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생각함/담채
헛도는 속도로 하루가 간다.
다시 온 3월,
문득 문득 세월을 붙잡고 멈춰보는 날들이 잦아졌다.
이 우울한 도시에 또 한 번의 겨울이 왔다가 가고
사방에 지천인 나무와 풀은 성장을 위하여 오늘도 분주하다.
가고 오는 것들의 비틀거리는 걸음,
한 몸에 공존하는 생명과 비생명의 팽팽한 이 대결,
우리는 무심으로 돌아가는 낙엽 한 잎의 행로조차 다 읽을 수 없으므로
까닭 없는 우울과 다시 관계를 맺는다.
서시처럼 왔다가 세월 밖으로 떠나는 내 나이가 이제는 참 긴 소리를 낸다.
점점 작아지는 내 자리는 우주의 질서이며
나는 아무 것도 가져갈 것 없는 영혼이다.
눈부신 황혼 속으로
석양이 지고 있다
사는 일이 내 의지의 너머에 있으니
나이를 읽는 자세는
누군가의 영혼을 대하듯 조용히 환대해 주는 것
사는 동안
나를 스쳐간 고독과 슬픔과
한 순간의 꿈이 모여
나이가 되었다는 게 이제는 아프지 않다
저기, 한 철을 피고 진 풀꽃들도 다 한 生의 길이었으니
이제 마른 잎 한 장으로 울어도 그만이겠다
더할 수도 없고
뺄 수도 없는
내 안에 수직으로 쌓여진 시간의 돌탑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상실이 아니라
人生 이상의 눈부신 높이에서 나를 데려가는
거룩한 행보이다
세상은 둥근 것 같으면서도 그 중심은 쓸쓸한 것.
사는 일이 내 의지의 너머에 있으니 나이를 읽는 자세는 누군가의
靈魂을 대하듯 조용히 환대해주는 것.
나이란 더할 수도 없고 뺄 수도 없고
내 안에 수직으로 쌓여진 時間의 흔적이다.
그러므로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상실이 아니라 人生 이상의 눈부신 착지에 당도하는 길일 터.
생이란 너무 힘든 길이거나 끝까지 가보아도 무지개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그 길을 가며 불가항력 나이를 먹는다.
그러나 '인간은 돼지가 아니어서 불행하다'는 이상李箱의 말처럼 누구 할 것 없이
사는 내내 머리가 아프기 마련이고 나이를 먹어야 하고 生老病死의 순환을 거친다.
지상에 남아있는 것은 영원이 아니다.
우리는 말로만 세운 지상천국에서 사랑을 실험하고
마침내 빈손으로 임종의 시간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