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부일기 - 12월/
가랑비 내리는 이상한 겨울 아침
외로움이 분무된 시를 읽으며
“운명을 믿기 시작했을 때 나는 병이 들었다”는
어느 시인의 초고를 보며
그 시인의 통증에 나는 전염이 된다.
우리는 山이 되지 못하여 서로의 시를 읽기만 할 뿐, 아직
시인의 황홀한 구원이 보이지 않음으로
세상으로 향한 나의 작은 틈새도 흔들린다.
나는 ‘하나님의 뜻’이라거나 ‘다 인연’이다 라는 말법을 좋아하지 않는다.
발은 자꾸 헛디뎌지고 내 삶은 좀처럼 노래가 되지 못했다.
노래가 되지 못한 언어들은 입 안에서 술렁이다가 자주 치아를 흔들다가 멈췄다.
벌써 몇 해를 모래 바람 속을 헤매고 다녔다.
삶이란 거의가 운명이거나 아니면 나도 모르게 미리 다 정해져 있는 듯했다.
오늘도 헛된 꿈을 꾸는 나는
삶이 우리에게 한번쯤 허락하는 봄날이 있을 것을 믿는다.
엄연한 겨울인데 비가 내린다.
마른 피 같은 낙엽 위로 비가 내린다.
2023.12. 14
12월/담채
가보지 않은 길 위에 서서
다시 우러르는 하늘
노을 앞에 서서
하루를 되뇌일 때
언제나 나는
멀리 떠나 있다 돌아온 것만 같다
聖者가 울고 간 거리에 눈이 내리고
영혼의 결정이
몸보다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날
부적 같은 송구영신의 덕담을
너에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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