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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作詩

아버지와 그물

by 담채淡彩 2021. 3. 18.

 

아버지와 그물/담채

 

마당귀에 쌓여있는 그물 무더기
더 이상 어구漁具가 아닌 그물 위에 이끼가 무성히 자라 있다

손금이 안 보이는 아버지가 무엇 하나 빠져나가지 못하게
힘주어 엮어놓은 삶의 망網이었다

깨를 털고 난 마당에서
빈 깻대 위에 그물을 올려놓고 불을 붙였다

물기 하나 없는 그물에서 왈칵 쏟아진 바다가 철썩철썩 출렁이다
일순 재 가루가 되었다

마당 가득 바다를 부려 놓은 아버지,
가장자리가 비어있는 바다 위에 소슬한 저녁 풍경을 펼치셨다

마당귀 늙은 대추나무가 노을에 끌리고 있다
달랑 노을 한 점 거느린 대추나무 가지에 길을 빚어 얽는 거미가
바람이 들지 않도록 암팡지게 거미줄을 엮고 있다 

저 한 마리 거미가 죽음에 쓸 밑줄까지 마저 뽑아 길을 내듯
아버지는 이 그물을 엮었을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려는 듯 백 겹의 고삐를 풀며
포구를 떠나는 조각배 하나  
한사코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뱃머리를 밀고 있다

바다가 가장 둥글게 펴지는 만조滿朝의 물때에 그물을 펼치러 
오래전에 떠나신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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