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가리 김치찌개 /강성백 섬에서 배 타고 유학 갔던 고등학교 때 방학 때마다 나는 고향을 찾았다 얼음장 하늘에 잎을 내민 보리밭이 하얗게 질려가는 겨울 밤 밖에는 죽어라 무너져라 눈이 내리고 나는 좁아터진 방 안에서 한 식구처럼 살고 있는 고구마 자루 옆에서 오래도록 소설책을 읽었다 첫닭이 울 때까지 소설책을 읽었다 어머니는 그런 대견한 아들이 밤을 새워 공부하는 줄 아시고는 조용히 부엌으로 나가 참기름 아낌없이 부어 끓인 김치찌개와 흰 고봉 쌀밥을 밤마다 내오셨다 밖에는 모진 북풍, 흰 눈발 섞어 치는데 더 먹어라 더 먹어라 칼도 안 댄 배추김치를 쭉쭉 찢어서 얹어주시던 어머니 내 몸속에는 이미 오래 길들여진 어머니의 손맛이 간기처럼 배어있었다 아내와 두 남매 서울로 밀어 올리고 섬에서 서울로 보름 만에 한 번 아내에게 간 날 고등어자반이며 쇠고깃국이며 제법 차려진 밥상 앞에서 어찌하여 그 투가리 김치찌개가 사월 보리밭처럼 새파랗게 일어나는지 199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