계를 건너온 사유의 분광들 경계를 건너온 사유의 분광들 _허형만 시 「나무들의 거리」외 네 편 박철영(시인. 문학평론가) 간혹 시를 통해 심정적인 고통을 위로받거나 공감으로 감전된 즐거움을 만끽하곤 한다. 시는 삶의 부분으로 전입되면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잠시나마 마음의 여유를 안겨주며 소진된 활력을 되찾는 기제로 작용한다. 그것은 문장의 스펙트럼 안에서 확장되는 사유의 파동을 의미한다. 좋은 시들을 접하는 기회가 빈번한 것도 아닐뿐더러 발견한다면 행운이다. 시를 읽을 때마다 과연 시는 무엇이어야 하고, 내용은 무엇이 담아져야 하는가를 묻게 된다. 하루에도 수없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쏟아지는 시들을 보며 우리가 지향하는 사유들이 문장으로 공감되며 독자라는 대상과 소통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그렇.. 2022. 8. 8.
더위를 식혀주는 시 한 편 막사발 속 섬에 사는 이에게 / 이병철 막사발에 달 떴다 노릇노릇한 달이 무인도처럼 탁주 위에 혼곤하다 술잔에 달빛 섬 띄워 놓고 자암의 외로움도 꽃 지듯 붉었겠다 쌀독에 얄팍하게 쌓인 쌀을 불려 술 담근 게 지난여름 일이다 누룩이 별을 흉내 내며 허연 쌀물 위에 어리비치더니 귀뚜리 울음 먹고 달짝지금한 빛으로 찰랑였다 술맛에 마음이 좋아 부엌을 함부로 구르던 개다리소반 절름발에 못을 박았다 반짇고리를 얻어 와 구멍 난 속곳들을 기웠다 탁주 한 사발에 고인 소낙비와 우레와 폭설이 대견하여 눈시울이 젖었다 다 지나간 일이다 얄궂은 두견새 밤 새워 노래하는 부리 끝에 어스름이 물려 있다 뒤란 대숲을 흔드는 바람 무성해지니 잠설친 고양이가 마당을 어슬렁거린다 고양이는 수염을 반짝이다가 막사발 내려놓는 소리에 .. 2021. 7. 29.
내가 읽은 시/문맹 외 / 유홍준 문맹 / 유홍준 펄프를 물에 풀어, 백지를 만드는 제지공들은 하느님 같다 흰 눈을 내려 세상을 문자 이전으로 되돌려놓는 조물주 같다 티 없는 , 죄 없는 순백 無化의 길 …… 더욱 완전한 백지에 이르고자 없애고 없애고 또 없애는 것이 제지공의 길이다, 제지공의 삶이다, 마치 거지의 길이며 성자의 삶 같다 그러므로, 오늘도 백지를 만드는 제지공들은 자꾸만 문자를 잃어 간다, 문맹이 되어간다 문명에서ㅡ문맹으로 휴일 없이 3교대 종이공장 제지공들은 출근을 한다 연두 다관 속에 아침을 담는다 여린 찻잎으로 숙우가 기울어지면 마른 잎이 오금을 펴는 소리 머금었던 하늘이 연둣빛이다 저 여린 찻잎이 토해낸 녹색의 피 뜨거움에 볶이고 수없이 주무른 손 끝에 덖여 밀봉된 입 그늘에서 서서히 말라간 찻잎의 마음들 이제야 .. 2019. 5.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