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상 가다/
아들은 장가가고
딸은 시집가니
좁은 방에 읽다 만 책들만 가득하다.
두 자식에게 전문서적이라도 가져가라 했더니 그냥 다 내다 버리라고 한다.
딸은 대학시절 화장 한 번 데이트 한 번 못 해보고 사법시험 준비를 했고
아들은 전자공학을 전공하여 전문서적만도 꽤 많은 양인데 그 많은 걸 다
버리라고 하는 말에,
내가 공부할 때 귀한 식량을 덜어 비싼 책을 사주셨던 어머니 생각이 났다.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내가 사들인 문학서적들도 적지 않았다.
나는 승용차로 이 책들을 싣고 세 차례나 고물상을 들락거렸다.
기어코 쌀알이 되지 못한 수많은 활자들을 고물상에 퍼다 버렸다.
폐지 값 66,000원을 받아 쥐고 허전함을 주체하지 못할 때 하늘을 올려다보니
부연 미세먼지가 시야를 가렸다.
고물상에서 돌아와 텅 빈 방 안에 홀로 앉았다.
꿈의 심지를 한껏 돋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쌀알처럼 흩어지고
버려진 책들이 있던 자리에 직사각형의 적막이
칸칸이 고여 들기 시작했다.
인생을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느 날 문득
내가 책을 내다 버린 고물상에 들러 이 책들을 가져갔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그림처럼 풀잎처럼 다만 있기 때문에 있을 뿐인 그 사람들이
고물상 한쪽에 쌓여 피륙으로 바래져갈 책들을 한 장 한 장
천천히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202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