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암 나루 언덕에 서서 - 옴니버스 형식으로/담채
이슬 걷힌 아침
홀로 강변에 서서
남쪽 하늘 바라보던 한 사내가
흐르는 남강 물결 위에
부귀 권세 다 던지고
내리 사흘 밤낮
마음 벼려
장부의 길 들었으니
선조 25년 음력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벼슬의 뜻을 접은 젊은 유생 곽재우는 부처님 귀와 같이 가지를 늘인 의령 세간리世干里 느티나무 가지에 큰 북을 걸었다 이 현고수懸鼓樹 북소리는 날개를 단 듯 조선 팔도 방방곡곡 울려 퍼져 낮은 처마 아래 순한 민초에게도 새파란 보리밭에 오줌을 퍼 나르던 농부에게도 덕망 높은 양반가에도 날아가 닿으니 이 산 저 산 봉우리를 넘어간 북소리는 조선 최초의 의병을 불러 모으는 단초가 되었다
당시 41세 유생 곽재우는 가재家財를 풀어 도처에서 운집한 의병들을 재우고 먹이며 훈련을 시켰다 이후 의병을 지휘한 곽재우는 천강홍의대장군 깃발을 날리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왜구들을 물리치니 그가 나타나는 곳마다 북진하던 왜구들은 칼칼한 쇳소리에 혼비백산 비루에 다다른 생을 끌고 줄행랑을 쳤다
부는 바람과 떠도는 구름 가볍게 흘렀으나
여태껏 본 적 없는
백의白衣의 함성
바람과 비의 길을 거슬러 사방 천리로 뻗어나갔는데
그 해 음력 5월 왜군 1만 5천이 부산 함안을 거쳐 북진하던 중 선발대 2천여 명이 남강 도강을 목적으로 충절의 고장 의령 정암진鼎巖津에 집결했다 이곳은 홍의장군 곽재우가 눈을 감고도 구석구석 박혀 있는 돌멩이 하나까지 꿰뚫고 있는 곳이었는데 붕어 잉어 메기 미꾸라지 송사리 모래무지 사이좋게 살아가는 남강을 함부로 건너려던 왜구들은 매복 중이던 의병 앞에 모두 무릎을 꿇었다 갈대 우거진 남강 기슭이 피로 물들었으니 속 깊은 강물인들 어찌 무심히 흘렀으랴
사람이 살아간다는 건
몇 개의 흰 뼈와 눈귀를 물려받아 조상의 얼을 오롯이 이어가는 것
몇 번의 겨울 가고
다시 봄 오고
꽃들은 사명을 다하여 향을 날리니
의령의 백성들은 푸른 남강 물에 발 담그고 삽을 씻어 안심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이때에도 연이은 왜구의 침략과 벼슬아치들의 정쟁으로 나라가 혼란에 들었으나 홍의장군 깃발이 펄럭이는 의령 땅만은 왜구들도 감히 넘보지 못하였거늘 논에서는 벼 이삭이 여물고 밭에서는 감자와 마늘 밑이 둥글어갔다 인근이 평화로웠다
긴 7 년 전쟁이 끝나자 장군은 억새풀 우거진 비슬산에 홀로 들어 두문불출 외로운 말년을 보냈다 명문가의 아들로 태어나 붓 대신 구국의 칼을 들었던 그는 낙동강변 망우정忘憂亭에서 66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쳤다 전공을 내세워 치하 받기를 원치 않았으며 벼슬도 마다했던 그는 사후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충익忠翼이란 시호를 받았으나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살아생전 예장을 갖추지 말라 유언한 그의 곁에 남아있던 것은 단벌옷과 거문고와 낚싯배 한 척이 전부였다
강바람 다녀간 정암 나루 언덕
망초꽃 피고 진
그 세월 얼마던가
남강 깊은 물소리
머리에 이고
수백 년 감았던 눈 번쩍 뜨고 보니
지금도, 선명한 북소리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