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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年日記

老年日記72 - 나는 이미 너무 둥글어졌다

by 담채淡彩 2025. 2. 25.

 

老年日記72 - 나는 이미 너무 둥글어졌다/담채

 

수수 천리 저 너머의 공간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물기 빠져나간 바람의 흰 깃털이 저녁 숲에 흩날렸다

깊은 숨을 몰아쉬며 빠져나가는 시간들이

달력 속에 굵은 빗금을 긋고 빠져나간다

 

미로처럼 휘어진 길 위에

켜켜이 응축된 시간들,

팔을 들면 어깨에서

일어서면 무릎에서

뚝,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난다

쟁기를 끌고 가는 늙은 소의 위대한 도가니를 생각하며

나는 이미 너무 둥글어졌다고

버릇처럼 되뇌어본다

 

길 위에서 나는

구원에 이를만큼 나에게 충실하며 살았던 적 있었던가

가시 숲에 긁히며 돌아온

지친 새들이 다시 하늘을 오르며 휘파람을 분다

따뜻한 이승이다

나는 지금

내 삶을 가장 깊게 하는

슬픔 하나를 이해하는 중이다

 

바람이 분다

그 파문에 나도 잠시 흔들려

한 시절이 모두 북으로만 가고 있나니

허공에 지은 집이 또 한 번 와르르 무너지고 있다 

 

2025.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