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한 켤레 /담채
아파트 분리수거함 옆
누군가 놓고 간 낡은 구두 한 켤레
항해를 끝낸 폐선처럼 문득 멈춰있다
주인은 가고
남겨진 또 하나의 행로
까마득 흐르는 먼 길을 걸어온 밑창에선
흙냄새가 난다
날마다 밑바닥을 치며 여기까지 오기까지
얼마나 많이 걸었을까
생이 끝나는 순간에야 놓아주었을
길과 길
아궁이 속 온기 같이 한 웅큼 남겨져 있다
이제,
속절없이 밀려난 유배객流刑客처럼
시절을 잃고
주름만 소슬하거니
노고는 길었고
길은 깊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