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밥통/담채
배가 고픈 어미 소와 새끼소에게 여물을 주면
어미 소는 새끼가 여물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린다
축생에게도 이토록 경건한 위아래가 있거늘
xx시청에 상담할 일이 있어서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처음엔 제법 공손한 듯 싶더니 몇 마디를 건너가자
“어~ 어~, 음~음~” 거의 반말투다
60년 풍상 벌써 지나간 내 나이
목소리만으로도 나이대를 짐작했을 텐데
자식 또래 철밥통은 끝까지 당당하다
나는 끝까지 존댓말을 썼다
들녘에서는 다 여문 벼이삭이 고개를 숙이는
망극한 계절이다
2007.03
어느 시인이 말씀하셨던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이놈 저놈에서 이분 저분으로
끌어올려 주는 것이 윤리라고
그것을 가능케 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사랑은 대상 앞으로 우리의 몸을 한없이 낮추게 만든다.
키 낮은 꽃다지, 달개비 꽃 앞에 렌즈를 갖다대고 있는
저 분. 얼마나 큰 사랑이 담겨있기에 땅바닥에 한사코
몸을 붙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