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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作詩

나그네와 나무

by 담채淡彩 2024. 1. 31.

 

나그네와 나무/담채

 

이 나무는 먼 길을 걸어온 나그네가

잠깐 쉬었다 가는 자리

그늘을 깔아놓고 행려의 땀방울을 식혀준다

헤아릴 수 없는 순례의 길목이 되면서

나그네가 내려놓는 들뜬 마음이나 고단한

한숨 소리로 강 건너 저쪽이 술렁거린다

동이 트고 땅거미 져도 활짝 열린 나무의 창문

맞아들이고 떠나보낸 나그네의 수만큼

나무는 전설로 그득해졌지만

잎을 틔워 초록을 펴고 시드는 잎차례로

낙엽까지 가보는 것이 나무의 유일한 본업이였다

언제나처럼 굴곡 겹친 길들을 헤아리며

지친 듯 쓰러질 듯 한 사람이 멀리서 왔다

딱 하루만 폈다 지는 꽃의 넋과 만나려고

선연하게 둘러앉는 두레의 그늘,

석양이 지고 있다

오늘의 나그네는 홀로 앉아 고즈넉하고

나무 또한 그가 버리고 갈 길에는 무심하지만

아직 나그네의 계절은 끝나지 않았다

언젠나처럼 나그네에게 허락된

푸른 그늘의 휴식은 너무 짧은 것

그러나 나그네는 그늘 속에 앉기 위하여

나이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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