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文學과 評論

삼월아, 놀자!

by 담채淡彩 2012. 1. 20.

 

삼월아, 놀자!

  -신현정 시인론                    

                             /손현숙



  질문은 처음부터 위험했다. 그것을 몰라서도 아니었고, 정확한 대답을 원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가 어떤 표정을 지을까, 궁금했었다. 질문은 이랬다. ‘시가 뭐라고 생각하시지요?’ 짐짓 진지하게, 아니 미친 척, 내가 그를 향해 거침없는 하이 킥을 날린 거다. 예상했던 대로 그는 한동안, 아니 사람 깔보는 듯, 나를 바라보더니 아예 질문을 무시해버렸다. 그는 아마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앞과 뒤도 재지 않고 달려드는 느닷없는 우문에 현답을 했다가는 스타일 확 구긴다는 빠른 계산이 지나가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는 아주 멋있게 자신의 없는 시론을 고백하기 시작했다.


그게 맨드라미꽃이었던가


맨드라미 꽃술에 꿀벌이 들자마자


신고 있던 고무신으로 냅다 나꿔채어


그걸 귀 가까이에다 빙빙 돌려본 것인데


아마 그때 웽웽 불자동차 달리는 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랬었구나 아무래도 결국엔


내 스스로 화엄이든 연옥이든 어디든 가서


불을 맨발로 밟아 꺼야 할 것 같다


                                 <고백> 전문



  삶이란 너무 중요한 것이기에 늘 진지하게만 말할 대상은 아닌 것이다. 그는 어디선가 전작을 하고 약간 취기가 돈 채 장난기가 동하는 듯싶었다. 느닷없이 자신이 다시 술을 먹게 된 동기와 유일한 식솔인 진돗개와 그리고 비가 억수로 퍼붓던 어느 날 밤의 사건, 그리고 자신의 곁을 유유히 떠나간 여자에 대해서 말을 시작했다. 뭔가 인생의 커다란 비밀을 호주머니에서 꺼내듯 작은 목소리로 살살 나를 유인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그가 담배를 피웠는지, 끊었는지, 이별을 했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연에 마음이 쓰였다. 스스로 화엄이든 연옥이든 걸어가서 자신의 불을 맨발로 꺼야겠다는 사내의 배포는 진정 어떤 것일까, 아니 그것보다도 지금 시단에서 누구보다도 시를 열심히 쓰고 많이 발표하는 그가 그동안은 도대체 어디서 누구의 무엇이 되어 살고 있었던 것일까?

  20년의 공백을 넘어 그가 다시 시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 그럼 그동안 그는 시와는 영영 등지고 시의 노숙인으로 살았던 것일까? 돈 벌고 새끼 낳고 아내랑 알콩달콩 잘 살다가 어느 날 발병하듯 밥 먹다 말고 뛰쳐나와서 원고지에 시를 받아 적기 시작했을까? 아무리 봐도 이사람, 시가 없으면 삶도 없을 것 같은 사람인데, 그동안 어디서 누구의 무엇으로 살며 웅크리고 있었을까?


방울토마토 가지에 진딧물이 잔뜩 끼었다


그 아래 무당벌레 한 마리 뒤집혀져 있다


어쩌면 저렇게 꼼짝 안할 수 있나


죽은척한다


뒤집혀져 있다


발을 하늘로 향하고 있다


하늘이 파랗다


죽은척한다


정작 우리네 죽음도 죽지 않고 죽은척으로


조렇게 감쪽같이


무당옷을 화려히 입고 죽은척 죽은척,


                                <무당벌레> 전문


  가족이 모두 이국 만 리로 떠나고 대신 시가 왔단다. 남자가 나쁜 일을 할 만큼 충분히 나이가 들었을 때 이와 마찬가지로 옳은 일을 할 만큼의 나이도 들어야 한다더니, 아마 그에게 옳은 일이란 모든 것을 내려놓고서라도 선택해야 했던 시가 아니었을까. 그는 가족 대신 시를 선택한 것이다.

  그의 곁에는 지금 진돗개 세 마리가 남아 있다. 비가 억수로 퍼붓던 그 날, <술을 끊고 낙이라고는 진돗개 세 마리 돌보는 재미로 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자신을 반겨야 할 개 세 마리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에 가장 큰 어미인 삼월이를 목 놓아 불렀다. 그러나 삼월이는 대답이 없었다. 대신 뭔가에 질려있는 어린 새끼 두 마리가 오독하니 집을 지키고 있었다. 진돗개 삼월이는 무엇에 위협을 느꼈을까? 이웃집 강아지를 한 입에 물어 죽이고 어디론가 자취를 감춘 후였다. 이제 그는 삼월이도 떠나고 없는, 사방 벽으로 둘러싸인 현실을 바라본다. 노아가 방주에서 풀려났을 때 느꼈던 절대 고독과 절망을 그도 함께 느끼면서, 노아가 그랬듯이 그도 술병을 꺼내 든다. 마시고 잊고, 잊고 마시고,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실감하면 할수록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믿지 못하며, 그는 악마가 건네주는 술잔을 기꺼이 비운다. 외로움이 촛대 뼈에서 시작하여 살살 목구멍까지 치솟아 오를 때 까지 그는 오늘도 마시고 또 마신다. 자신이 외롭다는 것을 잊기 위해서, 그리고 술 마신다는 그 사실마저 잊혀 질 때까지. 당신은 그런 경험이 있으신가? 세상에 나 혼자라는 절대 고독을 느꼈을 때, 흙이라도 파먹고 싶었던 어느 한 순간. 모르긴 몰라도 그는 지금 그런 한 철을 맞이하고 있는 모양이다.


풍뎅이를 잡아


한쪽 날개를 떼고는


등짝으로 돌게 해

............

나, 언젠가 그만 하나님에게 잡혀


꼼짝달싹 못하고 그저 등짝으로 누울 때

.............

하늘을 어지럽게 돌면서


너 비겁하게 괴롭힌 죄 아니어도 풍뎅아


땅이라도 한번 깨끗하게 쓸어주고는 가야 할텐데


풍뎅아 풍뎅아,


                                <풍뎅이> 부분



  절대 고독을 이야기할 때도 어떻게 그는 이렇게 유쾌할 수 있을까. 담담할 수 있을까. 세상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들이라며 그는 슬픔을 농담처럼 가볍게 받아친다. 신경이 예민한 사람들은 자신이 민감하기 때문에 남에게 폐를 끼치는 사람이라는 말을 명심하면서, 그는 그저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을 장식 없이, 장치 없이, 시적진술에 기대어 또 다른 시세계를 펼쳐 보인다. 남들과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독특한 시선으로 즉물들을 시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드디어 그는 이 세상 만물과의 놀이를 시작한 거다. 마치 광고의 카피처럼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정확하게 정곡을 찌르는, 그래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라는 권투선수 알리의 말처럼, 그러고 보면 그는 울퉁불퉁 맞고 때렸던 흔적도 보인다. 아니 내 눈에는 누군가에게 흠씬 두드려 맞은 듯한 아픔이 만져지기도 하는데. 뭘까? 그에게서 느껴지는 거친 듯 하면서도 보드라운 결 같은 것. 논리가 빗겨가는 그의 표정. 투박한 느낌이었다가도 입을 활짝 열어 웃으면 금세 공기를 맑게 풀어헤치는 저 이상한 힘은? 아름다운 지옥에서 살다온 사람처럼 추억의 속도대로 삶을 거꾸로 운영하는 것 같은, 야릇한 손아귀의 힘 같은 것. 나는 다시 시간을 벌기 위한 우문을 시작했다. 깡패세요? 아니면 바보?


뻐꾸기시계에서 뻐꾸기가 나와 노래한다 즐겁게 즐겁게


어디에 알을 낳았나보다 즐겁게 즐겁게


때 맞춰 식구들 나가고 들어오고 즐겁게 즐겁게


모두들 나가고 즐겁게 즐겁게


모두들 떠나고 빈방에 홀로남아 즐겁게 즐겁게


나, 적막강산에 들었다 즐겁게 즐겁게


                                <탁란>전문


  진정한 예술가는 절대적으로 자신을 믿는 사람이라는데, 왜냐하면 단연코 그가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라는데, 이 남자 적막강산에 들어서도 울음을 삼키면서 즐겁게 즐겁게 노래하는 이 남자, 엎어놓고 패주고 싶다. 비 오는 날 먼지가 풀풀 나게 말이다.

  울고 싶으면 실컷 울 일이지 즐겁다니. 정말 즐거울까? 그가 즐겁다고 말하면 할수록 나는 왜 더 답답하고, 슬프고, 생각이 생각의 극점까지 밀고 가서 유신과 무신의 관계까지 의심하게 되는 것일까. 불가능을 원치 않는 사람. 나 같은 유신론자들은 언제나 불가능을 소원하는데, 그러고 보면 그의 시 속의 화자는 단 한 번도 미래를 소원하지 않았다. 자신의 한계를 정확히 아는 지성인답게 그는 불가능은 절대 원하지 않는 무신론자이다. 그저 매일매일 의식과 반항을 통해서 운명에 도전하는 이 땅의 자유주의자.

  표현은 사고가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되는 거다. 위대한 시는 철학적 인식이 있어야만 가능한 거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의 사유이자, 철학이 되는 것이다. 즉 없는 시론, 그 방대함의 의미는 아는 사람만이 알고,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입문할 수 없는 현대판 초인의 사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그의 사고를 어렵지 않게 시로 직접 그려내는 것이다.



토끼에게는 달의 향기가 난다


분홍눈은 단추같다


앞이빨이 착하게 났다


토끼의 두 귀를 꼬옥 쥐어봤으면 했다


몽실했다


두 귀를 잡고 공중으로 들었다 내렸다도 해 보았다


토끼와 시이소를 타고 싶었다


그러면 토끼는 올라가고 나는 내려오겠지


토끼는 구름이 되겠지


아하함 이참에 토끼와 줄행랑이나 놓을까,


                        <토끼에게로의 추억> 전문


  광대는 성공하든 성공하지 못하든 그저 광대 짓을 해야 광대다. 잘 쓰던 못쓰던 결국 시를 쓰는 사람이 시인이다. 중요한 것은 영원한 삶이 아니라 영원한 생동감이듯이 이 남자, 결국 달 속의 토끼를 제 손아귀에 넣었다. 함께 시소를 타고, 두 귀를 잡고 공중으로 들었다 놨다 하면서 급기야는 능청스럽게 하늘을 배신하고 토끼와 줄행랑 놓을 계획까지 세운다. 하긴 ?이방인?의 뫼르소가 단지 햇빛이 눈부시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였듯이 시인은 봄밤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남의 자전거를 훔쳐 타고 엉덩이를 한껏 높이 쳐들고 꽃나무 사이를 유유히 빠져 나갔던 사람 아니던가. 감히 눈도 뜨지 못하고 소리로만 청해 불러야 하는 우리들의 야훼를 ‘잔뜩 부어있지 말고 이리로 내려와서 놀다 가라고’ 천연덕스럽게 농을 치기도 하는 사람. 낮달이 공짜라고 아이처럼 손뼉치고 좋아하기도 하는 시인.

  그는 어쩜 시지프스의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무력하지만 반항하는 시지프스! 바로 저 정상에서 되돌아 내려오는 걸음, 잠시 동안의 휴식 때문에 즐거워하는 부조리 인간. 하나님도 간섭할 수 없는 휴식의 시간에 놀이를 즐기는 시지프스. 맞다, 그는 어쩜 행복과 불행이 같은 땅이 낳은 두 아들이듯이 그림자 없는 햇빛이란 없기에 그의 불행은 곧 놀이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불행을 향한 투쟁의 방식으로 그는 사물들과의 유쾌한 놀이를 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불행의 바로 그 순간, 삶을 즐긴다는 역설의 유희. 그가 운명에 도전하는 독특한 방식일 거다.


모자를 쓰고 싶을 때가 있다


휘파람새 같은 것으로


너구리 같은 것으로


물고기 같은 것으로


.......


모자를 쓰고 쏘다니고 싶을 때가 있다


.........


그럴 땐 악어 같은 것으로


뒷주머니에 꾸겨 넣고 쏘다니고 싶을 때가 있다


                                <바람난 모자>부분


  시, 사랑, 기도, 신앙의 비밀은 열린 마음이다. 시인은 지금 어디로든지 가고 싶다. 아니 무엇이든지 되고 싶은 거다. 바람이나 구름, 하나님이나 아이스크림, 아니 무작정 당신이 되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는 이미 바람난 모자. 어디론가 쏘다니고 싶은 그의 마음을 누구도 결코 잡아 앉히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어쩌면 이 세상에서 이해될 수 없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그는 당신을 절대 이해 할 수 없을 지도 모르는 일. 그가 편히 쉴 수 있는 곳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과 이미 죽은 사람들 사이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라, 그는 악어 같은 것으로 뒷주머니에 꾸겨 넣고 어디론가 쏘다니고 싶다지 않는가, 불을 붙인 불꽃처럼, 그러나 급기야 제 발로 비벼 끄고 마는 불씨처럼, 그는 죽음 앞에서도 삶을 농담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구겨서 뒷주머니에 스윽, 찰것만 같다. 두려운 것은 죽음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생각이 아닐까. 이 남자 앞에서는 삶도 죽음도 그저 지나가는 시간에 불과하다.


마누라 하고 그거 하다가


아예 나 들어가고 싶어라


자궁 속에


우리 마누라 나 술 먹는거 때문에 고생하는 우리 마누라


이 세상에 엄마 하나 더 삼고 싶어라


양수에 싸여 있고 싶어라


눈 없고 입 없고 그냥 커다란 무개골로 있으면서


양수 먹으면서


딸꾹질 하면서


발가락 꼼지락 거리면서


한 열 달 웅크리고 있다가


그만 으앙 하고 울음을 터트리며


내 발로 걸어나오고 싶어라


                        <신생> 전문


  다시 삼월이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시인은 삼월이의 아버지. 어디론가 사라진 삼월이를 찾아 애타게 온 산을 찾아 헤맨다. 이웃집 개를 물어 죽인 삼월이. 아랫집 사람들은 깡패처럼 떼로 몰려와서 시인을 윽박지른다. 삼월이는 말 못하는 짐승. 그들 앞에 삼월이의 아비 된 죄로 엎드려서 빌고 또 빈다. 삼월이를 측은해 하면서, 또 삼월이의 이빨에 죽임을 당한 어린 영혼을 애도하면서. 아무도 없는 방에 돌아와 숨겨둔 술병의 뚜껑을 딴다. 그 후로 밤이 어떻게 아침으로 달아났는지, 또 아침은 또 어떻게 밤과 몸을 섞었는지, 시인은 죽음의 문턱까지 술병을 들고 달린다. 아내의 이름을 불러 보지만 그녀는 너무 멀리 있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그 여자는 거기서 나를 사랑하고, 나는 여기서 그 여자를 사랑한다. 사람이 삶을 배우는 데는 일생이 걸린다고 하던데, 사랑을 배우는 데도 일생이 걸릴지 모르겠다. 그가 들어가고 싶은 자궁인, 그 여자. 그는 다시 태어나고 싶다. 제 발로 자기 여자의 자궁 속을 뻘뻘 걸어서, 하늘 속을 저벅저벅 걸어서, 한 열 달 쯤 웅크리고 있다가, 하나님 몰래 아내의 배속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은 시인.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반짝반짝 빛나는?에는 은사자 이야기가 나온다. 색소가 희미한 돌연변이 사자인데, 완연한 은색이다. 보통의 사자들과는 모습도 다르고 성정 또한 상이하다. 그들은 당연히 사자들로부터 따돌림을 받는다. 그러나 은사자는 오히려 사자들과 멀리 떨어져서 독특한 삶의 형태를 이루며 행복하게 살아간다. 멀리서 인간들이 지켜보기에 은사자는 뭐랄까, 신의 아들 같기도 하고. 못다 이룬 사랑 같기도 하다. 모르겠다, 왜 갑자기 은사자 생각이 난 것인지는. 그러나 시인의 시를 읽는 내내 그가 혹시 은사자가 아닐까, 라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우리 보통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실존의 틀을 가진 시인. 누가 알까, 그 여자의 자궁 속으로 다시 들어가 다시 태어나고 싶은 저 남자, 가슴 아픈 생이라는 동화!  







'文學과 評論'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 시가 갖고 있는 덕목들/이승하  (2) 2012.02.20
감각의 향연   (0) 2012.01.20
좋은 시에 나타나는 상징(은유)의 예  (0) 2012.01.20
花頭, 영원한 話頭   (0) 2012.01.20
나의 애송시  (0) 2011.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