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일기73 - 허공을 메우는 삶/담채
처음으로 魂을 얻어 어떤 근원과 마주쳤던 순간처럼
바람결에도 쉽게 婚을 다치던 날들이 많았다
단 한번의 눈마춤으로 영겁을 드나드는 인연처럼
혼이 불려나가는 밤이 있다
오늘도 햇빛과 바람과 나무들의 살림살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다
착한 저녁 속에서 꼼지락거렸다
하루를 걸어온 길이 당도처럼 끈적거렸다
층층이 쌓이는 잡념들을 씻어내고 있다
그 사이로 문득 아직 야생인 내가 지나가고
낙타를 닮은 내가 보이고 문득 절벽을 오르는 내가 보인다
내가 사는 일은 날마다 허공을 메우는 일이다
각을 세워 허공에 집 한 채를 짓고
또 한 채를 짓고 나면 다시 허공이 들어서는
가끔씩은 허공을 짓이겨 강가에 풀기도 했었다
돌아보니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또 돌아보니 아무 것도 쌓인 게 없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꽃은 지고 구름은 흩어지고 물은 흐르고
풀잎은 밤새 추위를 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年長者가 되고 노년이 되고
세월은 내 生이 소모적이었음을 안다
사람들 몰래 지구는 자주 기우뚱거렸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계획을 쏟거나 계획 밖으로 튕겨져나갔다
담 밖 꽃 진 나무들이 어떻게 바람소리를 듣는지 궁금했다
삶이란 이해되지 않으므로 오해할 수 있어 좋은 것이다
2025.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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