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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作詩219

가락 가락 /담채 "고장 난 냉장고 삽니다아 피아노 삽니다 에어컨 세탁기 삽니다~아~~~ 고장 난 가전제품 삽니다~아---" 올라갔다 내려가고 내려갔다 올라가며 다시 이어지는 저 고달픈 가락, 잠시 끊어졌다가 "고장 난 물건 삽니다~아---" 이런 이런 나를 사겠다는 소리 아닌가 알고 보니 고장 난 가전제품은 헐값 중에도 헐값이란다 70년 넘게 구부러진 내 生 고장 난 허리 어깨 무릎, 소금꽃 하얗게 흘러간 등짝 모두 팔아버리고 싶은, 하늘이 샘물같이 맑은 날 불현듯 고물장수 확성기 소리가 나를 끌고 간다 골목으로 골목으로 막다른 골목으로 나를 끌고 간다 한 생을 소처럼 걸어온 나를 지금 내다 팔면 아주, 아주 헐값일 것이다 2024. 3. 21.
구두 한 켤레 구두 한 켤레 /담채 아파트 분리수거함 옆 누군가 놓고 간 낡은 구두 한 켤레 항해를 끝낸 폐선처럼 문득 멈춰있다 주인은 가고 남겨진 또 하나의 행로 까마득 흐르는 먼 길을 걸어온 밑창에선 흙냄새가 난다 날마다 밑바닥을 치며 여기까지 오기까지 얼마나 많이 걸었을까 생이 끝나는 순간에야 놓아주었을 길과 길 아궁이 속 온기 같이 한 웅큼 남겨져 있다 이제, 속절없이 밀려난 유배객流刑客처럼 시절을 잃고 주름만 소슬하거니 노고는 길었고 길은 깊었으리라 2024. 3. 12.
노년의 驛舍 노년의 驛舍/담채 불과 수년 전만 해도 나는 老人이 따로 있는 줄 알았다 마트에 가도 식당에 가도 어르신, 아버님으로 불리는 나는 꼼짝없이 노인이 되었다 세월은 굳이 우리 人間만을 편애하지 않는다 긴 감정노동*의 시절을 지나 지금 내가 당도한 이 驛舍 아직도 가슴이 뛴다는 건 실로 고마운 일이다 길은 막힌 적이 없으므로 오늘도 나는 흐른다 * 실제적 감정을 속이고 전시적 감정으로 타인을 상대해야 하는 노동 2024. 3. 11.
동행同行 동행同行/담채 갯벌 밭에 와불처럼 누워있는 작은 목선 위에 제비가 집을 짓는다 좁은 조타실 뒷벽, 횡행한 바람 속에 만삭의 제비가 집을 짓는다 어느 마을에서 집을 짓다 말고 황급히 쫓겨온 걸까 저 막막한 곳에 큰 꽃을 피우려는 몸부림이 처연하다 저 가여운 미물에게는 이곳에 혈연도 지연도 없으리라 출항을 접은 어부가 집으로 돌아와 둥지가 완성되기를 기다리며 헝클어진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몇 번이고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바다 쪽 봄이 새롭다 어부는 새로 생긴 인연과 나란히 몇 번의 발자국을 파도 위에 찍게 될 것이다 이 봄 지나고 어디 먼 바다로부터 숭어가 돌아오는 철까지 두 개의 외로움이 저마다의 고달픔을 마주보며 만경창파, 함께 노 저어 갈 것이다 2024. 3. 10.
인생 인생/담채 굴곡진 삶의 길 눈물 반, 웃음 반 힘겹게 올랐거늘 내려가는 길 왜 이리 멀미가 나나 2024. 3. 7.
다시 3월 다시 3월/담채 연약한 햇살을 지우며 비는 내리고 몽환처럼 안개 피어오른다 이 한 치 오차 없는 계절의 몸짓 신명이 난 나무들은 성장을 위하여 분주하다 모성 같은 본능, 나무와 풀들은 얼어붙은 지구의 피복 아래서 겨울 동안 내통을 했다 지난 가을 내가 본 들꽃의 뿌리들은 엄동을 지나며 무사했을까 소소리바람이 가장 어려운 각도로 오후의 능선을 달려간다 그 사이에 내 기다림이 끼어있다 2024. 3.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