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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과 評論

무엇을 쓸까

by 담채淡彩 2010. 10. 12.

 

무엇을 쓸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을 쓰라면 무엇을 쓸까 아주 막연해 한다. 그리고 학생들인 경우에는 마음속으로 몇 가지 제재를 떠올리다가 선생님께 제목을 정해달라고 요구하기가 일수이다. 아니, 학생들만 그러는 게 아니다. 성인들도 망설이다가 자기가 읽은 글 가운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이나, 또는 평소 생각한 것 가운데 하나를 골라 쓰기 시작한다.

그러나, 글쓰기는 자아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정해줄 수가 없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글로 성공한 것이라고 해도 내게 알맞는 제재인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즐겨 택한 제재일수록 좋은 글로 성공할 확률이 더욱 낮다. 그런 제재일수록 먼저 쓴 사람의 테마에 이끌려 가기 마련이고, 그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도 자기가 덧붙일 게 적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백일장이나 작문시험처럼 전체를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경우에도 일률적으로 제목을 정해주는 것보다는 제재의 범주를 제시해 주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자기만이 아는 것을 골라 써라

그렇다면 어떤 것이 좋은 글감인가? 이제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선 자기만이 아는 것>을 골라야 한다고 권유해 왔다. 그런 것을 글로 쓸 경우, 남에게 새로운 것을 전달할 수 있다는 기쁨 때문에 글을 쓰고 싶은 의욕이 강해지고, 섬세하고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은 그리 많은 것이 아니다. 가령, 자기 집에서 대학까지 학교까지 가는 길만 해도 그렇다. 몇 개의 정류장을 거쳐야 하며, 그 정류장 옆에는 어떤 가게가 있고, 설혹 자기가 들어가봤던 곳이라고 해도 그 가게의 주인은 젊은 여자였던가 텁석부리 영감이었던가를 기억할 수가 없다. 주체가 의지적인 작용을 가하지 않고 인지(認知)한 것들은 곧 잊어버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는 것들도 기억의 편의성을 위해 <추상화(抽象化)>와 <고정관념화(固定觀念化)>의 과정을 거친 것이라서 실제로 글로 쓸 경우에는 제대로 쓰여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잘 아는 것이라고 해도 글로 쓰기 위해서는 그것을 경험하던 당시를 반추하면서 원래 경험했던 상태로 복원하면서, 토마쉐프스키(B. Toma evski)가 말한 모티프(motif) 가운데 어느 부분을 가장 강하게 기억하고 있는가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2)무엇을 표현하고 싶은가를 생각하라

토마쉐프스키의 [주제론(Thematics)]에 의하면, 담화는 모티프의 집합(集合)이고, 모티프는 문장으로 이루어지며, 그것을 하나로 통일하는 기능은 테마가 맡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모티프의 유형은 <한정 모티프>·<자유 모티프>·<동적 모티프>·<정적 모티프>로 나눈다.

그가 말하는 <한정 모티프>는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단위를 말하고, <자유 모티프>는 생략되어도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모티프를 말한다. 그리고 <동적 모티프>는 '그는 뛰었다'나 '그는 결혼했다'와 같이 정황(情況)의 변화를 묘사하는 단위를 말하고, <정적 모티프>는 '그녀는 아름답다'와 같이 묘사하는 단위를 말한다. 다음 작품만 해도 그렇다.

빈 산막(山幕)엔
능구렁이처럼 무겁게 살찐 고요가
땅바닥에 배를 깔고 숨을 몰아쉬고 있다.
흙담이 무너져 내려 썩고, 나무 기둥이며 문살이
오랜 세월 비바람에 썩고 썩어
향기로운 부식(腐蝕)의 냄새를 피워 올리는,
이 버려진 산막 하나가 고스란히 해묵은 포도주처럼
맑은 달빛과 바람 소리와 이슬을 먹고 발효하는
심산(深山)의 특산품인 것을.

---신(神)이 가끔 그 속을 들여다보신다.
- 이수익(李秀翼), [폐가(廢家)] 전문


이 작품의 줄거리는 <어느 날 산에 올랐다>라는 동적 모티프와 <산막 하나가 있었다>라는 한정 모티프로 짜여져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의 전편에서 묘사하고 있는 <고요>는 임의 모티프이며, 나머지는 모두 이 임의 모티프를 형상화시키기 위한 '능구렝이'라든가 '포도주' 또는 '신의 특산품'이라는 이미지들은 정적 모티프에 해당한다. 그는 산에 오르는 동안에 여러 가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막함을 표현하려는 것은 시인이 임의로 선택한 것이고, '능구렝이'이나 '포도주'는 그 고요를 묘사하기 위하여 선택한 이미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어느 종류의 글이든 글을 쓰려면 먼저 <자유 모티프>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정적 모티프>로 바꿀 능력을 기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우리 할머니들의 경우를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대부분의 할머니들이 자기의 옛날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살아온 것들을 소설로 쓰면 몇 권을 쓸 수 있고, 시로 써도 여러 권의 시집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소설이나 시로 쓸 수 있는 분들이 드문 것은 <자유모티프>를 발견할 능력이 부족하고, 그걸 발견했어도 <정적모티프>로 바꿀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글을 쓰려면 이와 같은 4가지 유형의 모티프를 발견해야 하고, 그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장르에 따라 주된 모티프가 따로 있다. 서사적 장르에서 <주된 내용>은 한정 모티브와 동적 모티브이고, <밑받침하는 내용>은 자유 모티프와 정적 모티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서정적 장르에서 시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이야기의 줄거리가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느낌이다. 그러므로, 자유 모티프와 정적 모티프가 <주된 내용>이고, 한정 모티프와 동적 모티프가 <밑받침하는 내용>이 된다. 또, 교술적 장르(수필) 은 독자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기 때문에 자유 모티프가 <주된 내용>이 되데, 자기의 체험을 소개하려할 때에는 동적 모티프가 끼어들 수밖에 없고, 그에 대한 느낌을 말하려 할 때에는 정적 모티프가 끼어들 수밖에 없다. 수필을 자유로운 양식이라고 하는 것도 이와 같이 서사와 서정의 장르를 모두 넘나들 수 있기 때문이다.


3)고정관념에서 벗어나라

그런데, 우리가 익히 잘 아는 것을 선택해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컨대 '어머니'를 소재로 글을 쓸 때만 해도 그렇다. 우리는 누구나 어머니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에 대해 쓴 글 가운데 새롭고 참신한 작품은 드물다. 그것은 어머니에 대한 보편적 사실을 대상으로 삼아 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잘 아는 것이라고 해도 새롭게 느껴진 것이라야 한다는 조건이 추가된다.

하지만, 새롭게 느끼려고 해도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어떤 제재를 선택한 다음 그에 대한 관점을 바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흔히 두 점 사이 최단의 거리를 직선(直線)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유크리이트 평면기하학(平面幾何學)에서의 진리이지 구면기하학(球面機何學)에서는 곡선일 수도 있다. 서울에서 뉴욕까지 비행기를 타고 갈 때도 마찬가지이다. 땅이나 해저를 뚫고 가지 않는 한 곡선이다. 구면 위에 살고 있으면서도 먼저 수립된 유크리이트 평면 기하학에 의하여 사고하고 있다.

이런 예는 보다 추상화되고, 또 논리적으로 보이는 수의 세계에서도 발견할 수 있음 - 우리는 <1+1>는 <2>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3진법(進法) 이상에서만이 2이고 3진법에서의 2와 10진법에서의 2와 12진법에 2가 차지하는 위치와 양은 각기 다르다.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사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주체와 객체의 위치 전환

○서로 다른 것의 동정화(同定化)와 동일한 것의 이화(異化)

○작은 것은 확대(擴大)하여 생각하고 큰 것은 축소(縮小)해 보고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의 이동시켜본다.



이와 같은 방식은 비단 시를 쓰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인생사리나 학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뉴톤이 '만유인력(萬有引力)'을 발견한 것만 해도 그렇다. 사람들은 흔히 뉴톤이 가을날 가지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곧바로 '만유인력'을 생각해낸 것으로 믿고 있지만, 그 이전에 <하늘에 있는 달은 떨어지지 않는 데 왜 보다 낮은 곳에 매달린 사과는 떨어지는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했고, 그 과정에는 <사과=달>이라는 동정화 작용과 사과를 달이라고 상정함으로서 다른 것으로 바꿔보는 이화 작용을 거쳤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4)제2상상력을 구사하라

그러나,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콜리지가 말한 <제2상상력>을 구사하는 능력이다. 그는 상상력의 유형을 인간의 근본적 능력에 해당되는 <제1상상력(primary imagination)>과 의지(意志)를 수반하는 <제2상상력(secondary imagination)>으로 나눈다. 그리고, 제2상상력은 전혀 다른 다른 방향으로 상상한 것을 하나로 통합시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가령 푸른 바다를 시로 쓴다고 하자. 우선 바다의 푸르름을 보고 <바다=목장>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이 정도를 가지고는 참신한 시가 되기 어렵다. 그러므로, 무엇인가를 덧붙여야 한다. 이 때 그 푸른 바다 위를 달리고 싶어하는 자신을 발견했다면 <바다 위를 달리고 싶어하는 나=나는 한 마리 망아지>로 바꾸고 이를 연결시키는 방법을 쓸 수 있다.

이 강의록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떠올린 이미지이지만 이들을 연결시키면 다음과 같은 작품이 될 것이다.

바다는 푸른 목장
나는 한 마리 망아지가 되어 바다를 짓달린다.
바람이 불 때마다 하이얀 풀꽃들은 부서지고
내 네 발굽에서는 아득한 향기가 묻어난다


5)시상은 메모해 둬라

이와 같은 생각들은 아주 기발한 것이라서 시간이 흐르면 곧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가급적 시상이 떠올랐을 때 곧바로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분주한 일상 속에서 시상이 떠올랐다고 그걸 곧 작품으로 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간단히 메모를 해두었다가 시간이 날 때 작품화하고, 그것이 너무 단순한 생각이었다면 당시의 풍경과 정황을 떠올리면서 <제2상상력>을 발휘하여 부족한 내용을 보충하는 방식을 택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산문은 주로 한정모티프와 동적 모티프를 메모하고, 시는 자유모티프와 정적 모티프를 메모해 뒤야 한다.

<생각해 봅시다>
○시의 제재는 어떤 것이 적합한가 생각해 봅시다.
○어떤 제재를 선택하되, 그 제재 가운데 자기만이 떠올린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그 제재를 가지고 1차적 상상력을 발휘해 보시오.
○다시 2차적 상상력을 발휘하고, 그것을 하나로 연결해 보시오.
○그 결과로 한편의 시를 완성해 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