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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과 評論

2016년 신춘문예 시조 총평*

by 담채淡彩 2022. 8. 9.

2016년 신춘문예 시조 총평

 

이 봉 수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많은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및 학자들은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시인 시조는 세계적인 자랑거리라고 한다. 시조가 자랑거리라는 것은 일본의 하이쿠(俳句), 중국의 한시(漢詩), 서양의 소네트(sonnet) 등과 같은 수준의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정형시’이기 때문이다. 이들 세계적인 정형시는 독특하고 엄격한 시형을 생명으로 한다. 정형을 갖추지 못하면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

오늘날 한국의 시조는 창사(唱詞)였던 고시조의 탈을 벗고 20C초 순수문학인 정형시(定型詩)로 다시 태어났지만, 정형을 굳히기도 전에 고시조의 많은 형을 여과 없이 답습하고 범람하는 자유시의 흉내 내기에 급급하여, 한 올의 예외도 허용하지 않는 세계적인 정형시의 반열에 오르기에는 크게 미흡하였다.

건국초기 고시조의 가장 많은 형을 추출하여 교과서의 자수정형[3434 344(3)4 3543]으로 자리매김하였으나 시조단에서는 이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잡다한 음보정형이 범람하다가 최근 일각에서 각성이 일어 정격 시조 부흥운동이 자리를 넓혀 가고 있다[졸저 『현대시조 바로세우기』(2013년 문예촌 발행)참조].

2016년 주요 언론사의 신춘문예도 수 십 년의 해를 거듭하였지만, 아직도 자유시흉내내기에 빠져있는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아 놓은 곳이 많다. 중앙일보의 대상 <11월>, 신인상 <서양민들레>, 조선일보의 <파란 잉크 주식회사>, 부산일보의 <봄눈>, 대구매일신문의 <옆구리 증후군> 등이 그것이다. 이런 작품들이 신춘문예 단상에서 내려오지 않는 한 우리의 시조는 세계의 정형시단에서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런 가운데 동아일보의 <날, 세우다>와 서울신문 <구름위의 구두>는 자수정형에는 못 미치지만 음보정형만이라도 제대로 지키면서 내용과 표현이 좋아 돋보인다.

(1)중앙일보

11월/염창권

그림자를 앞세우는 날들이 잦아졌다
캄캄한 지층으로 몰려가는 가랑잎들

골목엔 눈자위 검은 등불 하나 켜진다

잎 다 지운 느티나무 그 밑둥에 기대면

쓸쓸히 저물어간 이번 생의 전언이듯

어둔 밤 몸 뒤척이는 강물소리 들린다

몸 아픈 것들이 짚더미에 불 지피며

뚜렷이 드러난 제 갈비뼈 만져볼 때

맨발로 걷는 하늘엔 그믐달이 돋는다

젖 물릴 듯 다가오는 이 무형의 느낌은

흰 손으로 덥석 안아 날 데려갈 그것은

아마도, 오기로 하면 이맘쯤일 것이다.

<신인상>

서양민들레/김영주

떡전 거리 인도 위에 신문지 펼쳐놓고

풋고추

오이 호박

가지런히 누워 있다

환하게 이 드러내고 웃고 있는 베트남댁

산 설다

물도 설다

돌아갈 길 더 설다

보도블럭 틈 사이로 뿌리 둘 곳 더듬다가

토종이 되어간단다

흑을 꽉! 움켜쥔다

*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유성호·이지엽·홍성란(대표집필 홍성란)

 ‘11월’은 “몸 아픈 것들”이 “드러난 제 갈비뼈를 만져”보지만 “캄캄한 지층으로 몰려가는 가랑잎”이나 “눈자위 검은 등불”처럼 중년의 경험을 쓸쓸히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시인의 긍정과 화해의 사유는 “젖 물릴 듯 다가오는 이 무형의 느낌”이라는 추상의 구체화와 “아마도, 오기로 하면 이맘쯤일 것”이라는 적실한 언명에 닿아 형언할 수 없는 힘을 발산하며 대상 논의를 평정하였다.

‘서양민들레’는 고단하고 서러운 이역에서 “환하게 이 드러내고 웃”으며 견디는 “베트남댁”의 생활에 연민과 긍정의 시선을 얹고 있다. 보도블럭 틈에 견고히 뿌리내리듯 타국에서 토종이 되기 위해 “흙을 꽉! 움켜”쥐는 이 땅의 건강한 생명력을 확인하는 이 작품 외에도 함께 올라온 김영주 작품은 균질한 미적 성취를 보여주었다.

* 필자의 종합평

(1) 대상 수상작 <11월>은 시조정형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나 3434 344(3)4 3543의 자수정형에는 못 미친다. 그보다도 3장 6구가 뚜렷해야할 시조형식을 크게 벗어나 수의 구별을 없애버리고 1연 12행의 자유시형을 만들어 시조다운 맛을 송두리째 없애버렸고 따라서 읽기가 숨 가쁘다.

이 작품은 한 해의 끝자락을 향해 달려가는 11월을 맞아 쓸쓸함을 달래며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호소하고 있으나 ‘젖 물릴 듯 다가오는 이 무형의 느낌’ 즉 ‘흰 손으로 덥석 안아 날 데려갈 그것(느낌)’이 어떤 느낌인지 구체화되지 않아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지배적인 시상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심사위원들은 ‘무형의 느낌’이 ‘젖 물릴 듯 다가온다,’고 하므로 추상이 구체화되었다고 하지만 무형의 느낌 자체는 구체화(형상화)되지 않은 것이다. 넷째 수(수의 구별도 없지만)의 초장 [느낌은]과 중장 [그것은]은 [느낌]의 중복표현으로 1자라도 아끼고 압축해야 할 시조창작에서 시어를 낭비한 결과가 되었다. [흰 손으로 덥석 안아] 또한 어색하다. 손은 잡는 것이지 안는 것이 아니다. [흰 손으로 꽉 잡아] 또는 [두 팔로 덥석 안아]라야 독자들이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2) 신인상 수상작 <서양민들레> 또한 비좁은 3자 자리에 덩치 큰 4자가 앉아 있고 넓은 4자 자리에 3자가 헐렁하게 앉아 있다. 대상 수상작과 마찬가지로 수의 구별을 없애고 행갈이도 완전 자유시형으로 변형시켜 놓았다.

이 작품은 제목과 본문이 어울리지 않는다. ‘베트남댁’을 ‘서양민들레’로 비유했지만 베트남은 서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 큰 실수는(신문사 출판과정의 실수이기를 바라지만), ‘흑을 꽉!’에 있다. 심사평은 ‘흙을 꽉!’이라고 바로 잡아 주었지만 원문은 그대로이다. [,,.인도위에 신문지 펼쳐 놓고 풋고추... 누워있다.] 풋고추가 신문지를 펼쳐 놓았는가? 있을 수 없는 표현이다.

시조의 형식과 내용 모든 면에서 결함이 많아 수상작이 되기에는 크게 부족하다.

<신인문학상 시조>

茶山을 읽다/박화남

1. 동박새로 날아와

그대가 없는데도 그대 너무 그리워서

만덕산 햇살처럼 구강포 바다를 당겨

백련사 고요에 들어

붉은 숨을 내쉰다



2. ‘丁石’을 새기며

꺾어든 그 비수를 바람 속에 던져놓고

초당에 내려앉아 찻물 깊이 끓였을까

용오름 역린을 삼켜

명편이 된 한 사람

3. 그리운 훗승

그대 푸른 동백나무 하늘로 날아올라

흐르는 구름 위에 한 편 시 적은 오후

여태껏 본 적도 없는,

길 활짝 벙근다

*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권갑하·박권숙·박명숙·이달균(대표집필 박권숙)

...언어를 능숙하게 엮고 풀고 다스리는 솜씨,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읽어내는 마음의 눈, 균형과 절제의 시조 미학에 충실한 가락 부림의 능력 등 선정 척도에서 가장 안정감을 주는 높은 완성도로 호평을 받았다.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에서의 삶과 시 세계를 작은 표제로 나누어 심미감 넘치는 선명한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다. 대상에 대한 깊은 사유와 오랜 숙성을 거친 후에야 빛나는 감각의 표현을 빚을 수 있다는 믿음에 확신을 주었다. 다만, 각 수 종장을 의도적으로 한 연의 호흡 마디로 처리하여 보다 강렬한 여운의 효과를 노린 것은 좋지만, 이런 형태상의 실험이 자칫 신인의 패기나 실험의지로 오해될 위험성이 지적되었다.

* 필자의 종합평

형식면에서는 대체로 껄끄러움 없이 읽히는 모양새이지만 자수정형에는 못 미친다.

내용은 조선시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 생활을 그려낸 것으로 보이지만, 문인이 아니고 역사도 깊이 알지 못하는 대다수의 일반인이 읽으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이다. 심사위원들에게는 뛰어난 작품으로 보이지만 일반 독자에게는 입안에 든 돌멩이다. 삼킬 수도 없고 뱉으려니 체면이 구긴다. 시는 심사위원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한 편 심사평은 이 작품의 각 수 종장이 한 연의 호흡 마디로 처리되었고 이런 실험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지적하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 필자가 보기에는 종장 각 구(句)에 무게를 주어 초·중장과 동일한 장(章)급으로 승격시키기 위하여 행을 나눈 것이며, 이는 작자의 시적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므로 심사평이 잘 못 된 것 같다.

(2)조선일보

파란 잉크 주식회사/이중원

새초롬한 잎사귀에 햇살이 내리쬐어도

버스가 남기고 간 잿빛의 연기만이

망막에 재고가 남은 유일한 색채일까

발 아래 선이 있고 내 뒤로 줄이 있다

느려지는 발자국을 억지로 잡아끌어

통근의 컨베이어에 실려가는 유리병

모래알 흐르듯이 부서지는 빛줄기가

정류장 팻말 옆의 풀 허리에 한껏 고여

메마른 마개 틈새에 떨어지는 오전 10시

빵, 하는 경적음에 뜬 눈이 부시도록

생생하게 흔들리는 푸릇한 잡초들만,

염가에 세일 중인 창공, 한없이 싱그럽다



*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정수자

정형 구조 넓힐 신인… 더 놀라운 '파란' 기대돼

...‘파란 잉크 주식회사’는 언어에 촉수를 달고 탐사하듯 세밀한 감각의 깊이로 잡아 엮는 묘사와 진술이 긴밀한 조화가 압권이다. 현실의 다면을 꿰는 독법으로 발생시키는 낯선 미감의 어조 속에 유지하는 정형성도 견고하다. 제목 ‘파란’이 촉발하는 원인에 대한 다양한 상상 또한 작품 전편에 이상한 생기와 냉기를 부여한다.



* 필자의 종합평

 

깨진 음보가 굴러다니고 수의 구별도 없이 1연 12행으로 늘어놓은 모양이 시조정형인가? 이런 구조가 견고한 것이며 이 작품이 정형구조를 넓힐 신인을 발굴한 결과인가? 정형구조를 왜 넓히는데? 넓히면 정형이 깨져 없는 것과 같은데? 이해 못할 작품에 이해 못할 심사평을 얹어 놓았다.

내용면에서 첫째 수(수라고 할 수도 없지만)는 햇살이 내려 쬐는 파란 잎사귀, 둘째 수는 일상생활에 갇힌 통근 길, 셋째 수는 비가 오는 오전 10시, 넷째 수는 하늘이 파랗고 자동차 경적에 놀라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비가 오다가 개인 통근길 자동차 경적에 놀라는 싱그러운 파란 세상, 아마 5월쯤일 것 같다. 무게를 똑 같이 한 12행의 시형을 그냥 읽으면 햇살이 내리 쬐고, 내키지 않는 출근길, 비가 오는 10시, 염가의 창공, 싱그러운 잡초들이 남는 산만한 내용이다. 수의 구별을 뚜렷이 하여 셋째 수, 둘째 수, 첫째 수, 넷째 수로 순서를 정리하고 깨진 음보를 바로 잡으면 보다 낳은 작품이 되겠다.



(3)동아일보

날, 세우다/정지윤

동대문 원단상가 등이 굽은 노인 하나

햇살의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서

숫돌에 무뎌진 가위를 정성스레 갈고 있다

지난밤 팔지 못한 상자들 틈새에서

쓱쓱쓱 시퍼렇게 날이 서는 쇳소리

겨냥한 날의 반사가 주름진 눈을 찌른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눈초리를 자르고

무뎌진 시간들을 자르는 가위의 날

노인의 빠진 앞니가 조금씩 닳아간다

늘어진 얼굴에서 힘차게 외쳐대는

어허라 가위야, 골목이 팽팽해지고

칼칼한 쇳소리들이 아침을 자른다

*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이근배 이우걸



...이 작품은 삶의 현장을 노래하되, 고된 삶의 값싼 비애나 연민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놓을 수 없는 그것을 견디고 극복하는 건강한 희망을 보여 주었다. ‘눈초리를 자르고’, ‘시간을 자르’고 ‘아침을 자르’는 가위의 변용 이미지를 통해 자칫 상투적인 내용을 지루하게 끌고 가는 여타의 작품들과 달리 우리 시조의 지평을 확장시킬 미학적 도전 의식을 읽을 수 있었다. 건강한 삻의 자세, 날카로운 시선, 그만이 지닌 감수성과 시적 화법은 이 신인을 믿는 선자들의 희망의 근거다.

* 필자의 종합평

 

깨진 음보가 몇 군데 있어 자수 정형에는 못 미치나 음보정형은 벗어나지 않았다. 수의 구별이 뚜렷한 4수가 균형 있게 배치되어 있어 호흡이 부드럽고 의미율 또한 고·저 강·약이 있어 형식면에서 구색을 잘 갖추었다.

내용 또한 주위의 환경에 흐트러짐이 없이 일의 귀천을 떠나 굳건히 일하는 노인의 모습을 잘 그려낸 가작이다. 낭송을 해도 청중에게 바로 의미전달이 되면서 적당한 비유와 충격이 가해지는 시어를 잘 구사하고 있다. 현대시는 고도의 비유와 상상으로 직조되어 있어 읽고 해석하는 시로는 적합하나 낭송하고 듣는 시가 되기는 어렵지만 이 작품은 이를 잘 극복하고 있다. 더 욕심을 부리자면 셋째 수와 넷째 수에서 [자르고] [자르는] [자른다]로 자름이 중첩되어 있는데 이를 피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종합하면 이 작품은 금년도 신춘문예 무대에서 장원의 자리에 오르겠다.

(4) 서울신문

구름 위의 구두/유순덕

밤늦도록 소슬바람 별자리가 휘고 있다

모래폭풍 부는 방이 공중으로 떠올라도

심 닳은 연필을 쥐고 청년은 잠이 든다

도시 계곡 빌딩 숲을 또 감는 회리바람

도마뱀 꼬리 같은 추잉검만 질겅대고

수십 번 눈물로 심은 비정규직 이력서

윤기 나게 닦은 구두 구름 위에 올려놓고

조간신문 행간에서 술빵 냄새 맡는 아침

환청의 발걸음 소리 꽃멀미에 가볍다

*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박기섭 이근배



소재의 참신함에 현대 시조다운 제목 돋보여

 

...그간 하나의 경향성을 보였던 역사나 자연시편이 줄어든 대신, 명퇴나 비정규직 같은 당대 삶의 문제에 관심이 증폭된 것도 고무할 만한 일이다.

 

(당선작은)소재의 참신함이 돋보이는 데다, 제목부터가 짐짓 현대시조답다. 청년실업이라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정면에서 응시한다. ‘심 닳은 연필을’ 쥔 채 잠든 ‘청년’의 밤은 ‘소슬바람’에 ‘별자리가 휘고 있다’. 정황 묘사를 넘어서는 심리 묘사가 발군이다. 생존 현장에 직핍한 정서의 힘은 셋째 수에서 정점을 이룬다. 출근을 고대하며 ‘윤기 나게 닦은 구두’. 하지만 그 구두를 ‘구름 위에 올려놓을’ 수밖에 없는 암담한 현실이 ‘조간신문 행간에서 술빵 냄새’를 맡게 하는 것이다.

* 필자의 종합평

 

3수의 구별이 뚜렷하고 3장 6구가 잘 갖추어져 있으나 깨진 음보가 있어 자수정형에는 미치지 못한다.

 

밤늦도록 이력서를 써서 술빵으로 아침을 때우고 조간신문을 뒤적이며 비정규직이나마 취직이 되기를 바라는 희망으로 환청이 들리고 꽃향기에 어지러운 아침이다. 시대의 아픔을 잘 그려내었다. ‘구름위에 올려놓은’이라는 상승이미지는 ‘암담한 현실’이라기보다 ‘꽃멀미’와 어울려 ‘절실한 희망사항’을 노래한 것이 아닐까? 따라서 이 작품의 제목 ‘구름위의 구두’는 ‘구름위에 올려놓을 수밖에 없는 암담한 현실’(심사평)이 아니라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바램’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5)부산일보

봄눈/김연희

사뭇,

그리운 이는

사뭇 그리운 채로



뚫린 허공에 낮달이라 걸어두고

 

홀로 핀 매화 가지에

 



눈이 오네



*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오정환·이우걸·김경복



당선작으로 정한 '봄눈'은 달랐다. 응모한 4편이 두루 고를 뿐 아니라 넘치는 가락의 묘미와 회화성 그리고 연가류의 애틋함이 잘 어우러져 있어서 단연 눈길을 사로잡았다.



* 필자의 종합평

 

이 작품을 시낭송회에서 행·연에 따라 읽을 때 시조라고 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시조 1수 12음보 중 무려 8음보가 정형을 벗어났고 종장 셋째 마디는 3음보로 갈라놓아 전체 14음보가 되었다. 3장 6구의 모습은 찾기 어렵고 5연 9행의 자유시는 금방 눈에 뜨인다. 이런 자유시를 시조 당선작으로 뽑아 놓은 심사위원들이야말로 현대시조를 죽이는데 앞장서고 있다.

 

내용 또한 제목이 너무 평범하고, 본문마저 흔한 고서화 설매화(雪梅畵)를 보는 기분이다.



(6) 국제신문



물의 독서

 

최정연



물 아래 달을 봐라

 

콸콸한 문장이네

 

몇 개의 모음들이 괄호 밖에 흘러넘쳐

 

지금은 은어가 오는 시간,

 

달빛공지 띄우라네



산란하는 조약돌도 물 소리 헤이는 밤

 

오십천 수면 아래

 

무슨 등불 켜두어서

 

뜨거운 이마 짚으며

 

다상량의 달을 보나



수심 찬 질문들이 부서지고 또 고여서

 

물결 책 갈피마다

 

각주로 박혀있네



내 몸도 출렁, 불려나와

 

행간의 밑줄 될까



*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전연희 서태수



'물의 독서'는 발랄한 위험성이 있지만, 생동감 넘치는 신선미가 돋보였다.

 

...찰랑이는 시어로 이미지를 다양화하고 있다. 시조의 보법을 경쾌하게 운용하는 능숙함, 행갈이와 쉼표 하나에도 많은 의미를 담고자 하는 섬세함을 함께 지녔다. 다만, 최정연 씨 작품들은 자유분방함으로 인하여 시조가 지닌 형식적 미감이 오히려 넘치는 위험성이 있다.



* 필자의 종합평

 

3수 연시조가 분명하나 깨진 음보가 많아 자수정형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출렁, 불려나와]는 1음보의 자리에 2음보가 비집고 들어 앉아 있다. 수의 구별도 제멋대로이다. 셋째 수의 종장을 따로 떼어 놓은 이유를 모르겠다.

 

내용면에서는 흐르는 냇물에 독서하는 분위기를 오버랩 (overlap)시켜 엮어 나가는 솜씨가 돋보인다. [콸콸한 문장] [달빛공지] [산란하는 조약돌] [물결 책 갈피] 등 참신한 시어들이 눈길을 끈다. 그러나 [오십천] [다상량] 등 고유명사(?)를 작품에 동원한 것은 일반 독자의 감상을 어렵게 하고 작품의 가치를 깎아 내리는 역할을 할 뿐, 없는 것만 못하다.



(7) 대구매일신문



옆구리 증후군

 

조경선



손가락을 때렸다 매일 하는 일인데

 

못은 이미 달아나고 의자는 미완성인데

 

날아 온 생각 때문에 한눈팔고 말았다

 

상처 많은 나무로 사연 하나 맞추어 간다

 

원목의자만 고집하는 팔순의 아버지에게

 

때로는 딱딱한 것도 안락함이 되는 걸까

 

어머니 보내고 생의 척추 무너진 후

 

기우뚱 옆구리가 한 쪽으로 기울어져

 

슬픔을 지탱하기엔 두 다리가 약하다

 

낯익은 것 사라지면 증후군에 시달린다

 

최초의 의자는 흔해빠진 2인용

 

우리는 가까운 사람을 익숙할 때 놓친다



*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이정환



당선작 조경선 씨의 '옆구리 증후군'은 연로한 아버지를 위해 원목의자를 만드는 과정을 노래하면서 넌지시 삶의 의미를 환기시키는 역작이다. 일상의 삶으로부터 모티브를 얻어 끈끈한 가족애를 실감실정으로 그리고 있다. 특히‘때로는 딱딱한 것도 안락함이 되는 걸까’, ‘슬픔을 지탱하기엔 두 다리가 약하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을 익숙할 때 놓친다’라는 대목들이 주는 울림이 크다. 남다른 직조능력에서 얻은 표현들이다. 이처럼 일상을 소재로 하되 일상적이지 않다. 새로움이 있다.



* 필자의 종합평

 

시조의 형식을 팽개치고 속박을 벗어나 자유를 찾은(?) 1연 12행의 자유시이다. 자수정형 3434 344(3)4 3543에서 제자리를 못 지키고 허물어진 곳이 절반에 가깝다. 성이 무너진 곳은 폐허이다.

 

8순의 아버지가 허리와 다리가 약한 몸을 지탱하며 홀로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지만, [낯익은 것 사라지면 증후군에 시달린다]는 의미가 애매하고 [최초의 의자는 흔해빠진 2인용]은 결혼초기의 부모를 비하한 표현으로 들리며, [우리는 가까운 사람을 익숙할 때 놓친다]는 시적 논리가 선명하지 않은 표현으로 의문부호(?)가 머리에 남아 울림이 커야 할 종장이 안개 속으로 사라진 느낌이다.



(8) 경남신문



금빛 질경이

 

정성호



흙바람 길을 튼다, 길섶에 씨방 연다

 

비에 젖은 잎새 위에 숨 고르는 햇살 한 줌

 

날마다 무게를 불려 등짐 지는 탑이 된다



척박한 가풀막이 떠밀린 뉘 요새인가

 

내일로 가는 길은 밟히고 또 밟히는 일

 

뭉개고 으깨어져도 겹겹이 반짝인다



가진 것은 여린 솜털, 촘촘하게 추스르고

 

한길에 오체투지로 한 땀 한 땀 밀어 올려

 

또 한 번 금빛을 푼다, 거방진 계절을 편다



*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이달균·서일옥



‘금빛 질경이’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작품들의 고른 성취로 미뤄볼 때 습작의 과정이 튼튼했음을 확인했고, 그런 만큼 안정된 보법과 이야기를 전개하는 힘에서 좋은 점수를 얻었다. 물론 시상의 전개와 참신함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있었지만 노력을 통해 극복할 수 있으리란 믿음은 있다.



* 필자의 종합평

 

수.장.구가 뚜렷하고 음보정형에 가까운 시조이다. 그러나 4자의 자리에 [뉘 요새인가] [또 밟히는 일] [오체투지로] [거방진 계절을] 등 5자 또는 6자가 비집고 들어 앉아 있어 리듬이 깨지고 읽기가 껄끄럽다.

 

첫째 수는 질경이의 좋은 환경, 둘째 수는 어려운 환경, 셋째 수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장면을 소재로 하여 적당한 메타포를 가미하면서 시적 감흥을 북돋우고 있다.

 

시조의 형식은 모자람이 있으나 내용은 좋은 작품이다.



(9) 경상일보(울산)



문장부호, 느루 찍다2

 

백윤석



점 하나 못 챙긴 채 빈 공간에 갇히는 날

 

말없음표 끌어다가 어질머리 잠재우고

 

글 수렁 헤쳐 나온다,

 

바람 한 점 낚고 싶어



발길 잡는 행간마다 율격 잠시 내려놓고

 

어머니 말의 지문 따옴표로 모셔다가

 

들레는 몇 몇 구절을

 

초장으로 앉혀야지



까짓것, 급할 게 뭐람 쌍무지개 뜨는 날엔

 

벼룻길 서성이는 달팽이도 불러들여

 

중장은 느림보 걸음,

 

쉼표 촘촘 찍어 보다



그래도 잘 익혀야지, 오기 울컥 치미는 날

 

뙤약볕 붉은 속내 꽉 움켜쥔 감꼭지로

 

밑줄 쫙! 종장 그 너머

 

느낌표를 찍을 터



*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박기섭



‘느루 찍은’ 문장부호, 행간의 변화 이끌어

 

...‘문장부호, 느루 찍다’... 제목부터가 현대시조의 ‘현대성’을 강하게 부각하는 이 작품은 메타시의 성격이 짙다.

 

시조 3장의 속성을 적절한 비유와 적확한 표현으로 풀어내고 있다. 말없음표·따옴표·쉼표·느낌표 같은 문장부호를 제목 그대로 느루 찍음으로써 행간의 변화를 이끈다. 네 수의 결구를 각기 다르게 처리한 데서 보듯, 일상에 만연한 감성의 상투화를 극복하고자 하는 창조의지가 충일하다. 이는 신춘문예에서 기대하는 분명한 미학의 개진을 보여주는 일이다.



* 필자의 종합평

 

3자의 자리에 4자 음보가 차지하고 있는 것은 고사하고 4자의 자리에 [급할 게 뭐람] [잘 익혀야지] 등 5자 음보가 점령하고 있어 숨 가쁘다.

 

그러나 이 작품은 시조창작을 문장부호로 풀어내는 재미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첫째 수에서 말없음표(.....)를 찍으면서 무엇을 그려낼까? 궁리하다가 시조율격은 좀 벗어나더라도 어머니 말을 따옴표(“ ”)에 넣어 초장으로 삼고(둘째 수), 느림보 달팽이의 걸음같이 연속적으로 쉼표( , , , ,)를 동원하여 중장을 만들고(셋째 수), 그래도 종장만은 감꼭지로 밑줄 쫙! 긋는 심정으로 강하고 힘차게 때리고 느낌표( ! )를 찍어 마감하겠다(넷째 수)고 한다. 발상이 기발하여 상투적인 서정시나 애정시를 벗어나 현대시조의 참 맛을 보게 하는 작품이다. 한 편 [느루] [들레] [벼룻길] 등 현대인이 잘 쓰지 않는 단어를 동원하여 독자를 밀어내는 것은 이 작품의 큰 흠이라 하겠다.



(10) 농민신문



바다가 끓이는 아침

 

김광희



 냄비 속 두부 비집고 순하게 누운 청어

 

 여태껏 제 살 찌른 가시들 다독여서

 

 들끓는 파도소리로 어린 잠을 깨운다



 물 얕은 연안에도 격랑이 일었던지

 

 거친 물살 버티느라 활처럼 등이 굽은

 

 어머니 갈빗대마다 소금눈물 가득 찼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대양을 꿈꿨던지

 

 시퍼런 등줄기가 심해를 닮아 있는,

 

 몸속의 수평선 꺼내 끓여내는 아침바다



*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한분순 민병도



평범한 생활시조의 상상력과 개성적 접근 주목

 

 청어찌개를 끓이는 평범한 생활 소재를 통해서 힘겹게 살아온 어머니를 발견하는 상상력과 셋째 수 종장의 ‘몸속의 수평선 꺼내 끓여내는 아침바다’의 힘을 확보하는 사유의 깊이에 박수를 주기로 한 것이다. 지나친 정보의 홍수 속에 획일화되고 서로 닮아버린 시조의 현실에서 체험적 생활시조의 또 다른 개성적 접근은 시조의 문을 넓혀 줄 것이란 관점에서 기대를 갖게 한다.



* 필자의 종합평

 

3장 6구가 뚜렷하고 자수정형은 아니지만 음보정형을 잘 지킨 작품이다.

 

청어 끓이는 냄비 앞에 앉아 대양과 심해, 수평선과 파도소리를 상상하며 아침상을 준비하는 어머니의 마음속까지 그려내고 있다.

2016년 신춘문예 시조 총평2016년 신춘문예 시조 총평 이 봉 수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많은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및 학자들은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시인 시조는 세계적인 자랑거리라고 한다. 시조가 자랑거리라는 것은 일본의 하이쿠(俳句), 중국의 한시(漢詩), 서양의 소네트(sonnet) 등과 같은 수준의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정형시’이기 때문이다cafe424.daum.net

 

| 2017.08.09 수정됨 최초등록일 2017-08-09 13:52
최종수정일 2017-08-09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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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신춘문예 시조 총평

                                                                        이 봉 수 (시조시인문학평론가)



       많은 시조시인문학평론가 및 학자들은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시인 시조는 세계적인 자랑거리라고 한다시조가 자랑거리라는 것은 일본의 하이쿠(俳句), 중국의 한시(漢詩), 서양의 소네트(sonnet) 등과 같은 수준의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정형시이기 때문이다이들 세계적인 정형시는 독특하고 엄격한 시형을 생명으로 한다정형을 갖추지 못하면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

       오늘날 한국의 시조는 창사(唱詞)였던 고시조의 탈을 벗고 20C초 순수문학인 정형시(定型詩)로 다시 태어났지만정형을 굳히기도 전에 고시조의 많은 형을 여과 없이 답습하고 범람하는 자유시의 흉내 내기에 급급하여한 올의 예외도 허용하지 않는 세계적인 정형시의 반열에 오르기에는 크게 미흡하였다.

       건국초기 고시조의 가장 많은 형을 추출하여 교과서의 자수정형[3434 344(3)4 3543]으로 자리매김하였으나 시조단에서는 이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잡다한 음보정형이 범람하다가 최근 일각에서 각성이 일어 정격 시조 부흥운동이 자리를 넓혀 가고 있다[졸저 현대시조 바로세우기(2013년 문예촌 발행)참조].

       2016년 주요 언론사의 신춘문예도 수 십 년의 해를 거듭하였지만아직도 자유시흉내내기에 빠져있는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아 놓은 곳이 많다중앙일보의 대상 <11>,신인상 <서양민들레>, 조선일보의 <파란 잉크 주식회사>, 부산일보의 <봄눈>, 대구매일신문의 <옆구리 증후군등이 그것이다이런 작품들이 신춘문예 단상에서 내려오지 않는 한 우리의 시조는 세계의 정형시단에서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할 것이다그런 가운데 동아일보의 <세우다>와 서울신문 <구름위의 구두>는 자수정형에는 못 미치지만 음보정형만이라도 제대로 지키면서 내용과 표현이 좋아 돋보인다.

     

       이하 10개 언론사의 당선작들을 세밀히 살펴본다.

     

    (1)중앙일보

    (중앙일보는 2016년 신춘문예 대신 34회 중앙시조대상·중앙시조신인상과 제26회 중앙신인문학상 시조부문 수상자를 뽑아 발표하였다.)

     

    <대상>

                  11

                                                              염창권

     

    그림자를 앞세우는 날들이 잦아졌다

     

    캄캄한 지층으로 몰려가는 가랑잎들

     

    골목엔 눈자위 검은 등불 하나 켜진다

     

    잎 다 지운 느티나무 그 밑둥에 기대면

     

    쓸쓸히 저물어간 이번 생의 전언이듯

     

    어둔 밤 몸 뒤척이는 강물소리 들린다

     

    몸 아픈 것들이 짚더미에 불 지피며

     

    뚜렷이 드러난 제 갈비뼈 만져볼 때

     

    맨발로 걷는 하늘엔 그믐달이 돋는다

     

    젖 물릴 듯 다가오는 이 무형의 느낌은

     

    흰 손으로 덥석 안아 날 데려갈 그것은

     

    아마도오기로 하면 이맘쯤일 것이다.



    <신인상>

            서양민들레

                                                                    김영주

     

    떡전 거리 인도 위에 신문지 펼쳐놓고

     

    풋고추

     

    오이 호박

     

    가지런히 누워 있다

     

    환하게 이 드러내고 웃고 있는 베트남댁

     

    산 설다

     

    물도 설다

     

    돌아갈 길 더 설다

     

    보도블럭 틈 사이로 뿌리 둘 곳 더듬다가

     

    토종이 되어간단다

     

    흑을 꽉! 움켜쥔다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유성호·이지엽·홍성란(대표집필 홍성란)

     

    ‘11은 몸 아픈 것들이 드러난 제 갈비뼈를 만져보지만 캄캄한 지층으로 몰려가는 가랑잎이나 눈자위 검은 등불처럼 중년의 경험을 쓸쓸히 보여준다그러면서도 시인의 긍정과 화해의 사유는 젖 물릴 듯 다가오는 이 무형의 느낌이라는 추상의 구체화와 아마도오기로 하면 이맘쯤일 것이라는 적실한 언명에 닿아 형언할 수 없는 힘을 발산하며 대상 논의를 평정하였다.

     서양민들레는 고단하고 서러운 이역에서 환하게 이 드러내고 웃으며 견디는 베트남댁의 생활에 연민과 긍정의 시선을 얹고 있다보도블럭 틈에 견고히 뿌리내리듯 타국에서 토종이 되기 위해 흙을 꽉! 움켜쥐는 이 땅의 건강한 생명력을 확인하는 이 작품 외에도 함께 올라온 김영주 작품은 균질한 미적 성취를 보여주었다.



    필자의 종합평

     

       (1) 대상 수상작 <11>은 시조정형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나 3434 344(3)4 3543의 자수정형에는 못 미친다그보다도 3장 6구가 뚜렷해야할 시조형식을 크게 벗어나 수의 구별을 없애버리고 1연 12행의 자유시형을 만들어 시조다운 맛을 송두리째 없애버렸고 따라서 읽기가 숨 가쁘다.

    이 작품은 한 해의 끝자락을 향해 달려가는 11월을 맞아 쓸쓸함을 달래며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호소하고 있으나 젖 물릴 듯 다가오는 이 무형의 느낌’ 즉 흰 손으로 덥석 안아 날 데려갈 그것(느낌)’이 어떤 느낌인지 구체화되지 않아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지배적인 시상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심사위원들은 무형의 느낌이 젖 물릴 듯 다가온다,’고 하므로 추상이 구체화되었다고 하지만 무형의 느낌 자체는 구체화(형상화)되지 않은 것이다넷째 수(수의 구별도 없지만)의 초장 [느낌은]과 중장 [그것은]은 [느낌]의 중복표현으로 1자라도 아끼고 압축해야 할 시조창작에서 시어를 낭비한 결과가 되었다. [흰 손으로 덥석 안아또한 어색하다손은 잡는 것이지 안는 것이 아니다. [흰 손으로 꽉 잡아또는 [두 팔로 덥석 안아]라야 독자들이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2) 신인상 수상작 <서양민들레또한 비좁은 3자 자리에 덩치 큰 4자가 앉아 있고 넓은 4자 자리에 3자가 헐렁하게 앉아 있다대상 수상작과 마찬가지로 수의 구별을 없애고 행갈이도 완전 자유시형으로 변형시켜 놓았다.

       이 작품은 제목과 본문이 어울리지 않는다. ‘베트남댁을 서양민들레로 비유했지만 베트남은 서양이 아니기 때문이다더 큰 실수는(신문사 출판과정의 실수이기를 바라지만), ‘흑을 꽉!’에 있다심사평은 흙을 꽉!’이라고 바로 잡아 주었지만 원문은 그대로이다. [,,.인도위에 신문지 펼쳐 놓고 풋고추... 누워있다.] 풋고추가 신문지를 펼쳐 놓았는가있을 수 없는 표현이다.

    시조의 형식과 내용 모든 면에서 결함이 많아 수상작이 되기에는 크게 부족하다.

     

    <신인문학상 시조>

          茶山을 읽다

                                                                  박화남

     

    1. 동박새로 날아와

     

    그대가 없는데도 그대 너무 그리워서

     

    만덕산 햇살처럼 구강포 바다를 당겨

     

    백련사 고요에 들어

     

    붉은 숨을 내쉰다

     

    2. ‘丁石을 새기며

     

    꺾어든 그 비수를 바람 속에 던져놓고

     

    초당에 내려앉아 찻물 깊이 끓였을까

     

    용오름 역린을 삼켜

     

    명편이 된 한 사람

     

    3. 그리운 훗승

     

    그대 푸른 동백나무 하늘로 날아올라

     

    흐르는 구름 위에 한 편 시 적은 오후

     

    여태껏 본 적도 없는,

     

    길 활짝 벙근다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권갑하·박권숙·박명숙·이달균(대표집필 박권숙)

     

    ...언어를 능숙하게 엮고 풀고 다스리는 솜씨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읽어내는 마음의 눈균형과 절제의 시조 미학에 충실한 가락 부림의 능력 등 선정 척도에서 가장 안정감을 주는 높은 완성도로 호평을 받았다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에서의 삶과 시 세계를 작은 표제로 나누어 심미감 넘치는 선명한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다대상에 대한 깊은 사유와 오랜 숙성을 거친 후에야 빛나는 감각의 표현을 빚을 수 있다는 믿음에 확신을 주었다다만각 수 종장을 의도적으로 한 연의 호흡 마디로 처리하여 보다 강렬한 여운의 효과를 노린 것은 좋지만이런 형태상의 실험이 자칫 신인의 패기나 실험의지로 오해될 위험성이 지적되었다.



    필자의 종합평

       형식면에서는 대체로 껄끄러움 없이 읽히는 모양새이지만 자수정형에는 못 미친다.

       내용은 조선시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 생활을 그려낸 것으로 보이지만문인이 아니고 역사도 깊이 알지 못하는 대다수의 일반인이 읽으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이다심사위원들에게는 뛰어난 작품으로 보이지만 일반 독자에게는 입안에 든 돌멩이다삼킬 수도 없고 뱉으려니 체면이 구긴다시는 심사위원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한 편 심사평은 이 작품의 각 수 종장이 한 연의 호흡 마디로 처리되었고 이런 실험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지적하는데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필자가 보기에는 종장 각 구()에 무게를 주어 초·중장과 동일한 장()급으로 승격시키기 위하여 행을 나눈 것이며이는 작자의 시적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므로 심사평이 잘 못 된 것 같다.



    (2)조선일보

           파란 잉크 주식회사

                                                                       이중원

     

    새초롬한 잎사귀에 햇살이 내리쬐어도

     

    버스가 남기고 간 잿빛의 연기만이

     

    망막에 재고가 남은 유일한 색채일까

     

    발 아래 선이 있고 내 뒤로 줄이 있다

     

    느려지는 발자국을 억지로 잡아끌어

     

    통근의 컨베이어에 실려가는 유리병

     

    모래알 흐르듯이 부서지는 빛줄기가

     

    정류장 팻말 옆의 풀 허리에 한껏 고여

     

    메마른 마개 틈새에 떨어지는 오전 10

     

    하는 경적음에 뜬 눈이 부시도록

     

    생생하게 흔들리는 푸릇한 잡초들만,

     

    염가에 세일 중인 창공, 한없이 싱그럽다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정수자

     

    정형 구조 넓힐 신인… 더 놀라운 '파란기대돼

    ...‘파란 잉크 주식회사는 언어에 촉수를 달고 탐사하듯 세밀한 감각의 깊이로 잡아 엮는 묘사와 진술이 긴밀한 조화가 압권이다현실의 다면을 꿰는 독법으로 발생시키는 낯선 미감의 어조 속에 유지하는 정형성도 견고하다제목 파란이 촉발하는 원인에 대한 다양한 상상 또한 작품 전편에 이상한 생기와 냉기를 부여한다.

     

    필자의 종합평

       깨진 음보가 굴러다니고 수의 구별도 없이 1연 12행으로 늘어놓은 모양이 시조정형인가이런 구조가 견고한 것이며 이 작품이 정형구조를 넓힐 신인을 발굴한 결과인가?정형구조를 왜 넓히는데넓히면 정형이 깨져 없는 것과 같은데이해 못할 작품에 이해 못할 심사평을 얹어 놓았다.

    내용면에서 첫째 수(수라고 할 수도 없지만)는 햇살이 내려 쬐는 파란 잎사귀둘째 수는 일상생활에 갇힌 통근 길셋째 수는 비가 오는 오전 10넷째 수는 하늘이 파랗고 자동차 경적에 놀라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비가 오다가 개인 통근길 자동차 경적에 놀라는 싱그러운 파란 세상아마 5월쯤일 것 같다무게를 똑 같이 한 12행의 시형을 그냥 읽으면 햇살이 내리 쬐고내키지 않는 출근길비가 오는 10염가의 창공싱그러운 잡초들이 남는 산만한 내용이다수의 구별을 뚜렷이 하여 셋째 수둘째 수첫째 수넷째 수로 순서를 정리하고 깨진 음보를 바로 잡으면 보다 낳은 작품이 되겠다.



    (3)동아일보

             날세우다

                                                                           정지윤

     

    동대문 원단상가 등이 굽은 노인 하나

    햇살의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서

    숫돌에 무뎌진 가위를 정성스레 갈고 있다

     

    지난밤 팔지 못한 상자들 틈새에서

    쓱쓱쓱 시퍼렇게 날이 서는 쇳소리

    겨냥한 날의 반사가 주름진 눈을 찌른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눈초리를 자르고

    무뎌진 시간들을 자르는 가위의 날

    노인의 빠진 앞니가 조금씩 닳아간다

     

    늘어진 얼굴에서 힘차게 외쳐대는

    어허라 가위야, 골목이 팽팽해지고

    칼칼한 쇳소리들이 아침을 자른다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이근배 이우걸

     

    ...이 작품은 삶의 현장을 노래하되고된 삶의 값싼 비애나 연민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놓을 수 없는 그것을 견디고 극복하는 건강한 희망을 보여 주었다. ‘눈초리를 자르고’, ‘시간을 자르고 아침을 자르는 가위의 변용 이미지를 통해 자칫 상투적인 내용을 지루하게 끌고 가는 여타의 작품들과 달리 우리 시조의 지평을 확장시킬 미학적 도전 의식을 읽을 수 있었다건강한 삻의 자세날카로운 시선그만이 지닌 감수성과 시적 화법은 이 신인을 믿는 선자들의 희망의 근거다.

     

    필자의 종합평

       깨진 음보가 몇 군데 있어 자수 정형에는 못 미치나 음보정형은 벗어나지 않았다수의 구별이 뚜렷한 4수가 균형 있게 배치되어 있어 호흡이 부드럽고 의미율 또한 고·저 강·약이 있어 형식면에서 구색을 잘 갖추었다.

       내용 또한 주위의 환경에 흐트러짐이 없이 일의 귀천을 떠나 굳건히 일하는 노인의 모습을 잘 그려낸 가작이다낭송을 해도 청중에게 바로 의미전달이 되면서 적당한 비유와 충격이 가해지는 시어를 잘 구사하고 있다현대시는 고도의 비유와 상상으로 직조되어 있어 읽고 해석하는 시로는 적합하나 낭송하고 듣는 시가 되기는 어렵지만 이 작품은 이를 잘 극복하고 있다더 욕심을 부리자면 셋째 수와 넷째 수에서 [자르고] [자르는] [자른다]로 자름이 중첩되어 있는데 이를 피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종합하면 이 작품은 금년도 신춘문예 무대에서 장원의 자리에 오르겠다.



    (4) 서울신문

           구름 위의 구두

                                                                        유순덕 

     

    밤늦도록 소슬바람 별자리가 휘고 있다

    모래폭풍 부는 방이 공중으로 떠올라도

    심 닳은 연필을 쥐고 청년은 잠이 든다

     

    도시 계곡 빌딩 숲을 또 감는 회리바람

    도마뱀 꼬리 같은 추잉검만 질겅대고

    수십 번 눈물로 심은 비정규직 이력서

     

    윤기 나게 닦은 구두 구름 위에 올려놓고

    조간신문 행간에서 술빵 냄새 맡는 아침

    환청의 발걸음 소리 꽃멀미에 가볍다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박기섭 이근배

     

    소재의 참신함에 현대 시조다운 제목 돋보여

    ...그간 하나의 경향성을 보였던 역사나 자연시편이 줄어든 대신명퇴나 비정규직 같은 당대 삶의 문제에 관심이 증폭된 것도 고무할 만한 일이다.

    (당선작은)소재의 참신함이 돋보이는 데다제목부터가 짐짓 현대시조답다청년실업이라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정면에서 응시한다. ‘심 닳은 연필을’ 쥔 채 잠든 청년의 밤은 소슬바람에 별자리가 휘고 있다’. 정황 묘사를 넘어서는 심리 묘사가 발군이다. 생존 현장에 직핍한 정서의 힘은 셋째 수에서 정점을 이룬다출근을 고대하며 윤기 나게 닦은 구두’. 하지만 그 구두를 구름 위에 올려놓을’ 수밖에 없는 암담한 현실이 조간신문 행간에서 술빵 냄새를 맡게 하는 것이다.

     

    필자의 종합평

       3수의 구별이 뚜렷하고 3장 6구가 잘 갖추어져 있으나 깨진 음보가 있어 자수정형에는 미치지 못한다.

       밤늦도록 이력서를 써서 술빵으로 아침을 때우고 조간신문을 뒤적이며 비정규직이나마 취직이 되기를 바라는 희망으로 환청이 들리고 꽃향기에 어지러운 아침이다시대의 아픔을 잘 그려내었다. ‘구름위에 올려놓은이라는 상승이미지는 암담한 현실이라기보다 꽃멀미와 어울려 절실한 희망사항을 노래한 것이 아닐까따라서 이 작품의 제목 구름위의 구두는 구름위에 올려놓을 수밖에 없는 암담한 현실’(심사평)이 아니라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바램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5)부산일보

     

        봄눈

                                                          김연희

     

    사뭇,  
    그리운 이는   
    사뭇 그리운 채로  


    뚫린 허공에 낮달이라 걸어두고 
     홀로 핀 매화 가지에
     
     
      


    눈이 오네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오정환·이우걸·김경복

     

       당선작으로 정한 '봄눈'은 달랐다응모한 4편이 두루 고를 뿐 아니라 넘치는 가락의 묘미와 회화성 그리고 연가류의 애틋함이 잘 어우러져 있어서 단연 눈길을 사로잡았다.

     

    필자의 종합평

       이 작품을 시낭송회에서 행·연에 따라 읽을 때 시조라고 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시조 1수 12음보 중 무려 8음보가 정형을 벗어났고 종장 셋째 마디는 3음보로 갈라놓아 전체 14음보가 되었다. 3장 6구의 모습은 찾기 어렵고 5연 9행의 자유시는 금방 눈에 뜨인다이런 자유시를 시조 당선작으로 뽑아 놓은 심사위원들이야말로 현대시조를 죽이는데 앞장서고 있다.

       내용 또한 제목이 너무 평범하고본문마저 흔한 고서화 설매화(雪梅畵)를 보는 기분이다.



    (6) 국제신문

     

       물의 독서

                                                                     최정연

     

    물 아래 달을 봐라

    콸콸한 문장이네

    몇 개의 모음들이 괄호 밖에 흘러넘쳐

    지금은 은어가 오는 시간,

    달빛공지 띄우라네

     

    산란하는 조약돌도 물 소리 헤이는 밤

    오십천 수면 아래

    무슨 등불 켜두어서

    뜨거운 이마 짚으며

    다상량의 달을 보나

     

    수심 찬 질문들이 부서지고 또 고여서

    물결 책 갈피마다

    각주로 박혀있네

     

    내 몸도 출렁불려나와

    행간의 밑줄 될까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전연희 서태수

     

    '물의 독서'는 발랄한 위험성이 있지만생동감 넘치는 신선미가 돋보였다.

    ...찰랑이는 시어로 이미지를 다양화하고 있다시조의 보법을 경쾌하게 운용하는 능숙함행갈이와 쉼표 하나에도 많은 의미를 담고자 하는 섬세함을 함께 지녔다다만최정연 씨 작품들은 자유분방함으로 인하여 시조가 지닌 형식적 미감이 오히려 넘치는 위험성이 있다.



    필자의 종합평

       3수 연시조가 분명하나 깨진 음보가 많아 자수정형과는 거리가 멀다특히 [출렁불려나와]는 1음보의 자리에 2음보가 비집고 들어 앉아 있다수의 구별도 제멋대로이다.셋째 수의 종장을 따로 떼어 놓은 이유를 모르겠다.

       내용면에서는 흐르는 냇물에 독서하는 분위기를 오버랩 (overlap)시켜 엮어 나가는 솜씨가 돋보인다. [콸콸한 문장] [달빛공지] [산란하는 조약돌] [물결 책 갈피등 참신한 시어들이 눈길을 끈다그러나 [오십천] [다상량등 고유명사(?)를 작품에 동원한 것은 일반 독자의 감상을 어렵게 하고 작품의 가치를 깎아 내리는 역할을 할 뿐없는 것만 못하다.



    (7) 대구매일신문

     

         옆구리 증후군

                                                                    조경선

     

    손가락을 때렸다 매일 하는 일인데

    못은 이미 달아나고 의자는 미완성인데

    날아 온 생각 때문에 한눈팔고 말았다

    상처 많은 나무로 사연 하나 맞추어 간다

    원목의자만 고집하는 팔순의 아버지에게

    때로는 딱딱한 것도 안락함이 되는 걸까

    어머니 보내고 생의 척추 무너진 후

    기우뚱 옆구리가 한 쪽으로 기울어져

    슬픔을 지탱하기엔 두 다리가 약하다

    낯익은 것 사라지면 증후군에 시달린다

    최초의 의자는 흔해빠진 2인용

    우리는 가까운 사람을 익숙할 때 놓친다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이정환

     

       당선작 조경선 씨의 '옆구리 증후군'은 연로한 아버지를 위해 원목의자를 만드는 과정을 노래하면서 넌지시 삶의 의미를 환기시키는 역작이다일상의 삶으로부터 모티브를 얻어 끈끈한 가족애를 실감실정으로 그리고 있다특히때로는 딱딱한 것도 안락함이 되는 걸까’, ‘슬픔을 지탱하기엔 두 다리가 약하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을 익숙할 때 놓친다라는 대목들이 주는 울림이 크다남다른 직조능력에서 얻은 표현들이다이처럼 일상을 소재로 하되 일상적이지 않다새로움이 있다.



    필자의 종합평

       시조의 형식을 팽개치고 속박을 벗어나 자유를 찾은(?) 1연 12행의 자유시이다자수정형 3434 344(3)4 3543에서 제자리를 못 지키고 허물어진 곳이 절반에 가깝다성이 무너진 곳은 폐허이다.

    8순의 아버지가 허리와 다리가 약한 몸을 지탱하며 홀로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지만, [낯익은 것 사라지면 증후군에 시달린다]는 의미가 애매하고 [최초의 의자는 흔해빠진 2인용]은 결혼초기의 부모를 비하한 표현으로 들리며, [우리는 가까운 사람을 익숙할 때 놓친다]는 시적 논리가 선명하지 않은 표현으로 의문부호(?)가 머리에 남아 울림이 커야 할 종장이 안개 속으로 사라진 느낌이다.



    (8) 경남신문

     

               금빛 질경이

                                                                         정성호

     

    흙바람 길을 튼다길섶에 씨방 연다

    비에 젖은 잎새 위에 숨 고르는 햇살 한 줌

    날마다 무게를 불려 등짐 지는 탑이 된다

     

    척박한 가풀막이 떠밀린 뉘 요새인가

    내일로 가는 길은 밟히고 또 밟히는 일

    뭉개고 으깨어져도 겹겹이 반짝인다

     

    가진 것은 여린 솜털촘촘하게 추스르고

    한길에 오체투지로 한 땀 한 땀 밀어 올려

    또 한 번 금빛을 푼다거방진 계절을 편다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이달균·서일옥

     

       ‘금빛 질경이를 당선작으로 뽑았다작품들의 고른 성취로 미뤄볼 때 습작의 과정이 튼튼했음을 확인했고그런 만큼 안정된 보법과 이야기를 전개하는 힘에서 좋은 점수를 얻었다물론 시상의 전개와 참신함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있었지만 노력을 통해 극복할 수 있으리란 믿음은 있다.



    필자의 종합평

       수..구가 뚜렷하고 음보정형에 가까운 시조이다그러나 4자의 자리에 [뉘 요새인가] [또 밟히는 일] [오체투지로] [거방진 계절을등 5자 또는 6자가 비집고 들어 앉아 있어 리듬이 깨지고 읽기가 껄끄럽다.

       첫째 수는 질경이의 좋은 환경둘째 수는 어려운 환경셋째 수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장면을 소재로 하여 적당한 메타포를 가미하면서 시적 감흥을 북돋우고 있다.

       시조의 형식은 모자람이 있으나 내용은 좋은 작품이다.



    (9) 경상일보(울산)

     

       문장부호느루 찍다2

                                                                         백윤석

     

    점 하나 못 챙긴 채 빈 공간에 갇히는 날

    말없음표 끌어다가 어질머리 잠재우고

    글 수렁 헤쳐 나온다,

    바람 한 점 낚고 싶어

     

    발길 잡는 행간마다 율격 잠시 내려놓고

    어머니 말의 지문 따옴표로 모셔다가

    들레는 몇 몇 구절을

    초장으로 앉혀야지

     

    까짓것급할 게 뭐람 쌍무지개 뜨는 날엔

    벼룻길 서성이는 달팽이도 불러들여

    중장은 느림보 걸음,

    쉼표 촘촘 찍어 보다

     

    그래도 잘 익혀야지오기 울컥 치미는 날

    뙤약볕 붉은 속내 꽉 움켜쥔 감꼭지로

    밑줄 쫙종장 그 너머

    느낌표를 찍을 터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박기섭

     

    느루 찍은’ 문장부호행간의 변화 이끌어

    ...‘문장부호느루 찍다’... 제목부터가 현대시조의 현대성을 강하게 부각하는 이 작품은 메타시의 성격이 짙다.

    시조 3장의 속성을 적절한 비유와 적확한 표현으로 풀어내고 있다말없음표·따옴표·쉼표·느낌표 같은 문장부호를 제목 그대로 느루 찍음으로써 행간의 변화를 이끈다네 수의 결구를 각기 다르게 처리한 데서 보듯일상에 만연한 감성의 상투화를 극복하고자 하는 창조의지가 충일하다이는 신춘문예에서 기대하는 분명한 미학의 개진을 보여주는 일이다.



    필자의 종합평

       3자의 자리에 4자 음보가 차지하고 있는 것은 고사하고 4자의 자리에 [급할 게 뭐람] [잘 익혀야지등 5자 음보가 점령하고 있어 숨 가쁘다.

       그러나 이 작품은 시조창작을 문장부호로 풀어내는 재미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첫째 수에서 말없음표(.....)를 찍으면서 무엇을 그려낼까궁리하다가 시조율격은 좀 벗어나더라도 어머니 말을 따옴표(“ ”)에 넣어 초장으로 삼고(둘째 수), 느림보 달팽이의 걸음같이 연속적으로 쉼표( , , , ,)를 동원하여 중장을 만들고(셋째 수), 그래도 종장만은 감꼭지로 밑줄 쫙긋는 심정으로 강하고 힘차게 때리고 느낌표( ! )를 찍어 마감하겠다(넷째 수)고 한다발상이 기발하여 상투적인 서정시나 애정시를 벗어나 현대시조의 참 맛을 보게 하는 작품이다한 편 [느루] [들레] [벼룻길등 현대인이 잘 쓰지 않는 단어를 동원하여 독자를 밀어내는 것은 이 작품의 큰 흠이라 하겠다.



    (10) 농민신문

                  구석집

                                                                    김사계

     

     다녀갔나 보다 구석집 아들 내외

    눈 어두신 할머니 삼십촉 등 켜시면

    그 소식 궁금한 마을 길어지는 시골밤

     

    남은 건 두 마지기 비탈진 감자밭뿐

    말없는 노안 속에 좁아지신 마음이

    남의 말 일축하시듯 어두운 등 끄신다

     

    새벽잠 대신하여 켜 놓은 텔레비전

    자고 나면 평당 가격 수백씩 오른다는

    도회지 삶터 값들을 며칠째 쏟아 낸다



    심사위원 심사평 심사위원=한분순문무학

     

    빼어난 종장 처리현실감 생생

    ...구석집은 농촌 현실과 홀로 사는 노인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으며특히 시조의 형식 활용에서 종장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잘 살려낸 것은 압권이었다그리고 압축과 생략으로 할 말을 다 하면서도 말을 줄이는 능력을 높이 사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의 종합평

       시조 3장 6구는 잘 갖추고 있으나 깨진 음보가 많고 특히 [다녀갔나 보다]는 3.4의 자리에 1.6이 들어 앉아 있어 시조 형식과는 거리가 멀고 [눈 어두신]과 [수백씩]은 어색한 표현이다.

       첫째 수 [아들내외가 다녀간 것], [삼십촉 등을 켠 것그리고 [소식이 궁금한 것]이 인과관계가 없어 시적 논리가 서지 않고 산만하다둘째 수 [비탈진 감자밭], [좁아지신 마음], [남의 말 일축하시듯그리고 [등 끄시는 것역시 결속력이 없다셋째 수는 그냥 켜 놓은 텔레비전을 부각시킨 것인지 천정부지로 오르는 도시 부동산값을 질타한 것인지 애매하다이 작품은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초점이 흐려져 있다.

     

     

                                                                                            

시조의 양식적 구심을 지켜내는

기율로서의 정형성

 

 

유 성 호-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1. 차세대 주역들의 의욕적 성과

시조 전문지 계간 《시조21》이 창간 20주년을 맞았다. 우리 정형시의 미학적 정립과 창신創新과 국제적 확산을 위해 그동안 《시조21》이 기울인 공력이 돌올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 파장은 여전히 현재형으로 첨예하게 작동하고 있다. 《시조21》은 창간 20주년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50인 50색’이라는 코너를 준비했는데, 이 글은 여기 발표된 신작들을 통해 우리 시조미학의 현재성을 살펴보려는 작은 기획이다. 《시조21》 창간 이후에 등단하여 《시조21》에 작품을 발표한 시인들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 목록은 비교적 젊고 의욕적인 차세대 주역들의 성과를 조감鳥瞰해볼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이들 작품이 지닌 특성을 중심으로 하여 최근 우리 시조가 걷고 있는 방향에 대한 부분적 진단도 이루어지리라 기대해본다. 가령 우리는 최근 우리 시조가 활발한 장르 변이 차원에서 정형성을 훼손하거나 내용적으로 의뭉한 난해성을 도입해가는 측면을 목도하곤 하는데 이러한 폐단을 이번 신작들이 어떻게 넘어서고 있는지를 찬찬히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한 분 한 분마다 대표작과 신작을 실었지만 여기서는 불가피하게 몇몇 시인의 신작을 중심으로 논의해보고자 한다.

 

2. 착실하게 존중된 정형성의 기율

최근 시조시단에 문제적으로 대두하고 있는 현상 가운데 하나는, 언뜻 자유시와 외양이나 속성에서 크게 구별되지 않는 작품들이 씌어진다는 사실일 것이다. 물론 이는 현대시조의 다양한 분화 과정을 보여주는 필연적 현상일지도 모른다. 일정한 형식을 오래도록 견지해온 피로도가 있고, 예술이라는 것이 장르적 확장과 변형을 통해 자기 진화를 이루어가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왜 시조인가?”라는 실존적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많은 시조시인들이 형식 제약이라는 굴레에도 불구하고 왜 굳이 시조를 택하는가 하는 존재론적 의문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첨단의 디지털 시대에 이처럼 시조의 존재론을 거듭 묻는 것은 시조에는 시조 아니면 안 되는 어떤 고유한 내질이 존재한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그 점에서 우리는 이번에 발표된 작품들이 정형성의 기율을 착실하게 존중해감을 발견하게 된다. 《시조21》이 어떤 해석안眼으로 시조시단을 충격해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을 살피는 일은 비평적으로 보아도 긴요한 몫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어제의 그 길 따라 꽃은 계속 피는데

새끼 먹이 꽉 물고서 집으로 갈 뿐인데

한 순간 찢어진 날개, 가해자는 없단다

 

유유히 건너왔던 칼바람 긴 얼음골,

역류의 급물살에도 깃 다치지 않았었지

책임 질 자국도 없이 반짝이는 투명벽

 

살금살금 몰려들어 포식하는 들짐승과

함께 날고 싶은 꽃잎들의 위로 앞에

끊어져 모로 누운 길, 경적 소리 태연하다

― 정경화, 「새의 길은 23번 국도에서 끊긴다」

 

복자기나무 층층나무 개나리 덜꿩나무

나뭇가지 쏘아 날려 봄햇살을 후린다

어둑한 시간의 뒤켠

묵은 잠이 스러지면

 

관절의 마디 깊이 그을렸던 고요의 날

저물었던 숨들의 가락진 목덜미엔

꽃그늘 한 뼘쯤 늘려

바람벽도 세워야지

 

팽팽한 실핏줄이 들뭇들뭇 달아오른

버들개지 방천길을 냅다 달리는 사람들

푸드득 날갯짓하며

꽃봉오리 열어야지

― 박지현, 「춘분」

 

정경화 시조는 서정성과 인식론의 균형 있는 결속이 안정감을 준다. 꽃은 “어제의 그 길”을 따라 오늘도 피어나는데 새끼 먹이 물고서 집으로 날아가던 새는 한순간 날개가 찢어지면서 길을 잃는다. 오랫동안 칼바람 긴 얼음골까지 깃 다치지 않고 날아왔던 새의 길이 그만 “반짝이는 투명벽” 앞에서 끊긴 것이다. 보이지 않는 벽에서 끊긴 새의 길은 “살금살금 몰려들어 포식하는 들짐승”과 “날고 싶은 꽃잎들”과 함께 기이한 삶과 죽음의 현장을 만들어낸다. “끊어져 모로 누운 길” 주위로 태연하게 울어대는 경적 소리야말로 방음벽으로 새의 길을 끊어놓은 인간의 우매한 폭력을 은은하게 비판하고 있다. 우리 시대의 한 양상을 우화적으로 짚어내면서 그것을 생태적 차원으로 끌어올린 정경화의 서정과 인식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박지현 시조는 봄날 한복판에 어둑한 시간의 뒤켠에서 피어나는 꽃과 나무와 사람들을 관찰하고 표현한 결실이다. 그 세목은 “복자기나무 층층나무 개나리 덜꿩나무” 같은 꽃과 나무의 군집이거나 “버들개지 방천길을 냅다 달리는 사람들” 같은 이들이다. 시인은 봄햇살을 후리는 자연 앞에서 묵은 잠이 스러지고 저물었던 숨들이 걷히면서 팽팽한 실핏줄이 달아오르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그렇게 날갯짓하며 꽃봉오리를 열려는 의지는 자연의 것이기도 하겠지만, 춘분을 맞아 봄날의 활력을 스스로의 삶에 부여하려는 시인 자신의 정서적 몫이기도 할 것이다. 자수의 부분적 탄력을 통해 정형성의 묵수와 창신을 동시에 구현한 작품이다. 두 편 모두 생명의 옹호가 지극히 아름다운데, 특별히 시의성을 도입하면서 정형성을 완미하게 성취한 것이 시선에 환하게 들어온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콧노래가 넘나드는 숙자네 바자울이

앙바틈한 오르막에 어깨를 내어주던

어스름 마실 가는 길은

언제라도 좋았다

 

은현면 고갯길이 까마득해 보여도

엄마 손만 잡으면 단숨에 넘어섰지

외삼촌 두툼한 손이

기다리던 삼거리

 

가쁘게 넘어서고 뒹굴었던 진흙탕엔

기꺼이 몸을 내준 길의 품이 새롭다

막히면 새 길을 열던

해달별길 한나절

― 정용국, 「길의 위안慰安」

 

명절에 제사에 녹록찮은 지난 세월

시간 위를 걸어온 종가의 맏며느리

변해도 변하지 않는 일상의 의무처럼

 

병일까 구세주일까 세상 뒤흔든 코로나

명절도 안 된다고 가족도 안 된다고

덕분에 고단한 시간 한 번에 날아갔네

― 김선희, 「날아간 걱정」

 

거품 나는 풋 맛이 단맛이 되기까지

내 안에 나를 찾아 쉬지 않고 걸어온 길

뼈 깎는 인고의 시간 차곡차곡 쌓였지

 

살갗이 탈 것 같은 땡볕을 견뎌내며

몰아치는 천둥 번개도 가슴에 묻은 나날

때로는 견딜 수 없어 불면의 밤 보냈지

 

풋 맛을 익히려고 부단히 걸어온 길

무서리 내리는 밤 우연히 알게 되었지

내 몸에 단내 나는 걸, 참 진정한 내 모습

― 이솔희, 「한 알 대추의 독백」

 

정용국 시조는 길 위에서 삶의 위안을 찾아가는 서사적 온축 과정을 담았다. 가령 어스름 마실 가는 길은 “콧노래가 넘나드는 숙자네 바자울”이 어깨를 내어주었기 때문에 삶의 빛나는 순간을 담고 있었고, 양주 은현면 고갯길은 외삼촌의 두툼한 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을 알았기 때문에 엄마 손만 잡고도 단숨에 넘을 수 있었다. 그렇게 생애의 곡절마다 스스로 가쁘게 넘어서고 뒹굴었던 진흙탕처럼, “기꺼이 몸을 내준 길”들은 삶이 막힐 때마다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던 “해달별길 한나절”을 온전히 담고 있었던 셈이다. ‘길’이라는 유동流動의 상징을 통해 끝없이 위안을 받아온 세월을 넉넉하게 함축하고 있는 작품이다. 흐름에 막힘이 없다. 김선희 시조는 종가 맏며느리가 걸어온 세월을 톺아보는 시편이다. 명절에 제사에 녹록찮은 시간들이 어쩌면 “변해도 변하지 않는 일상의 의무처럼” 다가옴을 느끼고 있는 시인은 병인 듯 구세주인 듯 찾아온 감염병이 “고단한 시간”을 한 번에 날려 보냈다고 쓴다. 내면에 쌓였던 걱정이 외부적 요인에 의해 사라진 것이다. 그렇게 ‘날아간 걱정’은, 물론 반어적 의미를 부분적으로 담고 있지만, 역으로 그동안 변하지 않는 의무처럼 강제되어온 며느리로서의 일상에 대하여 스스로에게 던지는 위안을 담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소품이지만 단단한 진정성을 풀어낸 결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솔희 시조는 오랜 시간의 흐름을 형상적으로 담고 있다. 물론 그러한 불면과 인고의 시간을 독백으로 토로하는 화자는 ‘한 알 대추’다. 이러한 의인화의 결과로 화자는 풋 맛이 단맛이 되기까지 그리고 “내 안의 나”를 찾아온 오랜 길을 시간의 등가물로 토로한다. 뼈를 깎는 견딤의 시간은 “몰아치는 천둥 번개도 가슴에 묻은 나날”을 품고 부단히 걸어온 길로 이어져갔다. 결국 화자는 무서리 내리던 밤에 단내 나는 순간을 통해 “참 진정한 내 모습”을 찾게 된다. 그렇게 이 작품은 일종의 성장 서사를 품으며 인고의 시간이 자신을 성숙시켜가게 된 인생론적 진실을 설파하고 있다.

두루 알다시피 시조는 우리 시대에도 연면한 생명력과 영향력과 파생력을 가지면서 그 저변을 확대해가고 있는 현재 진행의 장르다. 견고한 생명력과 폭 넓은 자기 갱신 가능성을 가진 채 우리가 보유한 가장 독자적인 시 양식으로 면면하게 발전해가고 있다. 이는 시조 양식이 우리 민족의 성정性情이나 사유를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특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시조를 지나 현대시조로 존재를 옮겨오면서 시조 양식의 본래적 특성들은 많은 변화를 치렀는데, 그것은 현대시조는 현대인의 복합적인 정서와 인식을 담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정용국과 김선희와 이솔희의 시조는 그러한 현대인의 일상을 잘 담아낸 결실로서, 그 안에는 그들이 오래도록 기다리고 축적해온 시간의 ‘길’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3. 내용적 다양성과 고전적 혜안

최근 우리 시조는 활발한 외관을 띠면서 민족 시형으로서의 위상과 미학을 한층 수준 높게 구축해가고 있다. 시조 시단의 인적 구성이나 매체적 조건도 활력의 정점을 보여주고 있고, 자연스럽게 이러한 흐름은 시조로 하여금 현대성을 개척해가는 양식으로 거듭나게끔 해주었다. 물론 그러한 흐름 가운데서도 시조는 정형의 한계와 가능성을 감안하면서 특유의 균형과 절제의 정형성을 지속적으로 구현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시조 양식의 율격적 구속을 최대한 허물면서 미학적 확장을 꾀하려는 작품들도 적지 않게 씌어지고 있는데, 이번 《시조21》에 발표된 시편들은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키면서 정형성을 의식하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확장과 응축이라는 조심스러운 변형들은 있지만 정형성 자체를 의도적으로 파괴하는 실험적 의도는 보이지 않아 적잖이 안도감을 준다. 그만큼 우리 시조는 정형의 강화와 이완, 그리고 전통적 정서의 재확인과 현대적 감각의 도입 사이에서 심하게 길항하고 있는 셈이다.

 

오늘을 갖자마자 어제를 다 버렸다

저녁이 오기도 전 그마저 또 버렸다

내일을 몹시 탐하는 여전한 중독이다

 

누구나 그럴 거야 너스레를 떨다가도

아무도 없을 거야 나무라며 살아가지

어렵다 하고많은 날 하루를 거두는 일

― 이숙경, 「수국이 세 번 피고 세 번 지는 동안」

 

한 방울 젖을 찾듯 옛 주조장을 찾아간다

 

봄바람 불어와 누룩 섞인 꽃들 피고

 

술 없는, 외로운 봄날은 어둑어둑 소금 피고

 

 

만다라 뿌리 숨은 빈 들길 가는 동안

 

쏟아질 듯 기우뚱 탄식도 엎지르며

 

웃음의 모종을 사러간다 물이 불로 번지도록

 

 

물 빠진 저수지 같은 김빠진 인생이

 

구릉마다 산수유 꽃 취기 일어 피어오르고

 

낮달은 양은 술잔처럼 찌그러져 찾아온다

― 선안영, 「좋은 날」

 

이숙경 시조는 시간예술로서의 본령을 지키면서 그 시간이 결국 어떤 존재 생성의 계기를 품고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수국이 세 번 피고 세 번 지는 동안이니 짧은 시간은 아니다. 시인은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자명한 선형적 시간 속에서 “여전한 중독”으로 어제를 버리고 저녁을 버리고 내일을 탐해간다. 누구나 그럴 것이라지만 “하고많은 날 하루를 거두는 일”을 거두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라는 자각 아래 시인은 일상의 시간 속에서 속절없이 흘러가는 하고많은 날들을 두고 ‘수국’의 개화와 낙화를 세 번이나 배치한다. ‘누구/아무’도 그러한 흐름에서 예외가 아님을 단단한 정격 안에서 에둘러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선안영 시조는 옛 주조장을 찾아가는 상황 속에서 시작된다. 한 방울 젖을 찾듯 가는 마음이 “누룩 섞인 꽃들”과 “어둑어둑 소금 피고” 마는 봄날의 한복판을 보여준다. 그렇게 빈 들길을 가는 동안 시인은 탄식을 버리고 “웃음의 모종”을 사러 간다고 고백한다. 물이 불로 번지는 시간은 작품 제목인 ‘좋은 날’을 감각적으로 환기하면서 비록 “물 빠진 저수지 같은 김빠진 인생”일지라도 “산수유 꽃 취기”처럼 좋은 날로 번져가는 ‘주조장-누룩-술-취기-술잔’의 연쇄가 봄날의 도취와 피안을 순간적으로 느끼게 해주고 있다. 비교적 변격이 자유로운 시조로 좋은 날의 감각적 흔들림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이숙경 시조가 구심적이라면 선안영 시조는 원심적이다. 그러한 율격의 한계와 가능성이 우리 시조시단의 허리를 구성하고 있는 두 여성시인의 작품에서 저마다의 가능성으로 숨쉬고 있는 셈이다.

 

성업 중이던 느티가 폐업을 선언한 뒤

 

외곽으로 떠돌던 낯 두꺼운 먼지들만

 

물 만난 상춘객처럼 왁자하게 붐빈다

 

저 그늘을 누가 깨끗하게 닦을 것인가

 

마을 속 신록이며 늙음의 구중궁궐이던

 

밭에서 돌아오던 엄니가 섬처럼 주저앉던

― 손영희, 「느티나무 정자 2」

 

소리는 방향을 바꿔 우리를 덮쳤다

순식간에 날아간 눈과 입을 찾느라

얼굴은 바닥을 짚고 같은 곳을 맴돌았다

 

다급한 군화발소리, 구석에 내몰린 채

우리가 본 것은 복면에 가려지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흔적 없이 버려졌지

 

찢어진 거울 속에는 타다 만 촛불들

불 꺼진 초를 안고 다시 모인 광장엔

뜨겁게 흐르는 꿈이 불티 되어 떠돈다

― 이송희, 「미얀마의 봄」

 

손영희 시조는 ‘느티나무 정자’를 배경으로 하여 그 안팎으로 쌓여간 시간을 응시한 작품이다. 한때 성업 중이던 느티가 폐업을 선언하자 외곽으로 떠돌던 먼지들만 붐비고 있다. ‘나무/먼지’의 대비 속에서 우리는 느티나무 정자가 한동안 사람들을 불러 모았던 진원지였음을 암시받는다. 이때 시인은 이제 느티나무가 만든 그늘을 누가 깨끗하게 닦을 것인가 하고 묻는다. 그 그늘은 한때 마을 속 누구라도 구중궁궐처럼 깃들이던 곳이고, 밭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섬처럼 주저앉던 안식처가 아니었던가. 손영희는 그러한 그늘의 흔적을 탐사하면서 사라져간 시간들과 함께 어머니의 가없는 노동과 그에 대한 그리움을 한꺼번에 얹고 있다. 이송희 시조는 최근 외신을 통해 우리가 접하는 미얀마 군부 쿠데타 사태를 다루고 있다. 시의적인 의제일 뿐만 아니라 시조가 동시대 현실에 개입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소중한 발화라고 할 수 있다. 순식간에 사라진 이들의 눈과 입과 얼굴이 바닥을 짚고 맴돌 때, 우리는 “다급한 군화발소리”에 흔적 없이 버려진 존재자들 사이에 개입했을 폭력의 강도를 끔찍하게 느낀다. “찢어진 거울”에 비친 “타다 만 촛불들”이 다시 광장에 모여 “뜨겁게 흐르는 꿈”을 불티로 만들어 ‘미얀마의 봄’은 올 수 있을까? 자연스럽게 40년 전 광주의 봄이 오버랩되면서 우리는 그 어떤 폭력도 거절되어야 함을 노래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따라가게 된다. 이처럼 손영희와 이송희 시조는 각각 제재와 어조 면에서 시조 본래의 구심과 원심을 충실하게 구현함으로써 시조의 다양성에 기여하고 있다.

최근 우리는 자유시와 거의 구별하기 힘든, 혹은 시조 양식을 충격적으로 해체하려는 파격의 양식들이 다양하게 목도하고 있다. 물론 이는 시조 양식의 다양한 분기와 자연스런 진화를 보여주는 첨예한 현상일 것이다. 하지만 시조가 창사唱詞로서의 굴레를 벗어나 이제는 문자예술로서의 성격만 남아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별 필연성도 없이 율독적 배려를 형식화한 율격을 함부로 해체하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읽고 있듯이, 이번에 발표된 《시조21》 시편들은 그 내용적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고전적 혜안을 한결같이 견지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4. 현대인의 삶과 사유를 환기하는 새로운 발상과 작법

앞에서도 강조했듯이 정형시와 자유시 사이의 가장 주된 차이는 이른바 율격의 원리에 있다. 예컨대 정형시에는 선험적 율격 원리가 주어져 있다. 그것을 충족하지 않으면 결코 정형시가 될 수 없는 최소한도의 충족 요건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반면 자유시의 경우에는 그 어떤 선험적 원리도 주어져 있지 않고 시를 쓰는 이의 내적 호흡에 따른 자유로움만이 사후적 필연성으로 부여될 뿐이다. 물론 자유시 안에도 자유로운 율격이 있는 것이지, 율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최근 씌어지는 자유시는 줄글로 씌어지는 산문시 양식이 범람하는 데다 최소한의 내적 호흡에 바탕을 둔 운율마저 사라지는 경우가 많아, 율격 훼손의 한 극점을 드러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점에서 우리 시조시인들이 현대시조의 음악성을 확장해가면서 율격의 원리를 구심적으로 성찰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띤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부좌 틀고 앉아 미생전 엄니를 본다

 

양수의 간을 보며 시원을 찾아보니

 

잔잔한 명경수 위에 꽃잎 하나 젖는다

 

 

먼 초원의 꽃향기 품은 촉촉한 물안개

 

살며시 가라앉으며 가부좌 콧등에 맺힌다

 

콧등에 맺힌 이슬로 젖어오는 엄니 앞섶

 

 

가만히 눈을 감고 나를 찾으려 했으나

 

찾고자 한 나는 없고 온통 앞섶 향기

 

느슨히 풀린 마음자락 고쳐매도 한 생각

― 이승현, 「사모곡」

 

손바닥 크기만 한 화면에 박힌 얼굴

 

핏물 밴 흰자위만 거칠게 흔들린다

 

허공만 물고 가는 거리, 비틀대는 저 거리

 

 

스스로 빠져버린 스마트한 덫에 걸려

 

살아서 죽은 그림자 연거푸 밟고 간다

 

점점 더 멀어져가는 사람 사이, 빛 사이

― 김미정, 「스몸비smombie」

 

이 밤도 너를 찾는 이 밤도 너를 찾는

기타 치며 노래하는 키다리 중절모 사내

계룡산 계곡 언저리 기운 한낮 점심상에

 

뻐꾹새 울어 피는 산목련쯤 외로 두고

에움길 휘적여온 가긍한 몸맨두리

사람아, 숟가락 놓고 지갑을 열겠으니

 

삽짝에 귀를 걸친 식솔들의 두레상이

헐거운 다리를 세워 훈김을 펼쳐낼까

아카시 잎사귀 위로 햇살 반짝 부시다

― 서석조, 「사람아, 숟가락 놓고」

 

이승현 시조는 ‘사모곡’이라는 주제가 워낙 새롭게 창작되기 어려운 테마이기 때문에 시인으로서도 조심스러웠을 법하다. 그러나 새로운 이미지로 이 작품은 이승현 버전의 사모곡으로 우뚝할 것이다. 시인은 가부좌 틀고 바라보는 “미생전 엄니”의 모습에서 “양수의 간을 보며 시원을 찾아”간다. 그때 “잔잔한 명경수 위에 꽃잎 하나 젖는” 순간이 얼비친다. 콧등에 맺힌 “먼 초원의 꽃향기 품은 촉촉한 물안개” 이미지가 “이슬로 젖어오는 엄니 앞섶”으로 이어져갈 때, 시인은 눈을 감고 본래면목을 찾으려 했지만 그것은 “찾고자 한 나”가 아니라 “온통 앞섶 향기”였을 뿐이다. 한없이 고쳐매도 한 생각인 ‘사모思母’의 품이 넓고 깊게 다가온다. 김미정 시조는 ‘스몸비smombie’라는 이색적인 제목을 걸었다. 그것은 길을 걸으면서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좀비처럼 걸어가는 ‘스마트폰 좀비’를 축약한 단어라고 한다. 그네들은 손바닥 크기만 한 화면에 스스로의 얼굴을 박고 허공만 물고 거리를 걸어간다. 액정 안에는 “핏물 밴 흰자위만 거칠게” 흔들릴 뿐이다. “스스로 빠져버린 스마트한 덫”이 “살아서 죽은 그림자”가 되어 점점 더 “사람 사이, 빛 사이”를 멀어지게만 한다고 시인은 쓴다. 모든 것이 사물화하고 인간과 인간의 대면 접촉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스몸비가 전해주는 시의성은 어쩌면 우리 시조가 무엇을 해야 할지까지 암시해주는 시선과 생각을 담고 있다 할 것이다. 서석조 시조는 기타 치며 옛 가요를 부르는 “키다리 중절모 사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 사내는 계룡산 계곡 언저리 점심상에서 뻐꾹새 울어 피는 산목련 외로 두고 “에움길 휘적여온 가긍한 몸맨두리”를 보여주고 있다. 그때 시인은 삽짝에 귀를 걸친 식솔들의 두레상에서 얼핏 훈김을 발견하면서, 바로 그 순간 아카시 잎사귀 위로 비추는 눈부신 햇살을 이 캐릭터 위로 부조浮彫해준다. 소박하고 일상적인 한 장면을 통해 ‘사람’이 걸어온 일생을 견고하게 함축하고 있는 이 작품은 서석조 시조가 주변화한 존재자들을 따뜻하게 살피는 세계임을 보여주는 사례로 맞춤하게 다가온다 할 것이다. 이처럼 이승현과 김미정과 서석조의 작품은 우리가 가장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대상들에게 새로운 착상과 해석을 부여하면서 자신만의 진경進境을 이루어가고 있다.

 

상생을 협의해 볼 선택권도 전략도 없이

꺾이면 죽는다며 가시 꼿꼿 세우고

철조망 잔뜩 붉히며 장미 꽃잎 키우는 중

 

준비는 빈틈없이 행동은 신속하게

겨울을 견디고 온 햇살 두께 가늠하며

속엣말 단단히 쟁여 눈맞춤을 준비하지

 

이웃한 저쪽 담장 꾹 다문 출입문에

바람조차 휴업인가 공고문이 걸려 있고

새소리 간간히 와서 빈 가지만 쪼아볼 뿐

 

가지를 쳐낸다는 발 없는 말 무성하고

뿌리 내린 좁은 땅에 콘크리트 쏟아져도

까짓거, 어깨를 겯고 꽃불 활활 피워내지

― 심석정, 「공단, 4월」

 

똬리 튼 홍목단이 향을 물고 앉았는데

못 본 척 먼지바람 먼 산만 휘감는가

꽃 피어 봄 한철이면 꽃이 져도 또 한철

 

입술 짓무르는 빌미라도 잡아챈 듯

물벼락을 맞을망정 주저하지 않았구나

그런 날 올 줄 알았지 삼동 같은 오뉴월

 

향기롭게 익어 터진 슬픔도 길이라면

헌 신발 끌고라도 지는 꽃을 따라가랴

견디다 견디다 못한 생몸살의 끝물에

― 한분옥, 「끝물」

 

기포 많은 모습으로 바닷가 짐 부린다

 

거듭거듭 지우면서 채워지는 풍경들

 

밀려온 파도소리에 온몸이 노곤하다

 

흘러간 시간들이 부표처럼 떠다니고

 

액자에 갇혀버린 한 무리 잿빛 갈매기

 

물결은 거품을 품고 먼 바다로 향한다

― 문수영, 「바다 이력서·2」

 

심석정 시조는 4월에 피어나는 꽃들의 모습을 ‘공단’이라는 비유적 공간을 택하여 담아내고 있다. 시인의 정교한 시선에 의해 ‘장미’는 어떤 선택권이나 전략도 없이 가시를 세운 채 철조망에 꽃잎을 피워내고 있을 뿐이다.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온 햇살 두께를 가늠해보면서 장미는 속엣말과 눈맞춤을 준비해온 것이다. 바람이 휴업을 하고 새소리는 빈 가지만 쪼아볼 뿐이지만, 장미는 가지를 쳐낸다는 “발 없는 말”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어깨를 겯고 꽃불 활활 피워”내려는 의지로 충일하기만 하다. ‘공단’의 외관을 구성하는 세목을 통해 장미가 온갖 난관을 뚫고 피어나는 신생의 장면을 피워 올리는 시인의 관찰과 표현이 실감을 더한다. 한분옥 시조는 섬세한 감각과 사유로 세상의 보편적 이법理法을 꾸려낸 가편이다. 가령 시인은 똬리 튼 홍목단이 향을 품은 장면과 먼지바람이 먼 산만 휘감는 장면을 대조시킨다. 꽃이 피는 화려함과 먼지만 이는 황량함이 세상을 이루는 이법의 양면성임을 노래한 것이다. 그렇게 “꽃 피어 봄 한철이면 꽃이 져도 또 한철”인 셈이다. 나아가 시인은 주저하지 않고 찾아온 “삼동 같은 오뉴월”에 “향기롭게 익어 터진 슬픔”이나 “헌 신발 끌고라도 지는 꽃”이 모두 우리의 ‘길’이고 따라가야 할 어떤 “견디다 견디다 못한 생몸살의 끝물”임을 노래한다. ‘끝물’이라는 말에서 새로운 삶의 시작이 움트고 있는 신생 지향의 작품이라 할 것이다. 문수영 시조는 ‘바다 이력서’라는 연작 가운데 하나이다. 바다는 마치 누군가의 이력을 담고 있는 것처럼 다가온다. 시인은 “거듭거듭 지우면서 채워지는 풍경들”을 “흘러간 시간들이 부표처럼” 떠다니며 만들어낸 순간들을 유추해본다. 액자에 갇혀버린 한 무리 잿빛 갈매기들이야말로 노곤하고 기포 많은 모습으로 바닷가 어딘가에 짐을 부리던 누군가의 실존을 환기하는 매개물일 것이다. 물결은 거품을 품고 먼 바다로 향하듯이, 흘러간 시간처럼 앞으로 흘러갈 시간이 시인을 어디론가 떠메고 이력서를 채워갈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바다라는 광활한 표상과 어딘가로 비상하려는 시인의 의지가 조우하면서 생겨난 이미지일 것이다. 이처럼 심석정과 한분옥과 문수영의 시조는 소재나 사유방식을 구투로 재현하지 않고 새로운 발상과 작법으로 현대인의 삶과 사유를 환기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 또한 시조의 현대성 제고에 큰 도움이 되는 경우일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이번 《시조21》에 실린 시인들의 일부 작품을 통해 우리 시조의 내용적 다양성과 형식적 견고함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들의 작품은 해체시형을 과도하게 시조 안에 도입하는 지향에 대해 항체를 형성하며, 정형의 울타리를 벗어나 시조의 정체성을 혼란케 하는 일을 형상적으로 비판하는 촉수를 드리우고 있었다. 우리는 시조의 고유 자질인 정형성이 시상詩想을 제한하는 불필요한 장애 요인이 아니라 그러한 형식을 통해서만 성취 가능한 불가피한 ‘존재의 집’임을 여기서 강조하게 된다. 이러한 정형의 울타리를 통해 우리는 큰 스케일의 상상력으로부터 미세한 마음의 움직임까지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장중한 서사와 함께 ‘충만한 현재형’으로 구축되는 순간성을 경험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한 상상력과 정서가 정형 안에 잘 갈무리됨으로써 우리는 잘 짜인 고전적 감각과 인식을 경험할 수 있게 되고, 인간의 원초적이고 미분화된 정서와 통합적인 삶의 이치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 점에서 이번에 신작을 발표한 차세대 주역들에 대한 기대를 해봄 직하다고 생각된다. 《시조21》이 그러한 성과를 앞으로도 적극 담아내면서, 창간 20주년을 훌쩍 넘어서, 우리 시조의 생생한 현장이 되어주기를 거듭 소망해본다.

 

 

 

유성호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저서로 『정격正格과 역진逆進의 정형 미학』 등이 있음. 외솔시조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