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허무를 위한 고뇌의 여정
이 문 연
김춘수의 어린 시절은 남다르다. 인동고을 원을 지낸 만석꾼의 집안에서 태어난 것부터 보통학교 입학서부터 졸업을 할 때까지 수석을 한 것부터 집안의 네 남매가 모두 경기중 출신의 수재집안이라는 칭호부터 (그것이 남다르다고 표현하는 것은 그만한 환경과 조건을 갖고 자란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그러나 소년 김춘수는 환경에 대한 자부심을 갖지 못했으며 자신감과 성취동기의 원인을 찾지 못한다 사실, 부유한 성장과정은 인간행로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김춘수는 불안과 외로움을 씹는 소년이었을 뿐이다. 성장하면서 사유의 그릇이 크면 클수록 고뇌의 잠은 깊어지고 인식의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흔들리는 정체감에 당혹함을 드러낸다.
눈보다도 먼저/겨울에 비가 오고 있었다/바다는 가라앉고/바다에 있던 자
리에/군함이 한척 닻을 내리고 있었다/여름에 본 물새는/죽어 있었다/물새
는 죽은 다음에도 울고 있었다/한결 어른이 된 소리로 울고 있었다/눈보다
도 먼저/겨울에 비가 오고 있었다/바다는 가라앉고/바다가 없는 해안선을/
한 사나이가 오고 있었다/한쪽 손에 죽은 바다를 들고 있었다/
- 처용단장 1부 민음사 1974
위의 시 처용단장은 설화의 인물로써 김춘수의 어린시절의 암울한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 어린 소년이 바라보고 있는 바다, 죽은 바다는 비애와 슬픔으로 처연하다. 물새가 죽은 다음에도 운다는 것은 아니 울 수밖에 없는 것은, 소년 처용에게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으며 바다가 없는 해안선은 헤어나기 힘든 절망이었다. 원인은 그의 근저에 깔려있는 무의식이다. 그의 무의식의 세계는 남들이 겪지 못한 부유한 환경과 통영의 바다와 하늘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와 하늘은 무한 상상력을 키우는 공간이지만 김춘수 에게는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절망의 시간이었다. 누구나 동시대인이면 겪었을 2-30년대의 과거사지만 일제 점령하의, 자존심도 언어도 국토도 문화도 빼앗긴 이 강산의 남도자락의 끝은, 그가 지닌 결백성과 선비같은 꼿꼿함, 여리고 예리한 감수성이 감내하기에는 힘든 허무의 공간이었다. 특히 장남이라는 가족간의 서열과 수재라는 칭호에서 앞서가야 한다는 책임감은 강박과 불안감을 일으키고 그러므로 그의 트라우마, 어린시절의 각인, 흔적들은 후에 구름과 장미, 꽃 처용 이중섭 예수 도스토예프스키 등으로 치환된다. 그것은 그의 관념의 뿌리가 되고 그의 정신과 사상, 상상력을 지배하게된다. 성격도 외모도 털털한 향토적 성격이라기보다 도시적 깔끔한 성격의 세장형으로, 어린 소년은 이 땅 그 시대에는 맞지 않는 불편한 옷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외국의 선교사들과의 만남은 그의 문학세계의 이국정취를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고 릴케 또는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영향을 받는 것은 어쩌면 그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의 글이 전반적으로 외래풍, 외래어가 많이 들어가는 것도 그가 처한 시대적 상황과 그가 지닌 성격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이때 역사의 상대성과 역사가 쓰고 있는 탈이 이데올로기라는 것을 똑똑 히 본 듯했다. 역사가 절대적이라고 그리고 그것은 탈이 아니라 진짜 자기 자신의 얼굴인 것처럼 억지떼를 쓰는 그 꼴이 내 눈에는 바로 폭력 그것으로 비쳤다. 그렇다 한동안 나에게 있어 역사는 그대로 폭력이었다.
역사의 이면에는 이데올로기와 폭력이 도사리고 있어 허무주의자가 됐음을 고백하는 의식의 배후에는 곳곳에 얼룩진 상흔의 노래와 가락이 있다. 처용이나 타령조가 그런 것인데 그것은 바로 자아로 연결되고 무의미 시를 낳는 원인이 된다. 의미와 역사의 폭력으로부터 멀어지려는 자아의 명분과 합리화다. 그것은 유기체를 보존할 수 있는 일종의 디펜스이다. 역사의 무지한 폭력 앞에 말 한마디 못하고 무릎 꿇는,그것은 무의식 속에서는 수치심으로 작용한다.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이전에 이것은 참을 수 없는 모욕이다. 김춘수의 자존심을 건드린 일제 말기의 영어생활,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는 민족상잔의 혈투, 이런 어이없는 역사 앞에 맞서는 방법은 무의미였다. 애써 초연해야 했다 시에서 의미를 배제하려는 무의미 시는 이러한 구조에서 탄생한다. 관념과 대상으로부터의 자유, 유희, 언롱을 통하여 사회적 상징체계인 말을 파괴하고(타령조) 그 피안을 탐구해 들어가는, 과정이지만 내면의 세계는 폭력을 폭력으로 대항 못 할 때 일어나는 수치심이다. 이때 유기체를 보존하는 디펜스의 합리화는 의미를 무의미로 대항하는 것이다. 의미 없음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애써 외면하는 것이다. 거대한 역사의 폭력 앞에 무릎 꿇 수 없었던 김춘수의 자존심, 저항의 수단으로 역사를 외면하는 수단으로 무의미의 시가 출현한 것이다. 그러나 김춘수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여기서 죄와 구원의 사이에서 들려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는 도스토예프스키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역사의 폭력을 제어하려는 음모를 꿈꾼다. 그리고 존재의 본질, 허무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감행한다. 김춘수는 끝까지 인간의 자존심과 구원을 외치며 강력히 부패한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외치는 것이다.
자넨 소냐를 만나/무릎 꿇고 땅에 입맞췄다/그러나/나는 언제나 외돌토
리다/그때/우들우들 몸 떨리고/눈앞이 어둑어둑해지면서/나는 거기 주저
앉고 말았다/내 머릿속에 있을 때는/그처럼이나 당당했던 그것이/즈메르
자코프 그 녀석/그 바보 천치에게로 가서 그 모양으로/걸레가 되고 누더
기가 되고 끝내는 왜 그 녀석의/똥창이 됐는가/견딜 수가 없다/어디를 바
라고 나는 내 풀죽은/돌을 던져야 하나/ -페테르부르크 우거에서 이반
"라스코리니코프에게" 전문
위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설의 배경을 잠시 살펴보아야 한다. 자신의 욕망과 주색에 빠져 가정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 표트르까라마조프가 도덕적이고 고결한 그의 큰아들 드미트리의 애인 구르센카에게 철면피하게 접근함으로써 얘기의 갈등은 심화되고 그런 과정에서 표트르는 살해당한다. 그러자 드미트리는 의심을 받게되고(사실은 간질병환자인 사생아 스메르자코프가 저질른 일이다.) 결국은 실형을 언도 받고 시베리아로 떠난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구르센카도 그 뒤를 따른다는 얘기다. 그럼 라스코리니코프는 누구인가? 그는 "죄와 벌"에 나오는 인물로 신의 권능과 인간을 동격으로 보는 가난한 대학생으로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소냐라는 여인에 의해 참회하고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난다. 위 시는 이 사실을 안 드미트리의 동생 이반이 라스코리니코프에게 보내는 글이다. 이반은 표트르의 둘째아들로 신이 없다면 인간이 세상을 심판할 수 있다고 믿는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다. 그렇다면 왜 이반이 라스코리니코프에게 심정적 고뇌의 서한을 보냈을까 ? 그것은 부도덕한 인간을 인간이 심판할 수 있다는 라스코리니코프의 행동의지에 부러움과 자신은 형의 누명을 벗겨주지 못한 죄책감에 대한 심경의 토로인 것이다. 이 시집의 상호 텍스트성의 이런 실험은 김춘수 자신의 역사적 박탈의식에 기인한다. 언어도 국토도 문화도 정신도 빼앗긴 어린 시절의 무의식의 파편들, 정체감의 혼돈에서 이반(김춘수)이 본 라스코리니코프의 행동은 고뇌하는 자의 치열한 내적 과정을 통한 대리만족이며 성취이며 의지이기 때문이다. 이미 무의미시의 여행에서 아내를 빼앗긴 처용의 비애와 아내를 잃고 방황하는 이중섭의 비극적 삶에 천착하는 것도 그들의 비극적 삶에 가치부여를 함으로써 존재의 본질, 허무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가 지난 82년 국회의원 신분으로 망명객 윤이상을 방문한 것도 조국의 암울한 현실과 고향을 돌아갈 수 없는 떠돌이 윤이상에게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누고자 함이었으며 그가 육체적 고통을 감내하면서 의지를 실천하는 인물들에 존경심을 표하고 있는 것도 우리민족의 아픔으로 귀결된다. 민족 수난이 계속 겹치는 김춘수의 80년사는 폭력, 그야말로 허무, 아픔의 세월이었음을 그는 수필집 "꽃과 여우"에서 토로하고 있다.
이제 그는 80을 넘어섰다. 아직도 그는 문단에 선두에 서서 시대를 인도하고 있다. 젊은이 못지 않음이 아니라 젊은 시인들을 리드하고 있다 만일, 한국문단에 김춘수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불문가지, 우리의 현대시는 심한 절름발이가 됐을 것이다 "구름과 장미"를 출발점으로 시작된 시의 여정은 "꽃의 소묘""부타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처용단장"으로 한국문학사에 의미와 무의미의 새로운 경계를 그어주었으며 90년대와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들림, 도스토예프스키", "의자와 계단", "쉰 한편의 비가" 등 빼어난 시집들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그의 지적실험과 탐구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으며 지금도 이유를 따지며 못다한 여행를 하고있는 것이다. 과연, 팔순이 넘는 나이를 무색케 하는 김춘수의 끝없는 문학의 여정은 어디가 끝이며 완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