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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서울살이 1 - 이주移住 외

by 담채淡彩 2022. 11. 10.

서울살이 1 - 이주移住

 

정년퇴직 후

西海에서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

평생 살아온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왔다

나는 산으로 간 한 마리 바닷게였다

회색의 도심에서

망연한 풍경을 그리워하며

날마다 바다를 끌어다 덮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들판에서 흔들리고 싶었다

 

2013.12.03

 

***

여기, 서울살이로 이름 지어진 글들은 2012년 안면도에서 서울로

거주를 옮긴 뒤 서울에서 쓴 글들이다.

때때로 고향바다가 그리웁고 남겨두고 온 것들이 그리워질 때마다 마음

가는대로 써내려갔다.

 

서울살이 2 - 부고訃告

 

단비 내리는 아침이다

한 동안 고락했던 직장동료의 부고를 받다

70년대 초 종로구청에 근무하다가 박봉의 불만으로

공기업에 재취업한 동료다

매사에 얼마나 반듯한지 육사생도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그가 정치인이 되었더라면 단 한 번도 남의 것에 손을 안 댄

기념물이 됐을 것이다

참 바른 사람이 갔다

멀리로 갔다

 

故 이휸희 님의 명복을 빌며...

 

2013.06.20

서울살이 3 - 섬

 

온전한 시골 사람이

하루아침에 도시 사람이 되었다

지루하지 않았던 섬 생활이

떠나온 섬을 금방 그리워지게 한다

습관적으로 여름 태풍 하나가 지나가고

열대야가 기승인 밤

다시 섬이 그리운 나는

목마른 영혼을 데리고 고원을 떠도는

유목의 전생이다

빗금의 상처를 내며 떠나온 섬은

두고 온 바다를 마르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의 거처에서는

무엇들이 나와 同行하게 될까

 

2013.08.20.

 

서울살이4 -길/담채

모든 길이 걸어 들어간 바닷가

내 고향은 바닷가

물결에 몸을 맡긴 채 발을 씻는다

넘어온 수많은 들과 산을 물 위에 띄워 보내며

꽃잎처럼 하나 둘

또한 마음의 길까지도

한 번도 외면한 적 없는 바다의 밑바닥에 묻는다

가슴 속의 물소리를

불멸의 파도를

혹등고래가 허공을 유영하듯

지느러미 펄럭이며

 

2013.10.30

 

서울 살이 5 - 나팔꽃

견뎌야 할 것들이 많은 세상인데도

아파트 울타리에 해마다 나팔꽃 핀다

아름다움만으로는 모자라

저토록 많은 씨앗들을 품고

세상 모르고 바람 속을 간다

 

소소한 풀꽃 하나에도

불멸의 靈魂이 오고 간다

 

2015.08.15

 

서울살이 6 - 명함을 새기다

이 나이에도 새로 닿는 인연이 있다

간혹 명함 한 장 달라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명함이 없다

직장을 떠난 후 백수인 내가

누구인지 궁금해 하는 인연을 위하여

최소한의 예의를 위하여

명함을 새겼다

 

“010-8728-**** 홍길동”

 

거죽만 진지한 나의 여백

바람소리 심연할 것이다

 

2015.09.18

 

서울살이 7 - 故鄕

천리 밖 물살에 정강이가 젖는다

母港으로 가는 길은 천파만파

두고 온 물소리 아득하다

물머리 돌다가 종횡으로 쓸려나간 시간들

밤늦도록 불어와 별자리가 휜다

 

당산 뿌리 옆

아버지 산소에는

지금쯤 잔 소나무 한겨울로 기울텐데

사랑에 이유 없듯

피 흘리며 닿고 싶다

 

2016.06.12

 

서울살이 8 - 섬

외로움이 뭉쳐져서

화석처럼 굳어져서

더 이상 흘러가지 못하는

외마디 비명 같은

이름,

 

여기는 외딴 섬 서울

사실, 人間은 너무 외롭다

 

2016.12.21

 

서울살이 9 - 부슬비오는 날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술 생각 몰고 오네

사람이 많이 그리운 날

내 생애가 적막했다는 것을 알고

조용히 출렁여줄 사람과

술 한 잔 나누고 싶네

천천히 다섯 잔의 소주를 비울 때

외로움 같은 거 묻지 않고

눈부처를 새겨주는 사람과,

 

오늘은 7월 초열흘

나무들은 작심한 듯 무성하고

꽃들은 사명을 다하여 씨방을 앉히는 데

취하도록 마셔도 울지 않는 여자와

저물도록 몸 버리며

술 한잔 나누고 싶네

간간이 외로운 척하면서

투명한 술잔 속에 나를 띄워놓고

 

2017.07.18

 

***

나는 또 빈 잔을 채운다.

결국 세상의 모든 낭떠러지는 살고 싶은 욕망으로 귀가하는

또 하나의 門이다.

 

서울살이 10 - 바다가 그리운 날에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곳,

떠나온 고향은 언제나 적절한 거리에서 多情하다

날마다 기록을 갱신하는 열대야를 지나며

눈부신 햇살, 코발트색 물결을 그리워하다

바다를 끌어다 덮는다

태어나 한 곳에만 머무는 고독한 소나무가 그리워진다

창백한 도시의 하늘에 보름달이 뜰 때마다

짝짓기를 위하여 천 리를 헤엄쳐가는 물고기들이

꿈속에 나타났다.

이 지구상의 태초의 생명이 물에서 온 것처럼

태초의 그리움이 바다에서 온 것임을

나는 믿는다

 

2018.07.14

 

서울살이 11 - 바다, 그 황홀한 독毒

아침에 거울을 들여다보니

턱수염이 부쩍 자라있다

이건 日月이 흘러간다는 것이며

나는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뜻이다

나는 바다에서 태어났으므로 바다로 돌아가야 하느니

 

두 눈 씻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나와

나를 내려다보는 서쪽 하늘이

하나로 일치하는 타관에서

모든 산 것들의 사무침이 하늘까지를 적막하게 할 때

비틀걸음으로 걸어서 걸어서

 

내 뼈를 가장 가파른 높이에 올려놓은

기미 많은 가족들의 얼굴들 옆에서

靈과 肉이 따로따로 나누어져

사랑과 이별과 작은 눈물 한 방울에까지

소금물 드나들어

마침내 점 하나가 되는

 

2019.07

 

서울살이 12 - 말수회末水會

초등학교 동창 넷이서 만났는데

적어도 한 달에 한번은 정기적으로 만나야 하지 않느냐고 異口同聲이다

모두 정년을 하고 나처럼 소슬한 모양이다

우리는 배를 타지 않고는 뭍으로 나갈 수 없었던 시절에

섬마을에서 가난한 유년을 보냈다

백자의 비색 같은 그 아득한 연원을 찾아서

한 달에 한번 종로에 모여 소주를 마신다

세월 뒤에 남는 것이 그리움뿐이어서

우리는 자꾸만 더 외로워지는 것이다

 

2020. 02

 

***

한 사람은 고등학교 교장을 또 한 사람은 모 신문사와 방송국 사장을 또 한 사람은 지금도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는 어김없이 한 달에 한 번 이상 모여 슬픈 도시의 틈새에서 착한 세월을 낚는다.

 

 

서울살이 13 - 아파트

 

모여서 살면서도

흩어져서 살아가는

외롭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외롭게

그렇게 사는 사람들

 

서로에에 기댐이 없기에

새 한 마리의 무게로도 휘청거린다

 

나는 축생의 거죽을 벗겨 만든 소파에 앉아 베란다 창밖을 오래 바라보고 있다

 

흙으로 돌아가기 전

눈물 외에는

모두 반납해야 하는 사람들 

 

타향이 없으니

고향도 없고

구름은 흘러가고

운명도 팔자도 모르는 화단에는

세상모르고 꽃은 피고

 

2022.05.03

 

 

서울살이 14 - 황금분할


한 치 앞을 모르는 삶들이
가장 헛된 걸음으로 지금을 걷는다

벌이가 없어도 보고 싶은 친구는 있어
50년 전 타관에서 만난 친구들이 다시 모인 하루
우리는 모두 현직에서 물러난 백수다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최고라며 산을 오르는데
하산 후 여흥이 하루 중 백미다

경비 일체는 무조건 Dutch pay
현직일 때 잘 나갔던 者도 그게 아닌 者도
불평 없이 同意하는 황금분할이다

最小의 양식으로 살아가야 하는 지금

 

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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