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自作詩219

거미줄 거미줄/담채 배고픈 거미는 그물을 짤 때 죽음에 쓸 밑줄마저 뽑아 쓴다 오솔길, 나무와 풀잎 사이 낯선 거미줄 고추잠자리 하나 줄에 걸려 파닥인다 날개가 없는 거미가 날개 있는 것들을 포획한다 세상에는 투명한 함정들이 곳곳에서 우리를 유혹한다 2024. 2. 22.
청년의 눈물 청년의 눈물/담채 해마다 수조 원의 國稅를 구체적으로 작살내는 xx공기업 2년 전 행정학을 전공한 청년이 비정규직으로 입사 함께 일을 했다 게으른 직원 몇 몫의 일을 해내며 그가 최선을 다 한 2년, 그는 2년 이상 고용이 불가한 "비정규직 보호법"에 따라 재고용이 불가해졌다 청년의 어머니는 날마다 새벽기도에 나가 고용이 승계되기를 빌고 있었음에도 청년은 결국 울면서 직장을 떠났다 나는 자식 같은 청년을 데리고 술을 마셨다 고용안정을 약속한 정치권은 이 법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여야가 몇 년째 기싸움만 하고 있다 그가 떠나고 행정학을 전공한 또 한 명의 청년이 그 자리를 메웠다 청년은 열심히 근무했고 다시 계약기간이 끝나가고 있다 며칠 후면 으서지도록 껴안고 싶었을 직장을 말없이 떠나게 될 것이다 청년은.. 2024. 2. 16.
따질 수 없는 것들 따질 수 없는 것들/담채 어린 시절 여자 짝꿍 주려고 풀꽃 모가지 댕강댕강 잘랐듯이 젊은 엄마가 과수원 품팔이 갔다가 새끼 먹이려고 사과 몇 알 치마폭에 숨겼듯이 긴 노역으로 허리 꺾인 家長이 집으로 돌아가다 길바닥에 떨어진 지폐 한 장을 슬쩍 챙겼듯이 세상에는 묻지 못할 죄들도 많은 것이다 세월이 간다/담채 겨울이 느리게 간다 겨울비에 가랑잎은 길을 재촉하지만 그 둔덕 사이로 한껏 희망처럼 물오르고 있는 쑥풀들, 하나의 가슴으로 맞고 보내는 이 겨울이 쓸쓸하다 할머니의 세월을 내가 믿지 못하였듯이 내 아버지의 세월을 조금밖에 믿지 못하였듯이 남아있는 어머니의 세월과 너와 나의 세월이 간다 바람은 변심하여 햇살을 간지르고 대지는 또 한 차례 순환을 준비한다 무반주 첼로를 들으니 코끝에 저수지가 생기는 기.. 2024. 2. 7.
발견 발견/담채 무덤 속에서 편지가 발견되었다 망자*의 가슴에 고이 얹혀있었다 편지는 사백 년이 넘는 동안 절절한 그리움을 간직한 채 굳게 침묵하고 있었다 '당신이 나에게 이르기를 머리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 나를 두고 먼저 가시옵니까' 한 자 한 자마다 수없이 퍼 올린 눈물의 무늬가 얼룩져 있었다 유복자를 두고 젊은 지아비가 떠난 후 여인은 자지도 먹지도 않았다고 전해졌다 몸보다 무거운 그리움이 물구나무서는 밤이면 달빛 틈 사이 삼베옷 스치는 소리 바다보다 깊었으리라 아비의 얼굴을 모르는 유복자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어미의 젖을 빨면서 제 아비를 닮아갔을 것이다 풍화암 절리같이 군데군데 금이 가고 누렇게 변색된 편지는 흙으로 스미는 물기를 스스로 삼켜 눅눅하게 젖어있었다 무덤 속에는 이미 죽.. 2024. 2. 3.
나그네와 나무 나그네와 나무/담채 이 나무는 먼 길을 걸어온 나그네가 잠깐 쉬었다 가는 자리 그늘을 깔아놓고 행려의 땀방울을 식혀준다 헤아릴 수 없는 순례의 길목이 되면서 나그네가 내려놓는 들뜬 마음이나 고단한 한숨 소리로 강 건너 저쪽이 술렁거린다 동이 트고 땅거미 져도 활짝 열린 나무의 창문 맞아들이고 떠나보낸 나그네의 수만큼 나무는 전설로 그득해졌지만 잎을 틔워 초록을 펴고 시드는 잎차례로 낙엽까지 가보는 것이 나무의 유일한 본업이였다 언제나처럼 굴곡 겹친 길들을 헤아리며 지친 듯 쓰러질 듯 한 사람이 멀리서 왔다 딱 하루만 폈다 지는 꽃의 넋과 만나려고 선연하게 둘러앉는 두레의 그늘, 석양이 지고 있다 오늘의 나그네는 홀로 앉아 고즈넉하고 나무 또한 그가 버리고 갈 길에는 무심하지만 아직 나그네의 계절은 끝나지.. 2024. 1. 31.
빈손 빈손/담채 민달팽이 하나 일보 일배 가다가 가다가 이것도 무겁다 달랑, 몸 하나 들러갈 집마저 버리고 바닥을 향하여 머리를 조아리며 멀고 낯선 길을 숙독하고 있다 2024.01.26 note 무소유에 대해 제대로 해석도 하지 못하면서 덥석 받아들인다는 건 아직 그릇이 준비되지 않은 우리로서는 일면 난감한 일이기도 하다. 이 지구상의 살아있는 모든 대상은 무소유의 공간에 들 때 비로소 삶의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 2024. 1.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