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95 - 2022.12.21(눈)
눈 내리는 하늘 아래 고개를 묻고 경건한 마음으로 손대신 온몸을 모으는 연말이다.
세상의 모든 소리들을 인멸하며 구름의 곡조로 서 있는 한 점의 정적,
이게 노년들이 걸어가는 삶의 형식이 아닌가.
오늘은 밤새 내린 눈으로 온통 하얗고 정직한 세상이다.
불현듯 각자의 삶으로 바쁠 자식(남매) 생각이 난다.
그저 잘들 살고 있겠거니 믿고 전화도 잘 하지 않는 터라 모처럼 아들에게 전화를 하니 반가운 기색으로 전화를 받는다.
토요일, 점심을 사줄테니 시간이 되겠느냐 했더니 반기는 기색이다.
다시 딸에게 전화해서 역시 같은 얘기를 했더니 깔깔 웃으면서 좋아라 하고
지우(외손녀)에게 일정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의과대학 2년차로 울음이 나올만큼 혹독한 공부에 시달리다 방학을 맞아
모처럼 친구들을 만나고 있다는데 딱 그날만 스케줄이 비어있다면서 또 한번 깔깔 웃는다.
다 모여 봐야 아들네 식구 넷, 딸네 식구 셋, 그리고 우리 부부 둘, 9명이다.
식당을 예약하고 혈육을 만날 예정으로 새 떠난 나뭇가지처럼 조용히 흔들리는 하루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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