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길 위에서157

길 위에서 37 - 무제無題* 길 위에서 37 - 무제無題/담채 내가 아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이고 내가 안다고 믿고 있는 것들도 정녕 모르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 아래로 흐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위로 흐르는 것일 때가 있었다 나는 소통되지 않음에 절망하고 절망으로 넘어질 때마다 병들고 지쳐있는 것들을 먹고 일어났다 그리하여 정녕, 나를 끌고 가는 것은 위대하고 숭고한 것들이 아니라 작고 초라한 것들이라는 것을 알고 천 년을 저울질해야 하는 것이 나의 길인 것을 알았다 나는 한 번도 깊이 살았던 흔적이 없다 2022.07.21 2022. 7. 23.
길 위에서 40 - 나이를 읽다* 길 위에서 40 - 나이를 읽다 벼이삭을 바라보며/담채 나도 저렇게 익어갈 수 있는가 여물수록 고개를 숙이는 저물어가는 나에게 말씀을 주시는 무릎을 향하여 고개를 숙인 저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아늑한 胎兒의 자세 나도 저렇게 익어 사람이 걸어가는 길 위에 씨앗으로 뿌려질 수 있기를 - 졸시 중에서 세상은 둥근 것 같으면서도 그 중심은 대체로 쓸쓸한 것. 사는 일이 내 의지의 너머에 있으니 나이를 읽는 자세는 누군가의 靈魂을 대하듯 조용히 환대해주는 것. 나이란 더할 수도 없고 뺄 수도 없고 그저, 내 안에 수직으로 쌓여진 時間의 흔적이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상실이 아니라 人生 이상의 눈부신 착지에 당도하는 길일 터 저기 천년을 피고 진 풀꽃들도 다 한 生의 길이었으니 나는, 마른 잎 한 장.. 2022. 7. 23.
길 위에서 28 - 해후邂逅* 길 위에서 28 - 해후邂逅/담채 白髮의 초등학교 동창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너도 나도 가난했던 자유당 말기 섬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50년 넘게 세상을 떠돌다가 일손을 놓고서야 다시 만났다 지구를 몇 바퀴쯤 돌았을까, 머리 위엔 하얀 서리가 앉아있다 우리는 서울의 한복판에서 소주를 마시며 빌딩 사이로 들려오는 물소리에 귀를 닦았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찢어진 고무신이었던 그때 그때의 가난은 평등하고 따뜻했다 빈곤의 시대를 허겁지겁 달려온 우리에게는 가난도 허기도 그리움일 뿐이다 소금기 가득한 그리움이 남은 生을 끌고 갈 것이다 * note 이 땅에 아무 것도 뿌리내리지 못한 자유당 말기 섬마을 초등학교를 졸없했다. 뿔뿔이 흩어진 지난 50여 년 각자가 열심히 살아왔다. 모 언론사 사장을 지낸 친구는 소.. 2022. 7. 23.
길 위에서 26 - 불면* 길 위에서 26 - 불면/담채 요즘 들어 부쩍 잠이 줄었다 어제는 새벽 두 시 오늘도 새벽 두 시, 에 잠이 깼다 방을 따로 쓰는 아내가 모르게 책상 앞에 앉아있다 한 마리 도둑고양이처럼... 귀신과 겸상한 듯 숨소리만 흐르는 방 여명은 멀고 열대야를 지나는 지금은 바람마저 일지 않는다 며칠 전 아내에게 불면에 관한 얘기를 했더니 수면제를 복용해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약에 의존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 못들은 척 넘어갔다 달 가는 소리 가냘프고 별 가는 소리 고요한 이 시간에도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온다 2022.07.16 2022. 7. 23.
길 위에서 19 - 아들과 딸* 아들과 딸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방포해수욕장 길 위에서 19 - 아들과 딸/담채 위로 딸 하나와 아들 하나를 두었다 딸은 초등학생 때부터 중학 2년차까지 많은 독서를 실천했다 그래서인지 속이 깊고 공부도 열심히 했던 딸은 결혼 후 외동딸(나에겐 하나뿐인 외손녀)하나를 두었다 그 외손녀가 再修 한 번 없이 醫科大學에 입학했으니 아마도 제 엄마를 닮은 모양이다 孝心이 깊은 딸은 이제 걱정을 안 해도 될 만큼 제 앞가림을 잘하고 있다 한번은 돌아보게 될 자신만의 地圖, 딸은 어미와 아비가 준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게 될 것이다 아들은 좀 특별한 데가 많은 녀석이다 아들은 數理 쪽 학문에만 월등하나 그 외 과목은 별로 관심이 크지 않았으므로 대입 수학능력고사에서도 만 점에 가까운 수학 점수(전국 오백 명 이내.. 2022. 7. 23.
길 위에서 18 - 동행* 길 위에서 18 - 동행/담채 딸이 가까이에 있으니 이곳 저곳 좋은 곳을 자주 다닌다. 남양주 외곽 어느 가든에 들러 딸과 함께 식사를 하고, 사진 찍히길 싫어하는 아내와 모처럼 한 컷, 나이가 들어갈수록 부부는 친구 같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는 나를 만나 외동인 외손녀와 두 손주를 둔 할머니가 되었고 나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동반자인 아내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행복해져도 미안하지 않은 동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고. 우리는 서로를 가장 잘 아는 상대가 되어 도솔천으로 가는 이야기를 함께 나누기를 기대해 본다. 2000년 봄 남양주 목향원에서 2022. 7.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