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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157

길 위에서 12 - 가족* 1989년 봄, 서울로 이주한 가족의 나들이(어느 사진이나 내 자리는 비어있다) 길 위에서 12 - 가족/담채 ​우리의 시간은 ‘살아내는’ 능동과 ‘살아지는’ 수동이 얼마간 뒤섞여 흘러가는 것이다. 나는 30대 후반에 초등학생 아들과 중학생인 딸과 젊은 아내를 서울에 올려놓고 혼자가 되었다. 적막한 곳에서 보내는 밤이 길었다. 혼자서 잠이 안 오는 밤이면 가족을 향한 묵상을 한 후 그리움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를 들었다. 밤이 길어/담채 밤이 길어 밤이 길어 수리부엉이 울음으로 밤이 길어 삼경에 둥그는 달과 삼경에 길 떠난 철새와 바람의 울음으로 밤이 길어 멀리 있는 식구가 보고싶다 별빛 가루가루 부서져 내리며 이 밤 끝없이 떠내려가는데 적막도 거룩한 침실에 흰 달빛 무엇하러 드는가 2000년 12월.. 2022. 7. 23.
길 위에서 27 - 삶* 길 위에서 27 - 삶/담채 국그릇에 드나드는 숟가락이 국맛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숟가락 끝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이 그리워 나는 자꾸 국그릇에 몸을 담그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숟가락이 끊임없이 국그릇을 드나드는 일과 같아서 국물을 자꾸 퍼 올려 씹어도 보고 삼켜도 보는 것이다 아무리 삼켜도 쓰디 쓴 탕약처럼 천천히 스미는 空腹의 시간 나는 둥글고 깊은 국그릇에 숟가락을 또 담가본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참, 많은 국물을 퍼 올렸는데도 아직 국맛을 모르는 숫가락 같은 것이다 2022. 7. 23.
黃昏의 사랑* 황혼의 사랑/담채 황혼의 두 獨身 남녀가 목이 휜 강변을 多情히 걷고 있다 수 만 개의 외로움을 던지고 던지면서 사랑을 쥐고는 다음 生으로도 갈 수 없다는데 두 손 꼭 잡은 저 두 사람 지금 어느 世上의 문을 두드리고 있나 강물도 바다가 그리우면 쉼 없이 물을 흘려 한 곳으로 닿는데 당신도 강물 한 잔 나도 강물 한 잔 사랑으로 가는 모든 소리는 아프다 석양의 길 위에서 인연을 만나는 일은 얼마나 먼 前生에서 나를 찾아온 기다림인가 2022. 7. 21.
길 위에서 37 - 섬* 길 위에서 37 - 섬/담채 외로움이 뭉쳐져서 화석처럼 굳어져서 더 이상 흘러가지 못하는 외마디 비명 같은 이름, 사실, 人間은 너무 외롭다 2022. 7. 20.
名詩 감상 名詩감상 - 묵화墨畵 /김종삼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했다고 *** 사람의 마음을 찡하게 울리는 詩 한 편을 다시 읽었습니다. 마음에 바람구멍을 내듯 무언가 깊이 지나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충만한 여백 속에 서성이다 보면 어느새 당신은 詩人입니다. 오늘 하루도 평범하고 소박한 꿈으로 여리게 살아가는 우리여, 세상의 광명은 저 높은 엘리트의 마을에 있지 않습니다. 낮게 흐르며 따뜻함을 잃지 않는 우리들이 세상의 주인입니다. 김종삼 시인의 시들은 대부분 짧은 것들이어서 조금 말하고 한참을 쉽니다. 27세에 월남하여 평생을 가난 속에서 술과 예술과 고전음악을 즐기며 '북치는 소년'처럼 산 시인이었습니다. 2022. 7. 20.
길 위에서 32 - 生日* 길 위에서 32 - 生日/담채 며칠 후면 내 生日이다 딸에게 전화가 오기를 코로나로 식당에서 모이기도 걸리는 터라 제 집에서 주문 요리로 즐겨보자고 한다 子息이라야 남매뿐이니 손주 형제를 둔 아들(45세) 식구 4명과 고명딸을 둔 딸(48)네 식구 3명 그리고 우리 부부 2명, 합쳐봐야 9명이다 법학을 전공했으나 요리에 관심이 많은 딸이 제 집에 모이는 가족을 위하여 또 다른 요리를 준비할 게 뻔하다 자식에게 폐가 될 것을 특별히 경계하는 아내가 말했다 우리 집에서 모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착한 딸은 극구 제 집에서 준비하겠다고 못을 박는다 결국 子息이 하자는 대로 따르기로 했다 내 생일인 음력 유월이십구일, 얼마나 무더운 한여름인가? 선풍기라는 이름조차 생기기 이전의 시대, 어머니는 나를 낳고 .. 2022. 7.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