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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서울살이 1

by 담채淡彩 2020. 7. 1.

서울살이 1 - 移住

 

정년퇴직 후
西海에서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
평생 살아온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왔다
나는 산으로 간 한 마리 바닷게였다
회색의 도심에서
망연한 풍경을 그리워하며
날마다 바다를 끌어다 덮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들판에서 흔들리고 싶었다

 

 

2013.12.03

 

여기, 서울살이로 이름 지어진 글들은 2012년 안면도에서 서울로 
거주를 옮긴  뒤 서울에서 쓴 글들이다.
때때로 고향바다가 그리웁고 남겨두고 온 것들이 그리워질 때마다 마음
가는대로 써내려갔다.


서울살이 2 - 訃告


단비 내리는 아침이다
한 동안 고락했던 직장동료의 부고를 받다
70년대 초 종로구청에 근무하다가 박봉의 불만으로
공기업에 재취업한 동료다
매사에 얼마나 반듯한지 육사생도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그가 정치인이 되었더라면 단 한 번도 남의 것에 손을 안 댄
기념물이 됐을 것이다
참 바른 사람이 갔다
멀리로 갔다

故 이휸희 님의 명복을 빌며...

 

2013.06.20


서울살이 3 - 섬


온전한 시골 사람이
하루아침에 도시 사람이 되었다
지루하지 않았던 섬 생활이
떠나온 섬을 금방 그리워지게 한다
습관적으로 여름 태풍 하나가 지나가고
열대야가 기승인 밤
다시 섬이 그리운 나는
목마른 영혼을 데리고 고원을 떠도는
유목의 전생이다
빗금의 상처를 내며 떠나온 섬은
두고 온 바다를 마르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의 거처에서는
무엇들이 나와 同行하게 될까

 

2013.08.20.

 

서울살이4  - 길/담채

 

모든 길이 걸어 들어간 바닷가

내 고향은 바닷가

물결에 몸을 맡긴 채 발을 씻는다

넘어온 수많은 들과 산을 물 위에 띄워 보내며

꽃잎처럼 하나 둘

또한 마음의 길까지도

한 번도 버린 적 없는 바다의 밑바닥에 묻는다

가슴 속의 물소리를

울부짖는 파도를 

혹등고래가 허공을 유영하듯

지느러미를 펄럭인다

 

2013.10.30

 


서울 살이 4 - 나팔꽃


견뎌야 할 것들이 많은 세상인데도
아파트 울타리에 해마다 나팔꽃 핀다
아름다움만으로는 모자라
저토록 많은 씨앗들을 품고
세상 모르고 바람 속을 간다

소소한 풀꽃 하나에도
불멸의 靈魂오고 간다

 

2015.08.15


서울살이 5 - 명함을 새기다


이 나이에도 새로 닿는 인연이 있다
간혹 명함 한 장 달라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명함이 없다
직장을 떠난 후 백수인 내가
누구인지 궁금해 하는 인연을 위하여
최소한의 예의를 위하여
명함을 새겼다

 

“010-8728-**** 홍길동”

 

거죽만 진지한 나의 여백에
바람소리 심연할 것이다

 

2015.09.18


서울살이 6 -故鄕


천리 밖 물살에 정강이가 젖는다
母港으로 가는 길은 천파만파
두고 온 물소리 아득하다
물머리 돌다가 종횡으로 쓸려나간 시간들
밤늦도록 불어와 별자리가 휜다

당산 뿌리 옆
아버지 산소에는
지금쯤 잔 소나무 한겨울로 기울텐데
사랑에 이유 없듯
피 흘리며 닿고 싶다

 

2016.06.12

 

서울살이 7 -


외로움이 뭉쳐져서
화석처럼 굳어져서
더 이상  흘러가지 못하는
외마디 비명 같은
이름,

사실, 人間은 너무 외롭다

2016.12.21


서울살이 8 - 부슬비오는 날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술 생각 몰고 오네
사람이 많이 그리운 날
내 생애가 적막했다는 것을 알고
조용히 출렁여줄 사람과
술 한 잔 나누고 싶네
천천히 다섯 잔의 소주를 비울 때
외로움 같은 거 묻지 않고
눈부처를 새겨주는 사람과,

오늘은 7월 초열흘
나무들은 작심한 듯 무성하고
꽃들은 사명을 다하여 씨방을 앉히는 데
취하도록 마셔도 울지 않는 여자와
저물도록 몸 버리며
술 한잔 나누고 싶네

 

간간이 외로운 척하면서

투명한 술잔 속에 나를 띄워놓고 

 

 

2017.07.18

* 나는 또 빈 잔을 채운다. 
  결국 세상의 모든 낭떠러지는 살고 싶은 욕망으로 귀가하는
  또 하나의 門이다.

 


서울살이 9 - 바다가 그리운 날에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곳,
떠나온 고향은 언제나 적절한 거리에서 多情하다
날마다 기록을 갱신하는 열대야를 지나며
눈부신 햇살, 코발트색 물결을 그리워하다
바다를 끌어다 덮는다
태어나 한 곳에만 머무는 고독한 소나무가 그리워진다 

창백한 도시의 하늘에 보름달이 뜰 때마다
짝짓기를 위하여 천 리를 헤엄쳐가는 물고기들이
꿈속에 나타났다.
이 지구상의 태초의 생명이 물에서 온 것처럼
태초의 그리움이 바다에서 온 것임을
나는 믿는다

 

2018.07.14

 

서울살이 10 - 바다, 그 황홀한 독毒


아침에 거울을 들여다보니
턱수염이 부쩍 자라있다
이건 日月이 흘러간다는 것이며
나는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뜻이다
나는 바다에서 태어났으므로 바다로 돌아가야 하느니

두 눈 씻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나와
나를 내려다보는 서쪽 하늘이
하나로 일치하는 타관에서
모든 산 것들의 사무침이 하늘까지를 적막하게 할 때
비틀걸음으로 걸어서 걸어서

내 뼈를 가장 가파른 높이에 올려놓은
기미 많은 가족들의 얼굴들 옆에서
靈과 肉이 따로따로 나누어져
사랑과 이별과 작은 눈물 한 방울에까지
소금물 드나들어
마침내 점 하나가 되는
아, 내 사랑 安眠島여

 

 

2019.07

 

 

서울살이 11 末水會/담채

 
초등학교 동창 넷이서 만났는데
적어도 한 달에 한번은 정기적으로 만나야 하지 않느냐고 異口同聲이다
모두 정년을 하고 나처럼 소슬한 모양이다
우리는 배를 타지 않고는 뭍으로 나갈 수 없었던 시절에
섬마을에서 가난한 유년을 보냈다
백자의 비색 같은 그 아득한 연원을 찾아서
한 달에 한번 종로에 모여 소주를 마신다
세월 뒤에 남는 것이 그리움뿐이어서
우리는 자꾸만 더 외로워지는 것이다

2012.02

 한 사람은 고등학교 교장을 또 한 사람은 모 신문사와 방송국 사장을 또 한 사람은 지금도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는 슬픈 도시의 틈새에서 착한 세월을 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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