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집념/강성백
들녘 외딴집 처마 밑 빨랫줄에
제비가 집을 짓는다
만삭의 제비가 끼니도 거른 채 외줄 위에
집을 짓는다
한 입 한 입 물어 나른 흙이
밥사발 모양으로 둥글어갈 즈음
뿌연 흙가루를 뿌리며 황사바람이 지나갔다
짓다 만 둥지가 거꾸로 뒤집혀
대롱대롱 흔들렸다
두 눈이 충혈된 제비가
흔들리는 빨랫줄에 앉아 뒤집힌 둥지를
쳐다보고 있다
눈 앞이 캄캄했을 것이다
한참 동안 빨랫줄에 앉아있던 제비가
다시 흙을 물어 나르기 시작했다
어깨뼈가 으서지도록 들녘을 오가며
뒤집힌 둥지 위에 젖은 흙을 덧붙여 나갔다
순간 또 한 차례의 돌풍이 빨랫줄을 흔들었다
출렁, 짓다 만 두 번째 집에서
한쪽 벽이 흘러내렸다
낙심한 제비가 죽지 안에 부리를 묻고
몇 시간째 빨랫줄에 앉아있다
잔뜩 웅크린 몸속에서 금방이라도 무르익은 알들이
쏟아질 듯 위태로운 시간이 길게 흘렀다
야생의 길에는 샛길이 없는 걸까
부스스 몸을 털고 일어난 제비가 미사일이 나가듯
갑자기 공중으로 솟구쳤다
연푸른 풀빛 사이로 수백 수천 번
들녘을 오가며 아사달이 탑을 쌓듯
한 켜 한 켜 혼을 쌓아올렸다
세 번째 집이 삼각형 모양의 위쪽으로 앉고 나서야
비로소 둥지가 완성되었다
위대한 집념이다
먼 하늘에서 풀씨 같은 별들의 점등이 시작되었다
고요한 둥지 안에서
곧 산란이 시작될 것이었다
note
2002.04 출장 중 농가에 들른 적이 있다.
주인의 안내로 안방에 들어서다가 처마 밑에 걸린 세 개가 하나로 붙어있는 제비집을 보았다.
신기하여 주인에게 설명을 청하고, 그대로 옮겨쓰다.
만삭의 몸으로 연거푸 무너져내린 둥지를 다시 세운 미물의 집념이 조용한 파장을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