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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과 評論

탐색과 소멸에 대한 성찰

by 담채淡彩 2010. 12. 19.

‘봄을 타다’ 외 4편 / 한옥순

 

탐색과 소멸에 대한 성찰

 

마경덕(시인)

 

한옥순의 문학적 공간은 대부분 쓸쓸하고 서늘한 바람이 부는 곳이다. 그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대치의 외로움’을 향해 나아간다. ‘어떻게 살아야 외롭지 않나’ 혹은 ‘우리는 얼마나 더 외로울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있다.

거부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과 흔적은 시인의 내면에 균열을 일으킨다. 그 충돌의 힘과 직면하게 될 때 인간의 지닌 본질적 외로움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일까. 웃음보다 눈물이 더 강한 힘을 지닌다. 감동을 하면 저절로 눈물이 솟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한옥순의 작품에는 아름답고 쓸쓸한 비장미(悲壯美)가 들어있다.

봄밤은 얼마나 치명적인가. 한옥순은「봄을 타다」라는 작품에서 ‘타다’라는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를 사용해 잠재해있는 ‘외로움’을 드러낸다.

 

장을 보러 나간 것이

봄 노을을 만나고 말았다

버스를 탄다는 것이

봄을 타고 말았다

봄바람이 동행해주던

그날 밤엔 지독한

봄 몸살을 앓고야 말았다

약을 먹는다는 것이

봄밤을 털어 넣었다

 

가슴이 다 타도록 잠 못 들었다

 

-「봄을 타다」전문

 

 

목련이 지고 라일락이 피는 매혹적인 봄밤, 그 밤을 껴안고 앓아보지 않은 시인이 어디 있으랴. 시인은 그 불면의 봄밤을 가슴에 털어 넣고 내처 앓는다. 출발을 알리는 첫 계절, 계절도 사람도 혹독한 처음을 치러야 한다. 봄을 타는 것은 봄과 섞이지 못한 통증이다. 시인은 봄을 견디지 못해 버스를 타고 봄을 타고 끝내 가슴이 탄다.

한옥순이 전편에서 언급하는 ‘흐름, 그리고 소멸’은 우리에게 주어진 모두의 과제이다. ‘외로움’이라는 단단한 표피에 둘러싸인 슬픔은 결국 ‘소멸, 죽음’과 이어진다. 현재에 머물지 않고 흘러가는 것은 시작이 아닌 끝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꽃핀을 머리에 꽂은 계집아이가 종종 걸음마로 가고

꽃핀 꽂은 여자 아이 뒤를 안개망토를 두른 남자가 따라가고

 

뱀스카프를 어깨에 두른 한 여자가 천천히 걸어가고

뱀스카프 두른 여자 곁으로 제비 옷을 입은 사내가 슬며시 붙고

 

개구리 브로치를 실크블라우스 가슴 한쪽에 단 할머니가 느릿느릿 가고

개구리 브로치를 단 할머니 뒤를 아지랑이를 타고 가던 할아버지가 좇고

 

한번 지나간 그림자들은 다신 되돌아오지 않았고…

 

봄날엔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 것

보들한 바람이 아망 떨며 불어와 뒤태를 흩트려 놓을 것이니

바람난 꽃씨들이 머리 위에서 춤을 추고 있으니

작은 빗방울에도 금세 꽃모가지가 툭, 하고 떨어지기 쉬우니

끝으로 봄날엔 아무 꽃에나 정주지 말 것

봄날도 꽃도 언젠가는

별다방 미스 김처럼 슬그머니 도망가고 말 것이니

 

 

-「봄날주의보」전문

 

「봄날주의보」는 시 한편에 일생이 다 압축되어 있다. 종종걸음을 걷는 첫봄은 유년기이며 그 뒤를 따라가는 안개망토는 이성에 눈을 뜨는 사춘기 과정이다. 이때 안개 같은 세상은 위험한 존재로 등장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진무구한 마음은 뱀처럼 간교해지고 사람을 홀리는 제비가 되어 간다. 처음이 변질되는 과정이다. 이것은 이성(理性)이 흐려지고 타협에 길들여진다는 것이다. 뱀이나 제비처럼 빠른 속도를 가진 젊음도 잠깐이다. 혀는 어눌해지고 걸음은 느려진다.「봄날주의보」는 개구리의 보폭으로 늙어가는 노년의 한계, 혼자 감당해야할 원초적 고독을 잘 보여준다. 삼월삼짇날 돌아오는 제비며 겨울잠을 깨고 나오는 개구리와 뱀은 생동감이 넘치는 봄을 상징한다. 봄을 알리는 동물을 인용하여 생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해주는「봄날주의보」는 아지랑이처럼 허무하고 짧은 생의 허무함을 잘 보여주는 수작(秀作)이다.

‘불안’과 ‘소외’를 나타내는「틈과 구멍」은 진지하게 삶을 돌아보게 한다. ‘틈’과 ‘구멍’은 약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결국 같은 처지이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틈바구니 인생들,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과 소외는 늘어나고 틈은 더 좁아지고 구멍은 더 커질 것이다. 한옥순은 일상에서 만난 대상들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깊이 탐색한다.

 

촘촘하고 나지막한 돌담 꼭대기 틈 여린 풀 한포기가 비죽이 나와 담 옆을 지나는 어깨를 슬쩍 건드린다 하필이면 힘겨운 돌 틈에 터를 잡아 살고 있을까 길 가던 바람이 한번쯤 건네 보는 말인 양 아니면 잘 아는 사람을 만나 인사라도 건네는 양 아는 체 하는 풀잎, 하긴, 나도 방금 좁고 딱딱한 시멘트덩이 구멍에서 나왔으니 저와 같은 처지가 아닐까

 

잠깐 동안,

 

구멍으로 나와 한 평생 구멍에서 살다가는 저 풀포기 우리네 인생 한 판이나 무어 그리 다를 게 있다고 건방진 생각을 했을고

 

-「틈과 구멍」전문

 

줄줄 새어나가는 구멍과 틈은 동병상련이다. 시멘트덩어리로 건설한 도시는 만원이다. 틈을 비집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내일이 불안하다. 언제 뽑혀나갈지 모를 구멍 하나가 전부이고 목숨이다. 그들과 같은 처지임을 깨닫는 순간 ‘틈’과 ‘구멍’은 동일한 무게를 지닌다. 하찮은 것이라도 허투루 사는 목숨은 없다.「겨울 나그네」「겨울새」역시 한옥순이 지향하는 시의 세계와 동일성을 띠고 있다. 생의 쓸쓸함과 허무함이 잘 느껴지는 작품이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새 한 마리 담벼락 아래 옹그리고 있다

잠든 듯 미동도 않는 새의 등이 쓸쓸하다

초겨울 시멘트 바닥이 꽤 싸늘할 텐데

저 길만 건너면 낙엽더미가 있는데

하필이면 왜 여기에 누워있는지

 

하늘과 땅 사이에 벼락이 있다는 걸

세상과 세상 사이에 벼랑이 있다는 걸

길과 길 사이에 또 딴 길이 있다는 걸

새와 나 사이 적막함이 지날 때야 알았다

 

-「겨울 나그네」부분

 

「겨울 나그네」는 삶과 죽음이 한 몸이라는 걸 보여준다. 삶이 처절하게 아름다운 것은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 사라지는 것이 있어 다시 태어나고 재생되고 부활되는 것이다. 봄을 출발한 계절은 어느새 겨울로 치닫고 담벼락 아래 옹그리고 싸늘하게 식어가는 겨울새는 맨발이다. 미동도 없이 이미 울음을 잃었다. 마음껏 날았던 창공에서 버림을 받는 순간, 새들은 추락한다. 벼락을 치던 하늘은 흔적이 없다. 침묵 속에서 찾아낸 깨달음이 뼈가 시리다. 나그네처럼 살다가는 이곳에서 누가 영원히 머물 수 있는가. 머물 수 없는 순간들이 허무와 연민의 고리로 이어지면서 삶은 더 절실해진다.

 

저렇게도 작디작은 것들이

 

저렇게도 희디흰 빛을 띤 것들이

한꺼번에 화르르 몰려와선

이 더러운 세속에 내려앉네

 

살아선 결코 돌아갈 수 없는

머나먼 먼 길을 날아와서는

보이지 않는 부리로 세상을 쪼고는

소리도 없이 사라져가네

 

도대체 어떤 새이기에

도대체 무슨 사연이기에

작고 차가운 몸 손에 닿기도 전에

하룻밤 꿈결 같이 사르르 녹아버리네

 

밤이 새도록 늙은 모과나무 아래를 환하게 하고는,

 

-「겨울새」전문

 

까마득한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허공의 조각들, 흰 눈은 늙은 모과나무를 환하게 밝히고 또 어디로 가는가. 세속을 향해 나풀나풀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들은 철없이 흰빛이다. 그렇게 태어나 짓밟히고 뭉개지는 짧은 생이다. 꿈같이 사라지거나 잠깐 머물다 갈 겨울새는 계절의 맨 끝에서 태어났다. 날개도 없이 하늘을 날아야하는 가벼움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허무와 안타까움은 시간의 막바지에서 더 고조된다. 한옥순이 집중하는 것은 대부분 ‘흐름과 소멸, 그리고 외로움’이다. 장엄한 포즈를 취하지 않고도 삶과 죽음에 접근하지만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어떻게 살아야 외롭지 않나? 우리는 얼마나 더 외로울 수 있는가?’라는 그의 질문은 ‘우리는 얼마나 행복할 수 있으며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가?’로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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