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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157

간절기 간절기/담채 바람에 떨어진 후박나무 잎 사이로화려한 계절을 안고 도망가는 개미 한 마리끝없는 중력을 모아가을을 쏟아낸다 삶이 꽤 악착같이 들러붙을 때가 있다쪼그라든 해가 등 뒤에 걸리는 歸家길 2024.09.12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무더위가 서서히 가는 듯한데새벽녘 내린 비로 제법 선선하기까지 하다.집 나서는 게 두렵기까지 했던 뜨겁던 여름날을 뒤로 하고모처럼 교외로 향하는 발길 가볍다.화창하길 기대했지만 흐리면 또 어떠랴.평일이라서 한산한 경춘선 환승역, 멀리 밭두둑의 고개 숙인 조이삭이 익어가고채 거두지 못한 옥수수도 여물어가고 있다. 2024. 9. 12.
참새 참새/담채이른 아침 참새 몇 마리동네 빵집 앞에 내려앉았다 어느 하늘을 다녀온 것일까깃털에서 낯선 윤슬이 인다 누군가 흘리고 간 빵 부스러기를 사이좋게 쪼아먹는 참새들 누가 뭐래도 새들은 자유로운 영혼,     걱정 없이 살다가  간결하게 죽는 것이그들의 오래된 풍습이다 2024. 7. 31.
비 오는 날 외 비 오는 날 / 담채 종일 쏟아지는 장맛비에주황색 능소화 뚝뚝 떨어졌다 비처럼 젖는세상의 예사로운 일이며어떤 것은 축축하여눅눅한지 여러 날이다  지렁이가 느릿느릿 길바닥을 지나가고 있다 우비를 입은 오토바이 배달꾼이 속도를 높이며 그 길을 통과했다  모든 결과는언제 어떻게 다가오는 것인지나는 길 위에우두커니 서 있다  별나지 않은 사람들의 별나지 않은 일에귀 기울이는 저녁까지 비는 그치지 않고 작은 상처 하나 봉합하지 못하는 오늘 같은 날은 저 산 너머 세상의 의붓자식 같은나를 한 번 더 만나보는 것이다   길 위에서/담채 가고 싶은 길가고 싶지 않은 길 가야만 하는 길갈 수밖에 없는 길 우리는 늘 길에 대해 기도하고 묵상하면서도 언제나같은 길 위에 서 있다 다음 生에서라도 만나고 싶은단 하나의 길을 찾아서 2024. 7. 28.
사랑이 다녀가는 무더운 여름 해 질 녘 사랑이 다녀가는 무더운 여름 해 질 녘/담채 사람이 짐승을 업고 긴 방죽을 걸어가고 있다물에 빠져 더욱 무거워진 새끼 염소를 업고 등이 흠뻑 젖은 노인물에 빠진 염소는 할머니가 입고 있던 얇은 속옷처럼등에 착 달라붙어 있다노인은 가끔 고개를 돌려 염소와 눈을 맞췄다할머니가 업고 가는 것은 짐이 아니라 쓸쓸한 측은함이다늙어 감춰진 사랑이 무덤에 스며드는 것 같다 2024. 7. 18.
비탈 비탈/담채 ‘비탈...’긴 골목길이 어스름 속으로강물처럼 흘러가는 저녁왜 이 말이 뜬금없이 떠올랐는지그 착란 속으로 오랫동안 노를 저어물살의 중심으로 나아갔다 강물은 금세 흐름을 바꿔 길을 지우고어느덧 나도 강물의 소용돌이 안쪽으로 떠밀려 비탈에 서 있다   복음서에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가 있다어떤 것은 길가에 떨어져 새들이 쪼아먹고어떤 것은 돌밭에 떨어져 갈증에 시달리고또 어떤 것은 강물 속으로 떨어져 흘러갔다 그러나 어떤 것은 비옥한 대지 위에 떨어져 열 배, 백 배의 잎과 열매를 맺었다 운명의 장난이 없다라고 말할 수 없는 일생 ‘비탈’이란 밑으로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서 버티거나아니면 기를 쓰고 정상으로 올라가야 하는 그런지점이다저문 생을 돌이키듯 한 노파가길가에 버려진 폐지를 가득 실은.. 2024. 7. 16.
장마 2 장마 2 /담채 사나흘째 비가 지나간다 우두커니 밖을 내다 보다가 빗소리를 듣다가 침 맞을 시간이 되어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섰다 유독 배가 아픈 오늘 무엇에 얽매인다는 것이 어떤 생각에 묶여 있다는 것이 싫어졌다 生活이 준엄하지 않으면 길도 보이지 않는다 몸은 짐승이다 오랫동안 내 몸속에 세들어 살았던 늙은 세포의 잎사귀들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와 빗속으로 흘러 흘러만 간다 비에 젖은 마음 이유도 없이 조목조목 아프다 2024.07.10 2024. 7.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