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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비탈

by 담채淡彩 2024. 7. 16.

비탈/담채

 
‘비탈...’
긴 골목길이 어스름 속으로
강물처럼 흘러가는 저녁
왜 이 말이 뜬금없이 떠올랐는지
그 착란 속으로 오랫동안 노를 저어
물살의 중심으로 나아갔다
강물은 금세 흐름을 바꿔 길을 지우고
어느덧 나도 강물의 소용돌이 안쪽으로 떠밀려
비탈에 서 있다  
 
복음서에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가 있다
어떤 것은 길가에 떨어져 새들이 쪼아먹고
어떤 것은 돌밭에 떨어져 갈증에 시달리고
또 어떤 것은 강물 속으로 떨어져 흘러갔다
그러나 어떤 것은 비옥한 대지 위에 떨어져
열 배, 백 배의
잎과 열매를 맺었다
운명의 장난이 없다라고
말할 수 없는 일생
 

‘비탈’이란 밑으로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서 버티거나

아니면 기를 쓰고 정상으로 올라가야 하는 그런
지점이다

저문 생을 돌이키듯 한 노파가

길가에 버려진 폐지를 가득 실은 손수레를 끌고
비탈길을 오른다
빈 종이박스처럼 납작하게 접힌 몸이 
핏줄마다 불을 일궈 

한 발 한 발 가파른 생을 끌고 가는 한 노파 

마른피 같은 노을이 앙상한 기역자 허리를
힘껏 비춰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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