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160 12월 필부일기 - 12월/ 가랑비 내리는 이상한 겨울 아침 외로움이 분무된 시를 읽으며 “운명을 믿기 시작했을 때 나는 병이 들었다”는 어느 시인의 초고를 보며 그 시인의 통증에 나는 전염이 된다. 우리는 山이 되지 못하여 서로의 시를 읽기만 할 뿐, 아직 시인의 황홀한 구원이 보이지 않음으로 세상으로 향한 나의 작은 틈새도 흔들린다. 나는 ‘하나님의 뜻’이라거나 ‘다 인연’이다 라는 말법을 좋아하지 않는다. 발은 자꾸 헛디뎌지고 내 삶은 좀처럼 노래가 되지 못했다. 노래가 되지 못한 언어들은 입 안에서 술렁이다가 자주 치아를 흔들다가 멈췄다. 벌써 몇 해를 모래 바람 속을 헤매고 다녔다. 삶이란 거의가 운명이거나 아니면 나도 모르게 미리 다 정해져 있는 듯했다. 오늘도 헛된 꿈을 꾸는 나는 삶이 우리에게 한.. 2023. 12. 14. 필부일기4 - 12월 필부일기4 - 12월/담채 거리마다 사람들은 조금씩 거룩해졌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세상살이 한 번의 건너뜀도 없이 또박또박 품고 온 발자국이 세월 안쪽 냉기를 만진다 세월의 한 끝에 무겁게 내려앉은 내 생애의 발자국 우리는 신심信心을 닦기도 전에 일주문에 들어섰다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내다본다 풍경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 내 마음도 변한 것이 없다 다만 허기가 밀려 올 뿐 이제 추위가 찾아올 것이므로 사람들은 붙어 지내려 애쓸 것이다 지금보다 가난해서 더 행복했던 시절 그리움은 언제나 제로로 끝난다 과장된 세월을 홀로 품은 나의 산맥 어떤 간이역도 다 옳았다고 믿자 2023.12 2023. 12. 8. 필부 일기 1 - 나는 무교無敎다 필부 일기 1 - 나는 무교無敎다/담채 가난한 밤이 길어 성경 몇 구절 법구경 몇 자락 그냥 들추다 팽개치는 나는 무교다 아침 밥상 앞에서 늙은 어머니 기도 끝에 아-멘으로 답하고 부처님 앞에서 건성으로 합장하는 나는 풀이나 나무처럼 종교가 없다 이 나이가 되도록 암자 한 채 들이지 못한 몸 바람이 부나 눈이 오나 물 흐르듯 사는 것도 운명이니 아멘과 합장이 무슨 대수랴 내일이나 모레쯤은 눈이나 내려라 2023.12.05 2023. 12. 4. 서시序詩 서시 序詩 /담채 꿈인 듯 생시인 듯 멀리서 다가오는 빛에 이끌려 한없이 그 뒤를 따라다녔다 그 밤, 나는 어디로 불려갔다 돌아온 것일까 가다가 가다가 멀어지다가 가까워지다가 만나던 작은 별빛들 신성한 것은 한결같이 아득한 곳에서 희미하게 빛을 뿌린다 2023.11.29 *** 며칠 동안의 병원생활, 어둡고 희미한 그 길에서 별을 헤이며 살았다. 참 지루한 시간들이 폐허가 된 나를 낯선 세상으로 데려가 주고 때론 밑바닥의 경계까지 몰아붙이기도 했다. 2023. 11. 23. 2023.11.23 2023.11.23/입원준비 아프면서 살아가는 것은 또 다른 음지의 이름이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복통이 심해졌다. 수시로 드나드는 병원 소화기 내과 의사가 입원을 권고하니 오늘은 병원에 래원하여 입원상담을 받기로 계획이 되어있다. 특실 입원을 생각해봤으나 따분함이 더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4~5인실을 택하기로 한다. 무료를 달래줄 두 권의 책과 수건 면도기 세면도구 등을 손수 챙겨보는데 그냥 쓸쓸하다. 모레인 25일은 가장 돈독한 친구 세 명과 미리 송년모임을 갖기로 스테이크정식 예약이 되어있다. 부득불 참석이 불가하니 아프다는 핑계로 삶의 질이 엉망이다 . 연달아 잡힌 고등동창 그 즐거운 모임도 못갈 게 뻔하다. 통증완화에 도움이 될까싶어 하루 두세 시간 열심히 체력을 단련하던 헬스클럽도 못 나간지.. 2023. 11. 22. 과대포장 과대포장/담채 딸아이가 공진단(한약)과 문어를 보내왔다. 한의대병원에서 조제했다는 공진단, 그 박스가 얼마나 고급스러운지 거부감이 들었다. 이 만만치 않은 케이스비용이 다 약값에 전가되었을 게 뻔하다. 면역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문어와 공진단 몇 박스를 보내왔는데 족히 몇 백만원은 썼을 것 같다. 저 역시도 의과대학생인 딸 뒷바라지를 하며 힘들 것을 알기에 다만 얼마라도 송금해주기로 생각해본다. 억새풀도 나무도 바람이 불어가는 쪽으로 일제히 엎드리는 11월 점점 심해지는 복통으로 황량한 외로움만 밀려온다. 날아가는 새는 가는 곳을 말하지 않듯 이 고통을 가족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 그러므로 내 삶이란 견딤일 뿐이다. 식구하고 같은 된장찌개에 숟갈을 넣었을 때 그렇게 아찔할 수가 없었다. 냄비 안에서 숟.. 2023. 11. 18.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 2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