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90 -이 한 장의 사진/담채
이제는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나이
지는 해를 서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
그리하여 무사하게 무료한 날 오래된 사진첩을 꺼내본다.
60년도 더 지난 사진 한 장
가족이란 한 묶음이라고
슬픔도 함께하겠다고 여전히 한 자리에 묶여있다.
태산 같은 아버지를 중심으로 가난했던 가족들이 몇 년만에 찍었을
사진 한 장,
그때는 가난도 평등했다.
그때의 마음은 얼마나 순한 것이었으며
그때의 다짐은 얼마나 작은 것이었으며
그럼에도 그때에 허락된 시간은 얼마나 반짝거렸는지 그리워 흐느끼는 날
가슴에 쌓아놓은 돌담이 무너져 내리면
우리는 언제 작별에 익숙해지려나.
세월의 그림자가 커서
오늘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별연습을 하거나 먼 곳으로 가서 오지 않는다.
백 년 가까이 산다는 사람이
너무 곱씹어 단물이 다 빠져버린 그리움을
삶으로 답해야 하는 일은 얼마나 질긴 죄목罪目인가.
참 오랫동안 그리움을 헤치며 살았다.
밤하늘에 별 하나가 반짝 빛을 발하고는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별의 탄생인지 종말인지는 알 수가 없었으나
부디, 그것이 나와의 조우를 위해 먼 길을 달려온 빛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르자
한기가 등줄기를 훑고 지나간다.
당년 96세이신 어머니, 시골에서 요양보호사와 홀로 거주하신다.
아직도 일기를 쓰실만큼 정신이 건강하신 어머니께 매일 아침 안부를 드릴 때마다 70이 넘은 자식에게
'고맙다, 사랑한다' 하신다.
사랑한다는 말을 참 아껴 쓰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젠 보통의 인삿말이 되었다.
90 남은 노모의 '사랑한다'는 이 말은 얼마나 세기적인가.
앞 줄의 여동생들은 이미 출가하여 할머니가 되었다.
삶은 의혹투성이였다.
歲月도 그랬다.
時間이 에스컬레이트 되었을 뿐,
우리는 지금 엎질러진 쌀알처럼 뿔뿔이 흩어져 있다.
삶의 길 위에선 가난도 꽃이다.
그때가 더 그리운 오늘,
언제나 뒤에서 오는 그리움은
현실을 만나지 않으려는 습성이 있다.
밖에는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낙엽 위에 내린다.
2022.11.28
좌로부터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멀리서 다니러 오신 외조부 님
앞줄은 여동생들과 남동생 그리고 나는 객지에서 학업 중이었다.
60년이 훨신 넘은 기록이다.
'길 위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해인사* (10) | 2023.01.01 |
---|---|
길 위에서 95 - 2022.12.21* (20) | 2022.12.21 |
길 위에서 37 - 時間의 등 뒤에서* (7) | 2022.11.23 |
길 위에서 63 - 가을 소묘/담채* (4) | 2022.11.17 |
서울살이 1 - 이주移住 외 (6) | 2022.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