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作詩219 낙엽 편지* 낙엽 편지/담채 다 비우고 바람에 날리는 한 생의 파편 적막 속으로 지고 있다 한 뿌리 한 가지에 기대어 살면서도 서로를 모르는 채 길을 접는 저 낱낱의 잎 잎 낙엽이 되고서야 서로 만나 층층 켜켜 서로 닿아 비로소 함께 가는 길 나뭇가지 긴 그림자 덧없는 그 길을 죄인처럼 따라간다 2022.12.06 2022. 12. 6. 바람은 참 긴 소리를 낸다* 바람은 참 긴 소리를 낸다/담채 이만큼 살아보니 바람결에도 쉽게 婚을 다치는 날들이 많아졌다 이름 없어 쓸쓸했던 딱 한 번의 사랑과 아무 것도 안 된 인연들 이제는 기침소리조차 질서 있게 낼만큼 순해진 나이 곤고한 길 위에서 참 많은 것들을 사랑한 것 같았는데 다 비워져야 할 것들이다 쓸쓸히 저물어간 이번 생의 전언이듯 바람이 참 긴 소리를 낸다 note 오만한 세월 속에 그리움은 작은 불꽃이다. 인연도 사랑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삶은 그것들을 쥐고 가는 미완의 길이다. 영원에 실패한 것들이다. 2022. 11. 24. 발足* 발足/담채 가벼운 것들이 그리워 날아오르고 싶은 날 길을 어르며 땅을 딛는 발 긴장하는 발바닥이 돌부리 하나 풀포기 하나 건너뛰며 발짝을 떼었을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사무치게 짓눌렀을 무게들 땅으로 스며들어 묵음이 되었으리 눈에서 멀어 아픔도 조용한 발 향방 없이 멀었던 길들 얼마나 걸었는지 발바닥에서 불 냄새가 난다 오래 걸어온 발이 곰곰 생각했으리라 무릇 만물의 중심은 위를 짐 지고도 고요한 맨 밑바닥에서부터 세워지고 있다는 것을 깊은 밤, 하루를 끌고 온 기도가 긴 터널을 빠져나간다 한 번쯤은 어디론가 훨훨 날아가고 싶은 발이 필사의 직립을 멈추고 두 발 모으는 시간 또다시 걸어야 하므로 맨발 위에 머문 굴곡들 가만히 짚어본다 말굽을 닮은 발바닥 맨발이 시리다 2022. 11. 8. 백로* 백로/담채 백로는 새끼를 받을 때와 죽을 때 일생에 단 두 번 무릎을 꿇는다 이 고절한 생애는 적막을 물어뜯는 울음이다 2022. 11. 8. 어머니와 창세기* 어머니와 창세기/담채 마늘밭에서 돌아온 맨발의 어머니가 앞마당 수돗가에서 발을 씻고 구약성서를 펼치셨다 많이 흐린 노안老眼이 창세기의 혼돈과 에덴의 비손강*변 아득한 밀림을 더듬어가고 있다 구석기 유물을 판독하듯 성경을 읽고 계신 어머니의 얼굴이 하나님의 말씀처럼 편안해 보였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빛과 어둠을 만드시고, 육축과 나무와 사람과 만물을 만드시고, 그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일제 강점기 초등교육이 전부이신 어머니의 기독교 신앙은 50년 가까이 불립문자처럼 이어져 왔다 들녘에서 돌아온 저물녘에도 늘 할 일이 쌓여있던 어머니가 헝클어진 몸매를 여미며 교회로 걸어가던 뒷모습은 젊어 돌아가신 아버지를 뵈러 가는 양 단정하고 조용하였다 창 밖은 지금 에덴의 시대 성경을 .. 2022. 11. 5. 연변 아가씨 연변 아가씨/담채 전화 한 통이면 새처럼 날아와 앉는다 립스틱 너무 짙은 조선족 연변 아가씨(?) 그녀는 노래방 도우미다 낮에는 월세 쪽방에서 박쥐처럼 잠을 자고 밤이면 시간제로 팔려나가는 후천성 야행성이다 밤은 망망한 바다 위에 그녀가 던져놓은 그물 한 지락, 90년대 식 샹들리에와 21세기 외로움이 같이 묶여 돌아가는 서해의 작은 포구 노래방 취객 옆에 붙어있는 그녀의 치마가 너무 솔직하다 망망한 바다를 표류하는 외로움들에 붙들려 건성으로 부르는 '난 너를 사랑해' 먼바다 쪽으로 흘러가 어둠 속을 방황하고 연변에 두고 온 외아들 영하의 밤하늘 떠서 날아와 심장 가까이 앉는 밤 창 밖은 지금 소돔과 고모라의 시대, 네온사인이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다 타락한 형광등은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소주잔을 .. 2022. 11. 4. 이전 1 ··· 10 11 12 13 14 15 16 ··· 37 다음