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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과 評論

정직성과 남성다움의 시적 매력

by 담채淡彩 2011. 5. 24.

정직성과 남성다움의 시적 매력

― 심연수의 시정신과 시세계를 중심으로

엄 창 섭

1. 정직한 시어의 구사력

근간 민족시인으로 새롭게 조명을 받는 심연수(1918-1945) 시인의 시적 언어는 정직하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몸담았던 어떤 시인보다 표현하고자 하는 즉물적 대상에 관하여는 주저함이나 망설임 없이 곧장 투명한 언어로 그 틀을 엮어 가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의 시편은 정직한 언어의 행보에 있어 지나친 시적 구사는 언어의 유희나 군더더기로 인식되기에 앞서 가공되지 않은 일상의 어법으로 처리되어 질감의 투박함이 그대로 자리해 있다.

연구자는 앞서 심연수 시인의 문학과 시적 층위」1)라는 논제의 글에서 심연수 시의 특성과 경향을 시의 유연성과 병폐성, 전통의 인식과 고향 회귀성, 시의 호방성과 哲理性으로 구분을 지어 검색하였다. 특히 글을 마감하며 민족시인으로 비중 있게 다루어질 심연수 시인은, 아직도 한국의 현대시가 극복하지 못한 철학과 사상의 빈곤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豫感의 시인으로 그의 문학사적 위상과 실체를 정립한 바 있다.

심연수 시인의 시적 언어가 전적으로 일상의 어법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자료집인 <심련수문학편>2) 제1부의 시편에 편집된 174편 중 두드러진 시의 표현 양상으로 두개의 서로 상이한 현상을 하나로 얽어매는 은유의 들어냄이 비중 있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오―차거운/뼈속까지 저린/그러나 맨살로/더듬는 초행길

―「촉감(觸感)」 전문

 

찾노라 지기(知己)를/나와 같은 젊은이를/일생을 두고 사귈/나와 같은 늙은이를

― 「소원」 전문

 

이처럼 비유조차 오관을 통한 친근감 있는 대상으로 형상화시키는 시적인 힘은 바로 언어의 정직성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감지하게 된다. 나=젊은이=늙은이라는 직유의 도식에서 확인되듯 질감 있고 투박한 시적 언어가 구축한 시적 세계는 무기교의 정직성으로 올곧은 남성다움으로 빛난다. 때로는 날 푸른 칼날처럼 예리하고 섬뜩하기에 시적인 긴장감이 따른다. 그 같은 칼날의 이미지가 그의 시편에서 선명하게 들어난다.

 

칼 끝에 육화(肉花)를 피우리라/총부리에 육향(肉香)을 피우리라/성화(聖火)에 혈향(血香)을 피우리라

― 「육화(肉花)」에서

 

헝클어진 머리를 쓰담으며/거리의 좁은 골목/헤매며 찾는 밤의 사나이/직녀의 그리움을 담뿍 안고서/젖음을 꺼리잖고 헤매고 있다.

― 「칠석(七夕)」에서

 

놓아라 나를 진정 사랑하거든/진정을 벗으로 믿는 그대면/하려는 모든 것을 맡겨두어다구/칼 든 손을 막지 말아라/남을 살해할 내 아니고/쳐놓은 금줄을 끊지 않으며/가려운 포장막 찢지 않으리

― 「우정」에서

 

이 시의 의미구조는 두 층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칼을 가는 것이 하나이고 그 칼을 무기로 사용하지 못하는 나약함에서 오는 자기반성이 그 하나이다. 비록 시의 길, 시인의 길을 강직하게 걸어가겠노라는 의지의 들어냄이 확연하지는 아니하다. 「肉花」에서 보여주는 좌절과 증오, 자기파멸에서 오는 세기말적인 절망감, 그러나 직녀를 사랑하는 그리움에 머리와 옷이 젖을지라도 온 밤 어두운 거리를 헤매며 방황하는 자신의 심상이나 진정한 우정을 강렬하게 역설하며 진실을 포착하고 해명하려는 그만의 애씀과 다짐에서 심연수의 건강한 시정신은 밝게 확인된다.

 

새로 뜯은 봉투에서 떨어지는/글자 없는 편지/아아 그것은 간절한 사연/설움에 반죽된/눈물의 지문(指紋)/떨리던 그 쪽마음/여기 씌여졌구나.

―「편지」 전문

 

오! 바다여/귀에 익은 해조음을/다시 들려주면/맨발로 오리라/흩어진 기억을/옷섶에 싸가지고.

― 「추억의 해변」에서

 

쓸데없는 분홍사연/사랑의 해안에 외로운 배 한척/누구 찾아 오는 님을 실었음일가/철없는 기다림에 가슴 조이는/이 하루 비 내리는 외로운 밤/님 사는 바다 저쪽 무한 그립다.

― 「기다림」에서

 

그의 시 「사연」의 變奏인 「편지」에서는 사랑으로 열병을 앓는 심리가 그 어떤 수식이나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되지 않은 진솔함으로 들어난다. 흩어진 기억을 옷섶에 싸들고(추억의 해변)이나 비 내리는 외로운 밤/님 사는 바다 저쪽 무한 그리워(기다림)하는 절절함에 고뇌하는 熱血의 시인의 삶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곧, 안개 낀 새벽아침/이슬 내린 내기슭을 더듬으며/지나간 기억을 찾아올제/오직 떠오르는 것은/가식없는 생활에/외로이 자라온 알몸뚱이였다.(고독)에서 표출하고 있듯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자리해 있는 그리움과 고독이다.

심연수 시인에게 있어 그토록 사모하는 그리움의 대상은 단순한 연인이기보다는 또 하나의 조국이며 겨레로 해석된다. 비록 이국의 땅인 중국 연변에 몸담고 있으나, 오로지 한국 태생(강원도 강릉 출생)임을 자부하는 그의 정신 기후와 풍토는 지극히 한국적인 것에 기인하기에 시적 글감이 우리에게 신선한 감동을 안겨주는데 부족함이 없다.

손때 묻은 공책 펴고/옛문서 갈피갈피 뒤적이던 밤/등잔엔 기름이 다 졸았고/먼지 묻은 초불 한 대/벼루등에 섰소/길던 것이 타들어가며/불꽃이 풀럭거릴 때마다/서러운 울음에 눈물 같은 초방울이/서울에서 흘러내려 엉켜집니다(밤이 새도록)에서나 혈관도 없는 두루뭉숭이/심장의 피는 어쩌고 있는지/칼로 푹 찔러 보고도싶건만/생의 애착이 한사코/아교처럼 안떨어져 병이더라.(회한(懷恨))와 같이 현실적인 삶에 대한 애착은 심연수 시인에게 있어 떨쳐 버릴 수 없는 것이기에 자기혐오와 自省과 연계된다.

시인의 길을 걷겠다는 신념과 일제 강점기를 살아가는 사회 현상에서 피할 수 없는 자기혐오와 반성은 심연수 초기 시편을 엮고 있는 두 骨格이다. 시인의 길을 올곧게 걸어가리라는 확신에 찬 신념은, 물질과 권력을 쫓아 마구잡이로 치닫는 자들이 타락한 현실에 대한 분노와 폭력적인 권력이 자리한 사회, 그리고 인류 공멸을 위한 맹목의 질주를 멈추지 못하는 근대문명의 파괴성을 통찰하고 비판하는 힘의 根幹이다.

 

어제 친 전보는/오늘은 받으실게다/얼마나 놀라셨으랴/얼마나 안타까왔으랴/이제 와서 후회한들/무슨 쓸데 있으랴/죄는 벌써 저지른 것.

― 「과오(過誤)」 전문

 

심연수 시인의 시편에서 접하는 준엄한 정직성에서 연계되어 있는 층위는 자기반성의 정신이다. 애써 윤동주 시인의 부끄러움의 미학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自省에서 비롯된 암울한 현실 비판은 결코 방관자의 공허한 절규나 좌절에서 기인한 통곡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내면에서 파장된 진정한 뉘우침이며 비장한 자기 연민인 것이다.

 

2. 남성다움과 신념의 노래

 

우리는 비중 있는 민족 시인으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심연수 시인의 시편을 통하여 시인의 순수한 영혼과 투명한 정신이 날카로운 비판과 준엄한 자기반성으로 접목되어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그의 강직하고 투명한 시정신이 천지에 가득한 생명의 꿈틀거림으로 자신의 삶 속에 투영되고 있다. 그것은 궁핍한 시대를 살아가는 민족에게 있어 간절한 꿈이며 강인한 생명력이기에 그의 시를 해명하는데 보다 소중한 열쇠가 된다.

 

마음껏 자라나라 힘껏 굵어라/네가 할수 있는 정도까지/부족없는 자연속에/구속과 절제 없이/하늘을 찌를 듯이/땅이 어물어들도록/자라라 굵으라 이 땅의 만상아/대지는 네 것이다 하늘도 네 것이다.

― 「대지의 여름」에서

 

뛰는 피 젊은 가슴/엉클린 우리 무리/배움의 동산에/굳게 뭉쳐 자라났다/빛을 찾아 모인 무리/불을 안고 돌아갈제/새 희망 타오르는/힘찬 가슴 길렀겠지.

― 「흩어진 무리(2)」에서

 

자라라 굵으라 이 땅의 만상아/대지는 네 것이다 하늘도 네 것이다(대지의 여름), 새 희망 타오르는/힘찬 가슴 길렀겠지(흩어진 무리(2))에서 감지되듯 의구심이 없이 물상에 정직하게 접근하여 민감하게 조응하는 시인의 거침없는 호방성과 굵은 선, 그리고 웅변적인 톤은 무너짐이나 꺾임을 거부한다. 이것은 심연수 시인이 지닌 시적 매력으로 그의 시를 떠받들고 있는 원천적 힘이다. 이처럼 시인의 치열한 삶과 곧장 나아가는 선비적인 기질은 또다시 특유의 어법과 결합하여 모더니티한 시적 분위기를 형성하여 새로운 시적 영토를 확장시켜주는 因子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

 

온 길은 몇천리며/갈 길은 몇만리냐/해마다 찢어지면/그 일을 어찌한담.

― 「청춘」에서

 

워싱톤의 땀이 미씨씨피강이 되고/나뽈레옹의 땀이 로하수가 되었다/보라!/영웅의 땀은 문명의 윤활유가 되고/혁신의 연료가 되었다

― 「땀」에서

 

지금 시인은 젊음을, 낙타에 두몸을 싣고 오아시스를 찾는(청춘) 열정으로 온 천지를 가슴에 안으려는 꿈을 불태우고 있다. 타오르는 불길(寒夜記)이나 땅에 버티고 하늘을 당겨라(무제)의 詩行처럼 그의 천부적으로 정직하고 남성다움의 詩格은 그 공간대를 우주로 변용 확장시킨다. 역동적 상상력은 거침없는 호흡으로 확산되어 심연수 시인의 시편을 접하는 독자의 정감까지 때로는 격하게 만드는 것이다.

 

추위에 자라는 이 땅의 아들/즐겨 맞노니 사모(思慕)의 시―즌/단련의 겨울이 오고야 말것이다

― 「대지의 겨울」에서

 

험한 힘 가는 곳에/두려움 없을세라/심신이 젊었으니/일마저 튼튼하여라.

― 「떠나는 젊은 뜻」에서

 

내 잊지 못할 하나의 흐름인 너/거친 땅 간도의 품을 흐르는 힘찬 동맥/마른 입 마른 목 추겨주는 생명수야/너는 가장 믿음성 있고 든든한 나의 동무였다.

― 「해란강」에서

 

비교적 체험+형상의 틀에서 이탈하지 않는 심연수 시인의 시적 이미지는 선이 굵고 남성적이다. 암흑을 익힌 개선장병아/분투의 앞에 굴복한 과거는/캄캄한 어둠속에 쓰러졌다/승리자여,/만난을 극복한 투사여/오래지 않아 서광이/그의 낯을 몸을 비치리니/속으로 웃어 마음에 기꺼하라(새벽)의 시행처럼 불려지는 신념의 노래는 남성 화자의 어투로 장식되어 강인한 생명력이 활기차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시가 수용하고 있는 중요한 특징은 아름다운 서정의 들어냄으로 시의 본질을 팽팽하게 유지하고 있는 점이다.

 

아귀벌레 움켜쥐는 하얀 분(粉)모래/흐를가 샐가봐 아무리 애써도/가락새로 스며새는 얄미운 존재/쥐면 새고 새면 다시 움키면서.

― 「한줌의 모래」 전문

 

일제 강점기 민족적인 분노와 자신의 울분을 저항적으로 시편에 담아 토해낸 시인이라면 이육사, 이상화, 김동명, 유치환 등의 시인을 거론할 수 있다. 이 같은 우리네 시단에서 심연수 시인은 이 땅의 어느 시인보다 민족이 처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 예언자로서의 몫을 충실하게 담당하였다. 세계2차 대전 중인 1940년에, 그는 놀랍게도 역사 인식이 뛰어난 민족시인으로 다음과 같은 시편에 조국의 광복은 물론 아시아의 평화를 점철시켰다.

 

봄은 가까이에 왔다/말랐던 풀에 새움이 돋으리니/너의 조상은 농부였다/너의 아버지도 농부였다/전지(田地)는 남의 것이 되었으나/씨앗은 너의 집에 있을게다

…(중략)…

너의 집이 가난해도/그만한 불은 있을게다/서투른 대장쟁이의 땀방울이/무딘 연장을 들게 한다더라/너는 농부의 아들/대장의 아들은 아니래도.../겨울은 가고야만다

― 「소년아 봄은 오려니」에서

 

때는 온다/온 천하가 뒤집혀도/겁낼 것 없다/온 지맥이 뒤틀려도/덤빌 것 없다

…(중략)…

아세아의/서광은 빛나리라/때는 만들고야 오나니/때는 왔다.

― 「육화(肉花)」에서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발상이 아니라, 심연수 시인 나름의 창법으로 불려진 「소년아 봄은 오려니」나 「육화(肉花)」의 시적 이미지는 절망적이고 핍박받는 이들을 대변하고 소극적인 독자의 감성마저 보다 희망적이고 긍정적으로 발아시키는 매개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담당하고 있음을 명증해 주고 있다.

특히 「소년아 봄은 오려니」는 민족의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암묵적 은유기법을 수사적으로 처리한 유작으로 극명하게 저항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일제로부터의 민족해방을 전제한 이 작품은 전지는 남의 것이 되었으나라는 시적 발상을 통하여 일제에 강탈당한 국권의 현상에 강도 높게 분노하고 있다.

여기서 씨앗이란 시어는 조국 광복을 위한 국권 회복을 너의 집에 있을 것이라는 싯구는 예언자적인 저항성을 예감한 의지의 표현이다. 또한 겨울은 가고야 만다.는 시적 의미는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순리에 빗대어 힘의 논리는 겨울과 같아서 일제는 패망할밖에 없다는 시인의 확신을 천명한 비장함을 수반한 시편이다. 

 

쉴새없이 밀려드는 사나운 물결/륙지의 테두리를 깨물어 뜯는/마지막 발악을 그대여 보는가

― 「인류의 노래」에서

 

눈을 감고 귀를 막고/입까지 막아라/사악과 가식의 티끌 먼지바람이/밉살궂게 불어온단다.

― 「폭풍」에서

 

심연수의 시편은 대체로 시대적 사회 공간의 모순, 비정, 모함, 비열한 이기주의, 환경 등 동시대가 지닌 온갖 부조리를 현대시의 틀에 담아 표출하고 있다. 우리는 또 다른 그의 시편을 통해 긴박한 삶에 짓눌려 사는 화자의 안쓰러운 일상을 스스럼  없이 접하게 된다. 여기서 시적 대상이나 시대적 상황은 화자의 삶의 편린으로 제시되지만 실상은 민족이 겪는 시대적 고통으로 총체적 삶의 표징이다.

 

고집을 써라 끝까지/티끌만한 순종도 보이지 말고/타고난 엇장을 굽히지 말라

…(중략)

우기고 뻗치다 꺾어진건 통쾌해도/뉘게다 굽석거리는 꼴은/보기 싫도록 역겨웁더라

― 「고집」에서

 

티끌만한 순종도 보이지 말고… 뉘게다 굽석거리는 꼴은/보기 싫도록 역겨웁더라의 시행에서 접목되는 시인의 강렬한 我執은, 단순한 자아로 머무는 삶의 흔적으로 해명되지 않는다. 어디까지 그는 죽어 없어지지 않을 신념을 지닌 예언자적 존재로 보편적인 상황에서도 한 올의 비굴함을 허락하지 않는 지사로서의 면목을 지녔기 때문이다.

시인이 그토록 비분, 기개, 고집불통, 비타협과 같은 절개를 강도 높게 피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곧 일제에 항거하는 강인한 문사의 지조의 들어냄이다. 이 점에 있어 이재호의 지론은 긍정적이다.

 

뻗치다가 갖는 시적 의미는 절개의 정신과 맥을 잇고 있으며, 보기 싫도록 역겨웁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일제 치하에서의 죽음을 뜻하는 일이라고 했다.3)

 

섬도 없는 바다에서/풍파 높아 지쳤어라/네 또다시 날아갈 바다길/하늘아 바다야 잔잔하거라.

― 「갈매기」에서

 

끝없이 맑은 하늘에/키돋움을 하며 큰다/대지의 품에 안겨/볕에 붉은 천진한 얼굴

― 「들꽃」에서

 

무엇보다 다행스러운 것은 심연수 시인의 시 전편을 통해 그의 건강한 서정은 미적 주권의 확립으로 확인된다. 망망한 바다에서 풍파에 지친 한 마리 갈매기를 위해 하늘아 바다야 잔잔하거라라고 소망하는 모성적 심상으로 아름답게 채색되고 있는 점이다. 하찮은 물상인 들꽃을 주시하며 키돋움을 하며 큰다 라는 수사적 처리나, 볕에 붉은 천진한 얼굴의 표징은 차별화 된 그의 시적 기법을 선명하게 입증하고 있다. 서정과 기법이 비교적 눈부시게 빛나는 심연수 시인의 시편 중 낭만주의적 성격이 강한 「수평선」을 보기로 하자.

 

부풀어 오른 수평선 너머/그 님이 계신다고/내 마음이 흰 돛을 달고/네 가슴을 헤쳐가리라/그 가슴에 안겨지러 가리라.

― 「수평선」 전문

 

비록 그의 따뜻하고 인간적인 시 의식은 미세한 현상을 분석하는 고성능 카메라의 렌즈나 一物一語說로 적확하게 포착되지는 않는다. 빠미르고원에다 천막을 치고/모우의 등에서 짐을 풀어라(세기의 노래), 오늘도 사막에는 지친 대상이 건느겠지./폭열에 목마른 락타와 사람(지구의 노래), 이 하늘아래/이 땅덩어리 우에서/영원한 생의 찬가를/언제든지 부르세(새벽) 등에서도 쉽게 발견되듯이 그의 성격이 낭만적이라, 그의 시편이 철저히 객관성을 배제하지는 못하였다 할지라도 그것을 결점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3. 빛나는 서정과 시의 틀

 

심연수 시인의 시적 메시지는 비교적 리얼리즘 쪽이지만, 정지용보다는 다분히 김기림적인 모더니즘 경향에 편중하고 있다. 체험+형상이라는 시의 틀이 이를 명증한다. 특히 젊은 날, [의란]에서 칼날보다 날카로운 이발로/눈덮친 땅바닥을 물어뜯는…조그만 해덩이가/얼어넘는다. 눈보라를 모더니즘 수법으로 詩化하여 가히 絶唱으로 불려지기에 족한 시편을 보자.

 

막막한 설평선(雪平線)/눈물 어는 새파란 공기/추위를 뿜는 매서운 하늘에/조그만 해덩이가/얼어넘는다.

― 「눈보라」에서

 

심연수 시인 자신이 현해탄을 건너기 전 [부산] 부두에서의 착잡한 그 자신의 심상이나 밤은 깊어 외로운 해협의 기슭/눈물로 얼리는 부두의 고정(孤情)/철없는 가슴에 한이 엉키며/여울의 거친 물을 헤엄치련다.(부두의 밤), 대학시절 동경에서 신문배달을 하며 체험한 뼈저린 가난과 고달픔에서 오는 한스러움 아무것도 못가진 신문들을/너무나 못살게 굴었구나/한몸이 그처럼 알뜰한 죽음/그것조차 생각지 않고서.(속)를 통해 확인되듯 그의 시편들은 독특한 짜임과 현실 인식의 磁場 안에서 형성되고 자리 매김을 한다.

 

호수의 련꽃이 누르려 누구러지고/돌층계에 석양이 붉게 물들제/청춘을 실은 뽀트가 미소하는 낮은 음성/저무는 우에노(上野) 숲에 깃들이라.

―「동경3제(東京三題)」에서

 

해지는 저녁마다 물새는 울었지만/달없는 어둔 밤엔 무엇이 울어줄고/밤 흐린 나그네여 이곳에서 맘 맑히시소.

― 「새바위」에서

 

푸른 바다 물결 자지색 바다빛/바다가 흰바위에 바투 자란 다박솔/어느것 한가지인들 맘 아니들소냐

― 「바다가에서」에서

 

당시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으로 주권을 빼앗기고 멸시와 천대를 받는 조선민족의 비극적 삶은 고통으로 얼룩져 있음은 주지할 바다. 그러나 이 같은 시간대에 생존하면서 「동경3제」나 서천에 남긴 노을/어둠에 젖어 울고/음기(陰氣) 품은 저녁바람/땀 배인 몸에 스며든다.(대지의 暮色)와 같이 읊어진 시편들을  심도 있게 검색하는 것은 타당성이 있다.

특히 「새바위」, 「바다가에서」, 「경포대」, 「옛터를  지나면서」를 비롯한 한국적인 대상을 국문학 장르상 민족魂의 표징인 時調에 담아 고아한 서정시로 꽃 피운 점에 비추어, 심연수 시인은 까닭 없이 분노하거나 저항하는 불안한 심리의 피해망상자가 아니다. 그는 감정의 구속을 원치 않는 강직한 詩魂의 소유자로 본질적으로 투명한 서정적 감성의 시인으로 감지된다.

이 같은 시대적 환경 속에서 시인이 자신의 문학과 사상을 갈마들며 추구한 정의와 진리는 상실된 조국을 회복하기 위한 적극적 행위와 들어냄으로 분석된다. 여기서 「빨래」를 예시로 보기로 하자.

 

그들의 마음 가운데/불의의 때가 있거든/사정없는 빨래방망이로/뚜드려주소.

 

시에 내재된 순수와 정의, 진리를 추구하는 시정신과 담백한 시의미는 단시적인 틀 속에 담겨 처리되고 있다. 여기서 불의의 때가 있거든/사정없이 빨래방망이로 /뚜드려주소.라는 의지의 표출은 심연수 시인이 그토록 소망하였던 불굴의 신념으로 불의 앞에 저항하는 인간적인 참됨의 표징으로 해석된다. 이미 앞서 기술하였듯이 그의 시편들은 동시대 이 땅의 어느 시인 보다 이미지의 굵은 틀 속에서 형성되어 남성다움과 불굴의 신념으로 불리어 지고 있다.

특히 심연수 시인의 시적 분위기나 내용면에서 호방성과 거창성, 그리고 비중 있는 哲理라는 시적 특이성이 확인되는데 이해를 돕기 위하여 논리를 거부하지 않는 시편을 음미하여 보기로 한다.

 

네 손으로 만든 것이 그것이며/네 마음으로 아는 것이 그것이다/참다운 기적은 평범 가운데서 나고/그 평범은 부단한 노력에서 온다.

― 「기적(奇迹)」 에서

 

결론적으로 우리 한국의 현대시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민족시인으로 평가되기에 족한 심연수 시인에게 있어, 일제 강점기 그만의 빛나는 서정은 한국적 자연에 힘입고 형상화되어 체험과 형상의 틀 속에서 새로운 시의 지평을 열어주었다. 여기서 무엇보다 자명한 것은, 그의 시에서 발견되어지는 시적 공간이 갖는 矛盾과 非情은 시적 주제를 환기시키는 또 하나의 층위로 재인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