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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

2023.02.24 - 삶의 퇴행*

by 담채淡彩 2023. 2. 23.

2023.02.24  - 삶의 퇴행

 
 
지난 밤 꿈길에서 비정기적으로 방문하신
아버지를 아주 오랜만에 보었다
바로 그날
어머니를 케어하는 요양보호사의 전화를 받았다
97세 노모의 환청과 환각이 갈수록 심각해진다는 내용이다
정신이 박약한 이웃집 노총각이 날마다 담을 넘어와
소금을 퍼가고 있다는 것과
노모가 안쓰러워 자주 놀러와 주시는 이웃집 아줌마가
단 한 번도 남에게 열어보인 적 없는 문갑을 열고
돈을 훔쳐갔다고 난리가 났다는 얘기다

큰일이다

천 년 전 주법을 기억하는 박물관의 악기처럼
칼금 무늬로 음각되어 있던 노모의 기억들은
다 어디로 떨어져나가
어디에서 욱신거리고 있는지
요양보호사는 치매증상 같다 하고
나는 아직도 일기를 쓸 줄 아는 어머니의 맑은 정신이 잠깐
한 눈을 팔고 있었다고 애기했다
한 평생 당신의 몸이 받아 적은 것들이
여러 모습으로 부서져 안개 속을 떠돌고 있었을 것이다
 
바로 귀향하여
노모와 마주앉아 참 많은 얘기들을 나누고
밤에는 어머니 침대 바로 밑에 내 자리를 펴고 누워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다음 날,
문갑을 열어 지갑을 확인해보니 불과 2주 전 새로 산
파란 지갑에 70만원을 넣어주고  왔는데 10만원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냉장고가 비워지기 전 정기적으로 여동생이 내려가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반찬과 과일들을 
꽉꽉 채워주는 까닭으로 병원비 외 지출이 필요 없었을
2주간이었다
병원에 간 일이 없는데도 2주 전 채우준 돈이 없으니
당신이 일부러 버린 것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의 손을
탄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도 차마 요양보호사에게 이 말을 전할 수가 없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어머니는 통장에서 인출한 현금
100만 원을 허리주머니에 차고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할 것이라고 했다
당신의 정신 세계는 60년대 이전 그 불편했던 시절로
퇴행하고 남은 삶은 다만 상징적이다 
 
 
2023.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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