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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作詩

어머니와 보리*

by 담채淡彩 2022. 8. 26.

 

어머니와 보리/담채

 

남향집 울타리 안 작은 안마당 

꽃과 나무들 사이로 군데군데 조금씩 비어있는 땅

이 손바닥만 한 땅 조각에 구순九旬의 노모가

겉보리 씨앗 한 줌을 뿌리고 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이 한 뼘 공간은

그리움이 길을 낸 당신의 섬이다

 

젊어 홀로된 어머니

아직도 강을 건너지 못한 고독과 설움이 거름 되어

보리가 자랐다

연푸른 들녘에 안개 걷히고

울타리 밖 호박꽃이 연등처럼 켜지던 초여름

어머니는 엿기름용 보리 반 바가지를 수확하셨다

긴 가뭄 뒤 늦장마로 연일 비가 내리며

여름이 지나갔다

 

흑백의 영정 한 장이 삶을 꿇어 앉힌

겨울 초입 늦은 밤 

어머니는 젊어 돌아가신 아버지 제상床 위에

마알간 식혜 한 그릇을 올리셨다

그 안에 간절한 다음 生을 들여놓고

그 고요 속을 들어오신 아버지께

앙금처럼 가라앉은 무언가를 오래 건네는 밤

무엇이 저토록 산 자와 죽은 자를 하나로 이어

끝없이 데려가는 걸까

볼모로 잡힌 어머니

살아서는 못 가는 길, 눈물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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