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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장글, 詩作 note32

자화상自畵像* 자화상自畵像/담채 언젠가는 필시 별들이 데려갈 내 生이 마냥 누추하여 미안하다 슬프고 깊은 눈 어탁을 뜬 듯 얼룩진 얼굴 흥건한 노을에서 수만 마리 물고기 떼 우글거린다 오래 마른 씨방처럼 까만 씨앗들이 쏟아질 듯 위태한 生의 후미 한 시절 꽃무늬 바람 같고 구름 같다 잠깐 번쩍거린 사랑도 스쳐간 인연들도 높고 외롭고 아름다웠다 길 위에서 내 그리움은 이것으로 충분하였다 2020.01 2021. 1. 13.
부족한 글을 마다 않고 읽어주시는 블친님들께* 부족한 글을 마다 않고 읽어주시는 블친님들께 물이란 본래 소리가 없는데 무엇인가 가로막게 되면 소리를 내게 되고 나무란 본래 소리가 없으나 바람이 흔들어대면 운다 그러나 '사람은 文章으로 운다' 하였다 言語의 집을 짓는 일은 뼈다귀로 노를 저어가는 일이라했다. 言語는 벼린 날과 같아서 잘못 다루면 칼이 되고 잘 다듬으면 며칠 밤이라도 쉬었다 가고 싶은 안락한 집이 되는 것이다. 내가 지은 언어가 무한히 유정할 수 있기를 바라며 누군가는 내가 지은 집에 들어 언 발을 녹일 수 있기를 바란다. 다만 누군가의 돌팔매와 날카로운 이성의 책찍은 나를 성실하게 默想하도록 만들 것이다. 2021.01.07 2021. 1. 6.
엄동嚴冬 엄동嚴冬 /강성백 눈보라 嚴冬 빙판길 골목에 용달차 세워놓고 과일장수 아저씨 바람 속에 떨고 있다 과일상자 위에는 두꺼운 담요가 겹으로 덮여있다 귤, 사과, 단감 서너 알씩 담요 위에 꺼내놓고 한 알의 사과보다 뒷전인 몸이 담요 밑 과일들을 연신 들여다보고 있다 언 땅에 또 눈이 내린다 춥다 * 癸巳年 二月 2020. 12. 23.
기도* 기도/담채 ​ 부처님 귀와 같이 가지를 늘어뜨린 느티나무 그 아래 오래된 직사각형 평상 한 老人이 거기 앉아 궁기의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하늘은 서늘하게 비어있다 눈부신 황혼 속을 혼자서 건너가는 석양과 집으로 돌아가는 새들이 하나로 일치하는 허공 노인은 거기 앉아 오늘 하루에게만 예를 갖추겠다는 듯 합장을 하고 있다 눈 감고 귀 닫고 둥글게 말린 몸이 작고 얇은 이승의 귀퉁이를 깎아내고 있다 note 이승의 귀퉁이는 자주 짓무르는 것이다. 그런 날 나는 神에게 빈다. 낡고 누추해진 마음 한켠에 새로이 神을 들어앉히는 일은 혼자일 때 이루어진다. 2020. 12. 9.
길 위에서 37 - 時間의 등 뒤에서* 길 위에서 37 - 時間의 등 뒤에서/담채 서울로 가족을 옮기고 30년 넘게 주말부부를 했다. 길 위에 울타리를 쳐놓고 금 안에 갖혀지낸 30년.... 문득, 가족과 떨어져있으면서 쓴 詩들을 꺼내보고 있다. 歲月 저 편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떠난 것이 많으나 곤고한 길 위에서 시시각각 울어대던 꿈과 아직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 이루 말할 수 없는 격랑으로 일렁이는 것들이다. 아픈 것들이 많다. 2020.12.07 새벽 가을밤(2) 오래된 침대를 버리고 나서 더 넓어진 방 나는 혼자이고 바람은 수행 중이다 오늘 밤도 나무는 혼자서 잎을 보낸다 1994.11 밤이 길어/강성백 밤이 길어 밤이 길어 수리부엉이 울음으로 밤이 길어 삼경에 둥그는 달과 삼경에 길 떠난 철새와 바람의 울음으로 밤이 길어 멀리 있는.. 2020. 12. 7.
간월암看月庵에서* 간월암看月庵에서/강성백 西海에 물이 차면 천수만 간월암*이 물 위에 뜬다 극락도 아수라도 그 아래 삼백예순 날 노승 두엇 부처님께 비는지 하루에 두 번 물길이 열린다 나는 그 길을 밟고 암자에 들어 천리향 꽃향이 번지는 절 마당에 서 있다 멀리 온 것 같으나 길은 제 자리 나는 없고 고요한 목조보살좌상 하루에도 천만 번 생각을 닦는다 2012.05 note * 瑞山市 浮石面 간월도에 있는 작은 암자. ( 만조 시 물이 차면 섬이 되고, 하루에 두 번 간조 때마다 바닷길이 열린다) 2020. 1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