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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作詩

마늘을 까다

by 담채淡彩 2015. 7. 11.

마늘을 까다/서윤규


마늘을 깐다.
쪽수만 많은 마늘처럼 보잘것없는 날들의
껍질을 벗겨낸다.
이제 더 이상 쪼갤 것도 없는 살림살이들을
하나하나 벗겨내다 보면
단단한 세월의 껍질 속에 숨어 있던
얇고 투명한 눈물의 막이 벗겨진다.
망막을 자극하며
혀끝을 도려내는 맵고 아린 날들의 기억 끝으로
죽죽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이
얼룩무늬 벽지를 적신다.

함지박 가득 마늘을 깐다.
쪽방촌 쪽방으로 나앉은 가난의 껍질이
쪽방 가득 쌓인다.
쪼개면 쪼갤수록 늘어만 가는 근심, 걱정처럼
얼얼한 손끝마다 지독한
슬픔의 냄새가 묻어나고.
끈질기게 따라붙는 슬픈
냄새의 끝으로 한없이 달아날 적마다
작고 야무진 그녀의 손끝에서
풀죽은 삶의 껍질을 벗고 다시 태어나는
마늘쪽 같은 사내.

먹구름 속 천둥, 번개가 치는 하늘도 오늘은 두 쪽이 났는지
겹겹 구름의 껍질을 벗으며
하루 종일 눈물을 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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