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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어떤 가난*

by 담채淡彩 2022. 7. 31.

어떤 가난 /담채

                                              
막걸리를 많이 좋아하셨던 詩人 천상병
그는,
밥 먹을 자격도 없는 놈이라고
스스로에게 다그치며
탁한 막걸리 한 사발로 몸을 데웠다

찌그러진 빈 양재기 같이
시퍼렇게 녹슬어 있는 달을 올려다보며
막걸리를 마셨다

세상을 ​소퐁 온 것처럼 살아냈던 그는
단 한 번
歲月 앞에 무릎을 꿇었다

꿈에서라도 만난다면
막걸리 몇 병과
부침개 한 장 달랑 들고 가 물어보리라

이승의 누더기는 어디에 벗어두고 가셨는지
가난은 어떤 별로 떠
아찔한 빛으로 세상에 오시는지

누님 같던 그의 아내
목순옥 여사가 그의 뒤를 따라갔다

​하늘에서 아내를 영접할 것이다
地上의 모두를 데리고 소풍을 갔다

2010.10

* 수락산 산자락에서 詩人이 살았던 집
* 천상병 詩人이 글을 쓰며 기거했던 수락산 산기슭 구옥이다.
  재개발로 철거가 결정된 이 집을 내가 사는 안면도로 옮겨 그대로 복원했다.

​아래 사진은 그가 기거하던 가옥의 연탄을 때던 부엌이다.
1993.04.28 가난했던 한 시인이 천국으로 떠났다.
800여 만원의 조의금이 들어왔다
詩人의 장모는 이 큰 돈을 어디다 숨길까 걱정하다가 퍼뜩 떠오른 것이 아궁이였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시인의 아내는 하늘나라로 간 남편이 추울 거라는 생각에 아래 사진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조의금은 그렇게 모두 불타버렸다.

평생 돈의 셈 법이 어둡고 돈으로부터 자유로왔던 시인.
그처럼 숫자 계산에 어둡고 어린애 같은 셈법으로 살다간 시인은 '서울상대' 출신이다.

위 집 아궁이에 조의금을 불태웠다

 * 집필하던 방, 액자 속 詩는 등단시 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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