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길 위에서

나이를 생각함

by 담채淡彩 2024. 3. 7.

 

나이를 생각함/담채

 

헛도는 속도로 하루가 간다.

다시 온 3월,

문득 문득 세월을 붙잡고 멈춰보는 날들이 잦아졌다.

이 우울한 도시에 또 한 번의 겨울이 왔다가 가고

사방에 지천인 나무와 풀은 성장을 위하여 오늘도 분주하다.

 

가고 오는 것들의 비틀거리는 걸음,

한 몸에 공존하는 생명과 비생명의 팽팽한 이 대결,

우리는 무심으로 돌아가는 낙엽 한 잎의 행로조차 다 읽을 수 없으므로

까닭 없는 우울과  다시 관계를 맺는다.

 

서시처럼 왔다가 세월 밖으로 떠나는 내 나이가 이제는 참 긴 소리를 낸다.

점점 작아지는 내 자리는 우주의 질서이며

나는 아무 것도 가져갈 것 없는 영혼이다.

 

눈부신 황혼 속으로

석양이 지고 있다

 

사는 일이 내 의지의 너머에 있으니

나이를 읽는 자세는

누군가의 영혼을 대하듯 조용히 환대해 주는 것

 

사는 동안

나를 스쳐간 고독과 슬픔과

한 순간의 꿈이 모여

나이가 되었다는 게 이제는 아프지 않다

 

저기, 한 철을 피고 진 풀꽃들도 다 한 生의 길이었으니

이제 마른 잎 한 장으로 울어도 그만이겠다

 

더할 수도 없고

뺄 수도 없는

내 안에 수직으로 쌓여진 시간의 돌탑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상실이 아니라

人生 이상의 눈부신 높이에서 나를 데려가는

거룩한 행보이다

 

​세상은 둥근 것 같으면서도 그 중심은 쓸쓸한 것.

사는 일이 내 의지의 너머에 있으니 나이를 읽는 자세는 누군가의

靈魂을 대하듯 조용히 환대해주는 것.

 

나이란 더할 수도 없고 뺄 수도 없고

내 안에 수직으로 쌓여진 時間의 흔적이다.

그러므로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상실이 아니라 人生 이상의 눈부신 착지에 당도하는 길일 터.

 

생이란 너무 힘든 길이거나 끝까지 가보아도 무지개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그 길을 가며 불가항력 나이를 먹는다.

그러나 '인간은 돼지가 아니어서 불행하다'는 이상李箱의 말처럼 누구 할 것 없이

사는 내내 머리가 아프기 마련이고 나이를 먹어야 하고 生老病死의 순환을 거친다.

 

지상에 남아있는 것은 영원이 아니다.

우리는 말로만 세운 지상천국에서 사랑을 실험하고

마침내 빈손으로 임종의 시간을 맞는다.

 

 

'길 위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물상 가다  (6) 2024.03.15
낙타 詩를 읽다가  (4) 2024.03.10
老年日記 70 - 근황  (2) 2024.03.05
청춘이란 말  (2) 2024.03.01
견딤에 대하여  (8) 2024.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