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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作詩

성경과 담배와 중년의 여자*

by 담채淡彩 2023. 11. 19.

 

성경과 담배와 중년의 여자/담채

 
비둘기가 내려 앉고 있었다  
군데군데 마른 갈대꽃 하얗게 펄럭이는 우이천변*
깡마른 중년 여자가 홀로 벤치에 앉아
성경책을 읽고 있다
그녀는 성경에 눈을 박은 채 담배를 물고 있다
먼 구약舊約의 안쪽에서 애굽을 떠나는
그 절박한 행렬을 따라가고 있는지
초초한 듯 긴장한 듯 연신 담배를 빨고 있다
나는 줄곧 성경과 담배와 여자와
낯선 연관성을 굴려가며
비둘기 떼 한 무리 난해한 풍경을 읽고 가는
우이천변을 걷는다
아직은 쌀쌀한 이른 봄 늦은 오후
두어 시간 넘도록 마른 손바닥 비비며 되돌아 오는 길
그녀는 아직도  성경을 읽고 있다
모세의 뒤를 따라 갈라진 바다를 쫓기듯 걸었는지
헝클어진 머리칼이 깃털처럼 흩날렸다
이미 가나안에 당도한 듯
안식에 든 듯 훌렁, 現世를 벗어버린 여자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담배 연기가
바람꽂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문명의 안쪽 연체된 갈증과 밀린 일상의 근심들조차
어느 변방으로 난파됐는지 알 수 없는 지금
남아있는 페이지를 경배하듯
귀퉁이가 닳도록 성경을 읽고 있는 여자
뜻도 없이 장엄한 노을이 혈변처럼 붉었다 
 
* 서울 도봉구와 강북구 사이를 흐르는 내
 
note
 

자주 우이천변을 걷는다.
깡마른 중년 여자가 벤치에 앉아 성경을 읽고 있다.
그녀는, 발자국을 지우며 따라오는 모래바람에 지쳤는지 마른 몸을 이따금 웅크렸다.
여기는 지금 소돔과 고모라의 시대,
돌연 하늘에서 감람나무 이파리 같은 맑은 한 장의 평화가 찾아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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