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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장글, 詩作 note32

가을 들녘에 서서* 가을 들녘에 서서 /강성백 나무는 잎이 가장 가벼운 때 그들을 보낸다 궁극으로 돌아가는 것들은 가진 것이 없다 씨앗의 고동과 한 순간의 열정이 살다 간 자리 텅 빈 가을 들녘에 서면 간절했던 자리마다 빈손으로 떠도는 바람소리 2020. 10. 16.
겨울 덕수궁에서* 겨울 덕수궁에서 /강성백 황홀한 시작과 쓸쓸한 최후가 둥그런 돌담 안에 멈춰있다 아직도 천둥소리 마른번개 번쩍이는지 蒼然한 경내를 황급히 벗어나는 한 무리 새떼 백 년 이백 년 오백 년 飛龍의 금물결 아득히 흘려보내고도 여전히 찬란한 물결 南柯一夢을 바라보는 나무와 풀과 저 높은 돌계단 하나하나 무엇을 내리며 긴긴 시간의 물거품을 휘젓고 있는가 오늘도 구름은 저를 허락하여 바람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나무는 죽어서도 천 년 바람소리를 듣는다는데 ​이 땅이 한 바퀴를 돌 때마다 뜨고 졌을 무수한 일출과 일몰 돌아올 데 없는 빛과 그림자 어디에 닿고 있는가 먼 데서 佛頭花 꽃잎 피었다 지고 한 치 앞 저승 쪽에서 또 다른 윤회가 걸어서 오는 천지간 한때 우리가 가고 온 길 다 지우는 눈보라여 2020. 9. 2.
어떤 가난 * 어떤 가난 /담채 막걸리를 많이 좋아하셨던 詩人 천상병 그는, 밥 먹을 자격도 없는 놈이라고 스스로에게 다그치며 탁한 막걸리 한 사발로 몸을 데웠다 ​찌그러진 빈 양재기 같이 시퍼렇게 녹슬어 있는 달을 올려다보며 막걸리를 마셨다 세상을 ​소퐁 온 것처럼 살아냈던 그는 단 한 번 歲月 앞에 무릎을 꿇었다 꿈에서라도 만난다면 막걸리 몇 병과 부침개 한 장 달랑 들고 가 물어보리라 이승의 누더기는 어디에 벗어두고 가셨는지 가난은 어떤 별로 떠 아찔한 빛으로 세상에 오시는지 누님 같던 그의 아내 목순옥 여사가 그의 뒤를 따라갔다 ​하늘에서 아내를 영접했을 것이다 地上의 모두를 데리고 소풍을 갔다 2010.10 안면도 중장리 해변마을에 천상병 시인이 살던 집을 옮겨 원형대로 복원해놓았다 * 수락산 산자락에서 詩人.. 2020. 7. 26.
時間의 구도 時間의 구도/담채 어제는 그리웁고 오늘은 번뇌하며 내일은 불확실하다 우리가 사용해온 時間은 삶을 무한으로 지배해왔으므로 모든 산 것들은 짚불 같은 한 순간을 永遠처럼 쥐고 있을 뿐이다 산 것들은 永遠을 꿈꾸고 時間은 모든 生을 간섭한다 2020. 7. 17.
고추밭 - 어느 농사꾼의 여름 고추밭 - 어느 농사꾼의 여름 /강성백 미안하다 生이여...! 익은 고추 땅바닥에 떨어지게 할 수 없어 63세 나이를 불구덩이 고추밭에 쓰러지게 하여 미안하다 너무 뜨거운 불에 生을 달궈 미안하다 note 2012 여름,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졌다. 선량한 이웃 농부가 고추를 따다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갔다.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어디선가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2012.08.03 安眠島에서 2020. 7. 12.
향일암向日庵에서* 향일암向日庵에서/강성백 절 마당 아래로 무량한 바다 마디마디 허공을 쥐고 바라춤을 추듯 출렁거린다 산이며 바다며 끝없는 바람소리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마는 물과 땅이 만나는 금오산에 나무 그림자 깊다 몸은 저절로 낮아지고 귀 열고 입산入山하는 것마다 소리를 낮추니 그 떨리는 걸음들이 어느 벌레 하나의 노래여도 좋겠다 이생의 고뇌가 온몸에 기록된 낡은 경전 같은 몸들이 만 가지 근심을 떠메고 애써 오르는 관음전 몸도 마음도 가뭄인 형태로 그 끝없는 발짝 소리 다만 보듬고 가노라면 언젠가는 내 몸도 새 뼈 얻어 잠깐 반짝이려나 바다로 달려가다 물을 만나 문득 멈춘 산 뿌리 돌로 된 형상을 버리고 싯다르타의 맨발이 된 바위와 거북이 된 바위들도 비 오면 젖고 눈 오면 추우니 우리는 모두 사는 일로 同病相憐.. 2020. 7.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