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自作詩

투가리 김치찌개

by 담채淡彩 2017. 1. 15.

 

 

 

  투가리 김치찌개
                 /강성백
 
 
섬에서 배 타고
유학 갔던 고등학교 때
방학 때마다 나는 고향을 찾았다
 
얼음장 하늘에 잎을 내민 보리밭이
하얗게 질려가는 겨울 밤
밖에는 죽어라 무너져라 눈이 내리고


나는 좁아터진 방 안에서  
 식구처럼 살고 있는 고구마 자루 옆에서
오래도록 소설책을 읽었다
첫닭이 울 때까지 소설책을 읽었다
 
어머니는 그런 대견한 아들이 밤을 새워 공부하는 줄 아시고는
조용히 부엌으로 나가 참기름 아낌없이 부어 끓인
김치찌개와 흰 고봉 쌀밥을 밤마다 내오셨다
 
밖에는 모진 북풍, 흰 눈발 섞어 치는데
더 먹어라 더 먹어라 칼도 안 댄 배추김치를
쭉쭉 찢어서 얹어주시던 어머니 
 
내 몸속에는 이미 오래 길들여진
어머니의 손맛이 간기처럼 배어있었다
 
아내와 두 남매 서울로 밀어 올리고

섬에서 서울로 보름 만에 한 번 아내에게 간 날
고등어자반이며 쇠고깃국이며 제법 차려진
밥상 앞에서
 
어찌하여 투가리 김치찌개가
사월 보리밭처럼 새파랗게 일어나는지




1990.02 

  

 

'自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징소리  (0) 2017.09.22
  (0) 2017.05.15
아버지의 거미줄  (0) 2016.07.26
아래부터 죽는다  (0) 2016.05.23
마늘을 까다  (0) 2015.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