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40 - 나이를 읽다
벼이삭을 바라보며/담채
나도 저렇게 익어갈 수 있는가
여물수록 고개를 숙이는
저물어가는 나에게 말씀을 주시는
무릎을 향하여 고개를 숙인 저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아늑한 胎兒의 자세
나도 저렇게 익어
사람이 걸어가는 길 위에
씨앗으로 뿌려질 수 있기를
- 졸시 중에서
세상은 둥근 것 같으면서도 그 중심은 대체로 쓸쓸한 것.
사는 일이 내 의지의 너머에 있으니 나이를 읽는 자세는 누군가의
靈魂을 대하듯 조용히 환대해주는 것.
나이란 더할 수도 없고 뺄 수도 없고
그저, 내 안에 수직으로 쌓여진 時間의 흔적이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상실이 아니라 人生 이상의 눈부신 착지에 당도하는 길일 터
저기 천년을 피고 진 풀꽃들도 다 한 生의 길이었으니
나는, 마른 잎 한 장으로 울어도 그만이리라.
우리는 생이란 너무 힘든 길이거나 끝까지 가보아도 무지개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길을 가며
불가항력 나이를 먹는다.
그러나 인간은 돼지가 아니어서 불행하다는 이상李箱의 말처럼 누구 할 것 없이 사는 내내 머리가
아프기 마련이고 나이를 먹어야 하고 生老病死의 순환을 거쳐야 한다.
지상에 남아있는 것은 永遠이 아니다.
우리는 말로만 세운 지상천국에서 사랑을 실험하고
마침내 임종의 시간을 맞는다.
'길 위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2.07.21 - 이번 여름* (0) | 2022.07.23 |
---|---|
길 위에서 37 - 무제無題* (0) | 2022.07.23 |
길 위에서 28 - 해후邂逅* (0) | 2022.07.23 |
길 위에서 26 - 불면* (0) | 2022.07.23 |
길 위에서 19 - 아들과 딸* (0) | 2022.0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