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정山頂에서 /담채
바람이 우는 도봉산 산정
적막에 금이 간 듯
세상의 모든 소리를 인멸하고
바람만 걸친 한 점의 적막
억새풀도 나무도 바람이 불어가는 쪽으로 일제히 엎드려있다
엎드린 채 그대로 삶의 형식이 되어버린
낮아서 지혜로운 것들
마음 깊은 육신의 죄 눈물겹다
이 황량한 산정에서 고독과 싸우다 선 채로 죽는 것은
도도한 산정의 질서다
바람과 비에 깎인 풀과 나무들이
마른 피 같은 이파리 몇 개씩 붙들고 있다
육신의 무게를 다 버린
의지의 표상만 남아 있는 고립무원의 저 자리
산이 슬퍼 보일 때가 있다
먼 한때 밀림의 흔적을 기억하는 풀과 나무들이
몸속에 박힌 울음을 날려보내고 있다
바람이 신음을 뱉어낼 때마다
밟힌 풀이 일어서듯
슬픔이 깃든 뼈를 수도 없이 굽혔다 세우며
먼 곳을 향하여 손을 뻗는다
높은 곳에 뿌리를 둔 것들은
뼈가 휘어도 아프다 말하지 않는다
높이를 지닐수록 굽힐 줄 아는 것들만 살아남아
세상을 굽어보고 있다
경사진 산비탈에 물기 빠져나간 바람의
흰 깃털이 흩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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