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移徙/담채
파도가 깎지 못한
시원의 갯벌 밭
불쑥, 눈자루를 내민 농게 가족이 옴몸에 갯벌을
바르고 이사를 간다
두고 갈 것 없고
가져갈 것 없으므로
달 가듯이 참 홀가분하게 이사를 간다
먼 곳에서 달려온 갯바람이
축 처진 갯벌의 등판을 내리치는 손간
한 겹씩 수피를 벗겨내는 생명들
농게가 찾아가는 곳은
문패도 번지도 없는 펄 밭 빈 구멍이다
빈 소라의 깊이만큼 비밀한 삶들이
숨 쉬는 구멍
빈 몸으로 들어도 좋은 저 길은
속이 보이지 않아 더 싱싱하다
푸른 용달차를 타고
반 지하로 스며드는 가난이 생각 난 나는
집이 없어도 죄가 되지 않고
집이 없어도 꿈이 열리는 황홀한 걸음을 본다
한 번도 길을 잃은 적 없는
무소유처럼 가벼운 저 발자국 발자국들
부피도 질량도 없는
이웃 같고 마을 같고 어머니의 자궁 같은
사방에 널린 집이
출렁, 또 다른 바다가 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