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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不眠 불면不眠/담채 ​비가 내린다 밤비가일 만개의 잎들이 기침소리를 내며 나뭇가지를 스친다어둠의 한 쪽에서는 가는 비명이 비명을 끌어안고 섞인다 열에 싸인 몸속으로 하얀 '타이레놀' 한 알 조용히 녹아들고 있다나이가 들어갈수록 내 자신이 부서지면서 내는짧은 소리에도 슬픔의 무게가 실리는데이런 감각들은 육체적인 감각이 아니라다분히 이성적인 감각이다​꺼뭇꺼뭇 검버섯이 핀 내 生에 잠시 꽃물 들고질긴 어둠 속을 죄처럼 맴돈다 죽음은 정해진 날 틀림없이 찾아오는데잠은 왜 밤새도록 오지 않는가 2025. 5. 30.
진리는 불편하고 멀다 외 진리는 불편하고 멀다/담채 우리는 神과의 거리를 측량하지만 아직神을 만나본 사람은 없다우리는 말로만 神과 동행하고나도 내 안에 神을 만들었다동산에서처럼 神과의 일문일답을 원한다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수긍하면서도내 지구는 언제나 평평하듯이진리는 여전히 불편하고 멀다 그리워하는 일/담채 나는 사람을 그리워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시를 읽거나 글을 쓰는 일도 알고 보면 사람을 그리워하는 일이다열심히 그리워하면 서로 닮는다그리하여 끼리끼리 모여산다 존재存在/담채 새벽부터 산 넘어간 구름어디에 모여 있을까 산 너머 저 바다 끝까지 바라봐도구름 한 점 모인 곳 없네 쪼그라든 해가등 뒤에 걸린 歸家 길​새벽부터 산 넘어간 구름모인 곳 없네 2025. 5. 28.
간월암看月庵에서 간월암看月庵에서/강성백 西海에 물이 차면천수만 간월암*이 물 위에 뜬다 극락도 아수라도 그 아래삼백예순 날 노승 두엇부처님께 비는지하루에 두 번 물길이 열린다 나는그 길을 밟고 암자에 들어천리향 꽃향이 번지는 절 마당에 서 있다 멀리 온 것 같으나길은 제 자리 나는 없고고요한 목조보살좌상하루에도 천만 번 생각을 닦는다 2012.05 note* 瑞山市 浮石面 간월도에 있는 작은 암자. ( 만조 시 물이 차면 섬이 되고, 하루에 두 번 간조 때마다 바닷길이 열린다) 2025. 3. 31.
어떤 가난 어떤 가난 /담채 막걸리를 좋아하셨던 詩人 '천상병'그는,밥 먹을 자격도 없는 놈이라고스스로에게 다그치며탁한 막걸리 한 사발로 몸을 데웠다 ​찌그러진 빈 양재기 같이시퍼렇게 녹슬어 있는 달을 올려다보며막걸리를 마셨다 세상을 ​소퐁 온 것처럼 살아냈던 그는단 한 번歲月 앞에 무릎을 꿇었다 꿈에서라도 만난다면막걸리 몇 병과부침개 한 장 들고 가 물어보리라 이승의 누더기는 어디에 벗어두고 가셨는지가난은 어떤 별로 떠아찔한 빛으로 세상에 오시는지 누님 같던 그의 아내목순옥 여사가 그의 뒤를 따라갔다​하늘에서 아내를 영접했을 것이다地上의 모두를 데리고 소풍을 갔다 2010.10내가 살았던 안면도 중장리 해변마을에 천상병 시인이 살던 집을 옮겨 원형대로 복원해놓았다  * 수락산 산자락에서 詩人이 살았던 집* 천상병.. 2025. 3. 25.
老年日記59 - 나 혼자 간다 老年日記59 - 나 혼자 간다  길을 가다보면언젠가 한 번 간 적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서 그럴 것이다 어려서는 어머니 등에 업혀 이 길을 갔고아비가 되어서는 어린 자식 업고 가던 길 오늘은 나 혼자 간다 함부로 사랑하고함부로 미워했던한 번도 믿은 적이 없었던 길 오늘도 나 혼자 간다 note언제나 배경이었던 서럽도록 아름다운 나의 歲月혼자 길 위에서 내 나이를 계산하다가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지구의 ​자전속도가 빨라지는 것인데 이 사실이 서운한 게 아니라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인생 이상의 그 나라가 자주 ​궁금해지는 것이다.다시 길을 내며 가야하는 지금세월이 흐를수록 기다림을 남발하는 내 영토엔 언제나 나를 반대편으로 끌어당기는 또 하나의 내가 있다끝없는 .. 2025. 3. 21.
커피 파는 여자 커피 파는 여자/담채 물난리 한 방에 터를 잃고인생 60고개를 비척비척 넘어온 사람 도봉산 산 뿌리에 무허가 천막 세워새소리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고루 섞어 커피를 팔고 있다 긴긴 낮그늘 속에 못박혀 인생 작파하고 상수리나무 한 그루 기둥 삼아거기서 살다가 가고 싶다는 女子 2025. 3.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